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기 싫어 도망친 무균실은 너무 춥다

껄끄러운 합주실에서 다시 배우는 공동체의 온도

by서이안

교회를 떠나고 맞이한 주일 아침. 마음껏 늦잠을 자는 것이 오랜 소원이었건만, 수년간 몸에 밴 지독한 관성은 기어이 새벽같이 내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텅 빈 주말의 시간은 낯설고 홀가분했다.

옷장 깊숙한 곳에서 가장 아끼는 정장을 꺼내 입고, 거실 테이블에 홀로 앉아 노트북을 켰다. 화면 속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설교를 잘한다는 목사님들의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찬양의 음정은 흔들림이 없었고, 누구도 내게 다가와 주보를 쥐여주며 봉사의 자리를 강요하지 않았다.


소음이 사라진 무균실, 사람과 부대끼며 발생하는 피곤한 마찰열이 사라졌다. 그리고 코람 데오(Coram Deo – 하나님 앞에서). 비로소 하나님과 나 사이의 1대1 관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교회에서 잡무에 시달릴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신앙 서적과 고전들을 탐독했고, 내 신학적 지식은 이전보다 정교해졌다. 상처받을 일 없는 이 고요하고 안전한 도피처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무균실의 평화가 묘한 공허함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카라을 아무리 깊이 읽어도, 혼자만의 사유에는 분명한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마치 독서 모임에서 나와 전혀 다른 시선을 가진 타인과 격렬하게 생각을 나눌 때 비로소 텍스트가 입체적으로 살아나듯, 신앙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내린 삶의 결정과 기도의 응답들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비춰볼 ‘타인이라는 거울’이 내게는 없었다.


어느 교수님이 “진리를 떠나 도덕적 잣대로만 보아도 교회를 가는 것이 이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타인이 모여 있는 껄끄러운 공동체는 나를 도덕적으로 완성시켜주는 곳이라기보다, 내 마음이 애굽의 바로처럼 완악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브레이크다. 혼자서 훌륭한 설교를 듣고 신학적 교리를 쌓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 신앙만이 순수하고 옳다는 영적 교만에 빠지기 쉽다. 내 뾰족한 자아를 마모시켜 줄 타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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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교사가 되었고, 다정한 교사가 되고 싶어 오늘도 살아냅니다. 교실 속 아이들과의 대화, 우연히 스친 풍경, 바카라과 영화 속 한 문장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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