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진안 고원에 둥근 보름달이 뜨는 날은 달빛 걷기를 하는 날이다.
고원길을 걷기 시작한 지 올해로 4년째다. 작년 1년 동안은 태국에 나가 있어 함께 하지 못했다. 올해 달빛 걷기는 나에게 좀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이번에는 걷기 행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행사 준비 요원으로 봉사와 공연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참가자로 달빛 걷기를 즐겼다면 오늘은 행사에 오신 분들이 최대한 편하게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자원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행사는 네이버에 큐알로 홍보해서 참가자 신청을 받았는데 500여 명의 신청자가 순식간에 몰려 이틀 만에 창을 내렸다고 한다.
행사 준비하는 과정 중 걷기 모임의 대장 정 국장은 우리 비니루 팀(네 쌍 부부 소모임)에게 춤을 출 수 있는지 물었다. 비니루 팀은 올해 초 신년회에서 우리끼리 릴스를 찍은 경험이 있었다. (제9화 릴스를 찍는 중)
요즈음 인기 있는 악뮤의 ‘소문의 낙원’ 릴스를 또 찍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마침 제안이 들어오니 바로 찬성했고, 춤을 추지 못하는 나도 덩달아 연습에 참여하게 되었다.
공연 한 달 전, 급하게 팀명을 '달빛타고왔소'로 정하고 연습에 들어갔다. 남편들에게도 도와달라 요청했으나, 강력한 반발로 여자들끼리만 하기로 했다. 악뮤 ‘소문의 낙원’ 율동 연습은 먼저 가사를 익히고 그다음 가사에 맞는 동작을 연습했다. 하지만 우리 비니루 네 명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춤을 잘 추는 봉연과 은영을 섭외해 팀은 모두 여섯 명이 되었다.
봉연과 은영은 라인댄스를 오랫동안 해서 아주 잘 춘다. 단비와 보리도 몸에 박자 감각이 있어 춤사위가 예쁘다. 내가 어쩌다 여섯 명에 끼게 되었는지 후회막심이다. 눈앞이 깜깜했다. 마늘도 은근히 걱정하는 것 같아 마늘에게 말했다.
“너랑 나랑 구멍이 될 것 같지 않아? 큰일이다.”
내 말을 들은 마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나는 춤 잘 춰요. 아직 순서가 좀 헷갈려서 걱정이지요”
동지라고 믿었던 마늘마저 내 기운을 뺐다. 주위에서도 마늘이 춤을 잘 춘다는 사실을 이제야 말해주었다. 몇 년 전 키르기스스탄에 갔을 때 흥이 오른 마늘이 제일 먼저 일어나 멋진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열심히 연습해야 할 수밖에.
드디어 달빛걷기 하는 날이 되었다. 행사는 오후 다섯 시에 시작하지만 우리 ‘달빛타고왔소’ 팀은 1시에 만나 연습했다. 3일 전에도 우리끼리 만나 연습했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아 다시 점검한 것이다. 우리 팀은 오늘 춤 공연도 하지만 여러 곳에서 많은 자원 활동도 해야 한다. 춤 연습이 끝나고 두 시에는 다른 봉사자들과 만나 각자 맡은 위치로 가서 자원 활동을 시작했다.
두 시가 되자 일찍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짝을 지어 속속들이 도착했다. 마이정원은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일찍 와서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다섯 시 접수를 시작으로 여러 행사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한쪽에서는 타투 스티커로 얼굴이나 손과 팔에 타투를 해주었다. 또 다른 쪽에서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키링을 만들고, 마이산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주었다.
고원길 대표님이 징을 치고 인사말을 하며 행사는 시작되었다. 먼저 간단한 요가 체조로 몸을 풀었다. 뒤를 이어 바로 ‘달빛타고왔소’ 팀이 ‘소문의 낙원’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며 참가자들에게 군무를 유도했다. 사실 행사를 준비하며 고민이 많았다. 5시 40분이면 아직 햇볕이 따가울 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고 덥다고 그늘에 앉아 있거나 서 있으면 어떻게 끌어내 같이 춤을 추지?’
그런데 웬걸, 많은 사람이 잔디밭에 나와 함께 요가를 하고 ‘소문의 낙원’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신나고 즐거운 500여 명의 군무는 장관이었다. 무대 밑에서도 흥겹게 따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저절로 흥이 났다.
내가 너무 신나서였을까? 박자를 놓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 연습할 때부터 실수가 많았다. 봉연이 연습할 때 나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언니는 그냥 어깨 으쓱으쓱하며 웃기만 해.”
나름 며칠 동안 열심히 연습했는데 틀린 게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재미있고 즐거웠다. 당초 이 나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춤을 춘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흥은 있지만 나는, 음악을 들으며 자리에 앉아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리듬을 타고 엉덩이를 살짝살짝 움직이는 것까지가 한계다. 춤을 추려고 일어서면 몸이 갈 곳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완전 몸치에 박치다. 그런데 춤을 추긴 추었다, 그것도 관객의 표정까지 보며 신나게! 끝나고 난 뒤 친구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박자를 놓쳐 너무 속상하고 창피해.”
친구는 무슨 소리냐며 신나게 따라 춤추느라 틀린 줄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예쁘고 멋지게 춤추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냥 즐기면 되는 거였다.
식전 행사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마이산 북부 마이정원에서 은천까지 4.5km를 걷고 돌아오기 위해 출발했다. 참가자들이 걷고 오는 동안 자원활동가들은 미리 저녁 도시락과 옥수수 간식, 아이스커피와 아이스티를 준비하고 그들을 기다렸다.
참가자들이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다.
“어땠어요? 즐거우셨나요? 힘드신가요?”
내가 물어보자 어떤 분은 몹시 힘들었다며 주저앉았고, 어떤 분은 걸을 만하다 했다. 오늘은 평소 우리가 걷는 절반쯤 되는 코스였는데 밤이라 처음 걸으신 분들에게는 힘들었나 보다. 우리는 서둘러 본부에서 준비한 도시락과 옥수수, 아이스 커피, 아이스티를 나눠주었다. 도시락을 먹고 난 뒤, 올 상반기 우리가 걸었던 길을 영상으로 제작한 것을 보여주고, 특별히 초대한 가수의 음악과 재즈 공연이 이어졌다.
이번 행사의 모든 장면은 성혜 씨가 사진으로 찍고, 취미 생활로 드론에 푹 빠져 지내는 수연 씨 부부가 각자 자기 드론을 가져와 찍었다.
참가자도 자원활동가도 모두 함께 달빛 속에서 한바탕 흥겨운 잔치를 벌였다.
진안 마이정원에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다. 달빛을 맞이하려고 사람들이 팔과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그들의 얼굴에도 둥근 달이 떴다. 내 가슴속에도 보름달 하나가 둥실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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