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조명과 착한 신자 콤플렉스에 관하여
최근 쏟아지는 학교 폭력 사안과 행정 업무를 수습하느라 몇 주째 주말도 없이 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영혼은 바닥까지 긁혀 나간 기분이다. 문득 텅 빈 교무실 바카라상에 앉아, 내가 만약 아직도 기성 교회의 궤도 안에 머물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아마도 이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예배당으로 향했을 것이다. 과거의 내게, 주일 사역의 시작은 토요일 밤 교회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부터였다. 집이 아닌 교회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 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척도라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대학교 전공 시험 기간에도 바카라 대신 교회 승합차 운전대를 잡았다.
새벽 기도 차량 운행부터 저녁 예배까지 마치고 나면 목 끝까지 피로가 차올랐다. 단상에 올라 찬양 인도를 할 때면, 내가 지금 부르는 찬양의 가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텅 빈 머리로 본능에 의지해 노래를 부르곤 했다.
오랫동안 나의 시간과 돈을 쥐어짜 내던 교회와 그 무례했던 사람들을 원망했다. 나는 피해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교회의 문턱을 넘어와 텅 빈 광야에 홀로 서 있는 지금, 불편한 진실 앞에 마주 선다.
나는 왜 그토록 숨이 막히면서도 단 한 번도 ‘싫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 그 모든 모멸감을 웃음으로 덮으며 기어이 그 자리에 남아있으려 했을까. 그 맹목적인 헌신의 이면에는, 나 스스로도 몹시 인정하기 싫었던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역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마다 사람들은 내게 박수를 보냈다. 단상 위에 설 때면 짜릿한 인정과 시선이 쏟아졌다. 나는 ‘헌신적이고 착한 청년’이라는 완장에 지독하게 중독되어 있었다. 쉼을 죄악시하고 피로를 훈장처럼 여기며 스스로를 영적 소모품으로 갉아먹도록 방치한 진짜 공범. 그것은 억압적인 교회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들의 박수 소리를 포기하지 못했던 나의 나르시시즘이었다.
사역을 내려놓고 맞이한 첫 성탄절. 예전 같았으면 한 달 전부터 워십 댄스와 연극을 준비하느라 며칠 밤을 새웠을 텐데, 사역의 무대에서 내려온 성탄절은 지독하리만치 고요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당연하게 주어지던 박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텅 빈 방 안. 나를 비추던 무대 조명도 관객도 모두 사라진 그 낯선 적막 속에서, 비로소 홀로 무릎을 꿇었다. 나 혼자 서툰 시를 짓고, 나 혼자 신을 향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나와 절대자, 단둘만 남겨진 기분. 그것은 그 어떤 화려한 예배보다 경건했고, 소름 돋게 평온한 첫 안식이었다.
사역을 그만둔 직후 도망치듯 기도원에 찾은 적이 있었다. 그 고요한 산속에서 이틀 만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을 쳤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흥분되는 사역도, 내 희생을 증명할 박수받는 무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뼈아프게 자문했다. 나는 그동안 신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를 비추는 조명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일까.
주말의 텅 빈 교무실. 모니터 앞의 몸은 여전히 뻐근하지만, 이상하게도 숨쉬기는 한결 편안하다. 이곳에는 나를 칭찬해 줄 관객도 없고, 착한 신자라는 가면을 쓴 채 억지웃음을 지을 필요도 없다.
타인의 시선과 박수 소리가 모두 멈춘 이 고요함 위에서, 나는 이제야 진짜 안식일을 연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