벽 속에 괴물이 산다

정의의 본색 (feat. 오디세이)

by햇살나무 여운


매일 여기저기서 끝도 없이

괴물들이 출몰한다


괴물은 꽉 막힌 벽 속에 산다

귀도 없고 눈도 멀고 입만 살았다

참 힘이 세고 뻔뻔해서 오래 산다

언제나 그렇듯이

압도적 욕망 앞에서 적당히란 없다

이빨을 박아 넣을 틈만 보이면

먹잇감을 인정사정없이 물어뜯는다

한 치의 망설임도 부끄럼도 없다


괴물이 나타날 기미가 보이면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힌다

스치기만 해도 혈중독소가 높아진다

저혈압에는 좀 도움이 되려나

갈라진 벽 사이로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는

검은곰팡이에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잠식당한다

자본이 설계하는 알고리즘의 지배 아래

쥐도새도 모르게 감염되며

후유증으로는 냉소와 환멸을 남긴다


한결같이 내로남불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마침내 그 정점에 다다랐으니

매끈한 용모로 가장 높다는 자리에 앉아

보란듯이 당당히 정직을 땅에 쳐박은

안하무인 정의본색

아무렴! 이게 바로 허구를 사랑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창발성


아차, 나는 아직도 괴물에게서

일말의 양심을 기대하고 있었구나

우리가 진정 자유민주주의에 살고 있구나

이보다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까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괴물이 여전히 판치는,

버젓이 계속 설치는 자유까지도 허용하는

감염된 민주주의


키르케의 저주와 진실을 빌려

인간의 탈을 쓴 괴물들을

탐욕의 본모습대로 빚으면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오디세우스가 괴물이 되지 않은 건

자신의 죄를 알고 내내 괴로워했기 때문이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스스로 세월의 감옥에 갇혀 참회했기 때문이지



사진 출처 : 영화 <오디세이>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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