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산골영화제

by루미상지
5월 초 무주 등나무 운동장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자연특별시 무주 산골영화제에 다녀왔다.

영화제는 6월 4일부터 6월 8일까지 5일간 무주군 여러 곳에서 분산 개최되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산골영화제가 벌써 14회째라고 한다. 남편과 나는 남대천 변에 주차하고 잠깐 둘레를 산바카라했다. 영화제 기간에는 정해진 주차장에 주차하고 무료 운행되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우리는 야외 등나무 운동장에서 상영되는 무성영화를 보기로 했다. 실내 상영권은 1편에 6,000원. 야외 상영은 1일 입장권 30,000원인데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매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기 있는 영화는 예매하지 않으면 못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행히 현장 구매를 할 수 있었다.


영화제는 각 글자의 의미에 맞춰 상영 공간과 작품 성격을 분류하고 있다. 5개 섹션으로 실내 상영과 야외 상영을 한다. 실내 프로그램은 영화를 중심으로, 야외 프로그램은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창: (窓)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의미하며, 독창적인 시선을 가진 최신 한국 독립영화를 소개한다.

판: (場) 관객과 영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소통의 장(마당)을 뜻하며, 국내의 최신 영화나 고전 영화들을 상영한다.

락: (樂) 등나무 운동장에서 열리는 야외 상영 및 공연이다. 자연 속에서 영화와 라이브 음악을 함께 즐기는 영화제의 핵심 축제 공간이다.

숲: (林) 깊은 산속 덕유산 국립공원의 야외극장에서 초록빛 자연과 함께 영화를 감상하는 친환경 섹션이다.

길: (路) 무주 군민과 관객을 이어주는 공간으로 무주의 문화 콘텐츠를 소개하거나 마을로 찾아가는 섹션이다.

올해 무주 산골영화제 개막작은 <흐린 창문 너머의 누군가> 였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무주군에는 고 정기용 건축가의 아름다운 건축 작품이 많다. 감응의 건축가 정기용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문화운동가였다. 순천, 정읍, 진해, 제주, 김해, 서귀포의 ‘기적의 도서관’ 설계에 참여했고 고 노무현 대통령 사저와 추모의 집을 설계했다. 주변 자연 풍경을 거스르지 않고 낮게 엎드린 구조로 지어져 '지붕 낮은 집'으로 불린다.

건축가는 우연히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 동안 무주에서 건축 활동을 해 무주에 많은 공공 건축물을 남겼다. 건축가를 꿈꾸거나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무주를 방문하기도 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등나무 운동장(공설운동장)이다. 지금까지의 운동장 건축이 본부석 위주의 권위적인 건축이었다면 등나무 운동장은 주민과 같이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햇빛을 피하는 그늘을 만들기 위해 등나무를 얹어 공사비를 줄이고 식물이 주인이 되는 운동장을 만들었다.

5월 초, 고원길 걷기 모임에서 이곳을 방문했었다. 그때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보라색 등나무 꽃들은 바람에 춤을 추었고, 꽃들이 춤출 때마다 은은하고 달콤한 향이 바람에 날아다녔다.


등나무 우거진 관람석에 앉자 무성한 잎들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파란 하늘, 넓은 운동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잔디 위에는 돗자리를 깔고 옹기종기 앉아 음식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고,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거나 바카라을 읽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야외 영화를 보며 하룻밤을 즐기기 위해 온 그들은 돗자리와 의자, 음식 등 많은 것들을 준비해 온 것 같았다.

남편과 내가 들어왔을 때는 막 12시에 상영된 영화 룩 백이 끝난 상태였다. 기념품샵을 구경하고, 무료로 나눠주는 팝콘과 음료수를 받았다. 무료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우리는 등나무 그늘에 앉아 떡볶이와 팥빙수를 사 먹었다. 낮에는 공연과 축제를 즐기고 밤에는 영화를 보면 된다. 오전에도 공연이 있었고, 3시에는 너드커넥션의 음악 공연도 있었다.

7시가 되자, 볼빨간사춘기가 나왔는데 관중석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공연이 시작되자, 그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야외 운동장의 분위기를 한껏 뜨겁게 달구었다. 남편과 나는 어리둥절해서 젊은이들이 떼 지어 노래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을 더 즐겼다.


뮤즈그레인 연주


8시, 해가 진 뒤 밤하늘에 별이 보이기 시작하자 등나무 아래에서 넓은 잔디밭으로 내려와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무성영화인 <이민자>와 <이지스트리트>가 뮤즈그레인 밴드 협연으로 시작되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나는 몹시 궁금했다. 자동차 안에서 보는 영화도 아니고 넓은 야외 운동장에서 어떻게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일까?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 바로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매혹적인 야외 운동장 영화라니 놀라운 경험이었다.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팬터마임으로 시작되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스크린의 오른쪽에 준비하고 있던 밴드에서는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했다. 음악은 영화 속 몸짓과 묘하게 어울리며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맑은 무주의 밤하늘 아래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스쳐 갔다. 깜깜한 밤하늘의 별과 함께 영화를 보고, 풀벌레 소리와 함께 듣는 라이브 음악 연주는 생각지도 못한 큰 감동을 주었다.

작은 산골 마을 무주의 깊은 산속에서 옛날 무성영화를 보며 꿈을 꾸듯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그래도 멈췄으면 좋았을 그 시간도 지나갔다. 가는 시간 잡을 수 없으니 미리 내년을 예약한다.




*뮤즈그레인: 팝 재즈 밴드로 무주산골영화제와 처음부터 함께 해온 단골 아티스트이다. 주축 멤버들이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음악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 룩백(Look Back):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 너드커넥션(Nerd Connection): 4인조 인디밴드.

* 팬터마임(Pantomine): 대사 없이 몸의 움직임, 표정, 몸짓으로 생각과 감정,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극 예술.

* 정기용 건축가의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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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빨간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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