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빈털터리는 일시적이지만 가난은 영원하다

부유한 빈털터리의 미학

by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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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커다란 실패로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조차도 여전히 자신을 부자로 여겼다. 그분은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가난한 것과 빈털터리인 것은 차원이 다르다. 빈털터리는 일시적이지만 가난은 영원한 것이다.” 가난한 아버지는 또 이렇게 말하곤 했다. “돈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부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돈이 곧 힘이다.” - 로버트 기요사키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버지는 파산의 위기 앞에서도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정의하지 않았다. 그는 '빈털터리(Broke)'라는 물리적 상태와 '가난(Poor)'이라는 정신적 태도를 엄격히 구분했다. 주머니가 비어 있는 것은 잠시 스쳐 가는 폭풍우 같은 사건일 뿐이지만,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믿는 것은 영혼에 내리는 종신형과 같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돈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시작된다.


가난한 아버지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돈으로부터 도망쳤다. 하지만 그것은 고결함이 아니라 외면에 가까웠다. 반면 부자 아버지는 "돈은 힘이다"라고 직설적으로 선언했다. 여기서의 '힘'은 타인을 지배하는 권력이 아니라, 내 삶의 주권을 지키고 내 철학을 현실로 구현해낼 수 있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은퇴 후의 삶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직함이 사라지고 수입이 줄어드는 순간, 스스로를 '빈털터리'를 넘어 '가난한 존재'로 낙인찍어 버린다. 하지만 진짜 리빌딩은 여기서 시작된다.


슬롯적 역할이 사라진 상태는 '빈털터리'와 같다. 그것은 시스템 재정비를 위한 일시적인 다운타임(Downtime)일 뿐, 당신의 본질이 가난해진 것이 아니다.


은퇴 후에도 돈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존의 도구'를 넘어 내가 꿈꾸는 '소요유(逍遙遊)'의 항해를 가능케 하는 '바람'과 같다. 돈의 힘을 긍정할 때, 비로소 돈에 휘둘리지 않는 주인이 될 수 있다.

결국 부자가 된다는 것은 통장의 숫자를 늘리는 행위 이전에,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의 가치를 '부유한 존재'로 설정하는 의식의 전환이다.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조차 당당하게 스스로를 부자로 여겼던 그 태도야말로, 장자가 말한 붕(鵬)의 기상이며 우리가 인생 2막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심미안이다.


은퇴 전의 돈은 나를 증명하는 '계급장'이자 타인보다 높이 쌓아야 할 '성벽'이었다. 하지만 은퇴 후의 돈은 그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이제 돈은 축적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소요(逍遙)를 가능케 하는 '항해의 연료'다. 연료는 탱크에 가득 채워두는 것보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나를 데려다줄 만큼 '적절히' 있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너무 무거운 연료 탱크는 오히려 비행을 방해한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불필요한 비용을 걷어내고 '자유'라는 가치에 집중했듯, 우리도 돈의 무게를 줄이고 '삶의 기동성'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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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가 있어야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나만의 '행복 가성비 인덱스'는 설정할 수 있다. 같은 돈을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부족하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가 여행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반면, 기차를 타고 우리나라의 남도 여행을 하며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내가 품위를 지키며 낯선 도시에서 이방인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이면 된다.


비싼 호텔이 아니라, 낯선 길 위에서 만난 방언과 이름 모를 풀꽃에서 기쁨을 찾는 '심미안'이 있다면 필요한 액수는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결국 행복한 액수는 '내 욕망의 크기'와 '내 철학의 깊이' 사이의 상관관계에서 결정된다. 철학이 깊을수록, 행복을 위해 필요한 숫자는 작아진다.


기요사키가 말했듯, 수입이 줄어든 것은 시스템의 '일시적 정지(Broke)'일 뿐, 당신 존재의 '영구적 결핍(Poor)'이 아니다. 돈이 부족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현명한 태도는 다음과 같다.


"지금 내 주머니가 빈 것은, 더 가벼운 붕(鵬)이 되어 날아오르기 위한 기체 경량화 과정이다"라고 선언하라.


"돈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정신 승리하며 회피하지 마라. 오히려 "돈은 내 자유를 지키는 힘이다"라고 인정하고, 적은 돈으로도 그 힘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단순하고 즐거운 소통 방식'을 설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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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넉넉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돈이 부족할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값비싼 와인 대신 낯선 시골 구멍가게의 막걸리 한 잔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심미안'을 길러라. 그것이 가난이라는 유령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돈이 많은 상태'가 아니라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뜻한다.


돈이 많아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한다면 그는 영원한 가난뱅이다. 반면, 수중에 가진 것이 적어도 "나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의 고독을 즐길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이미 '초인'의 반열에 오른 부자다.


은퇴 후의 리빌딩은 당신의 인생 데이터베이스에서 '부정적인 감정'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불필요한 데이터를 삭제하고, 그 자리에 '자발적 고독'과 '우발적 마주침의 기쁨'을 채워 넣는 작업이다.


주머니는 가벼워져도 좋다. 당신의 영혼이 붕새처럼 거대해져 있다면, 당신은 이미 온 세상을 소유한 채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니까.


"나는 그날 그 낯선 식당에서 가장 저렴한 국밥 한 그릇을 먹었지만, 주위에서 들려오는 정겨운 방언과 창밖의 노을을 덤으로 얻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 행복의 결제 수단은 현금이 아니라 나의 '시선'이었다는 것을." - 낯선 도시에서의 경험 -




가슴으로 사는 길은 곧 용기의 길이다. 그것은 계산된 안전을 포기하고 기꺼이 불확실성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사랑과 신뢰를 지팡이 삼아 아직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것, 과거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다가올 미래를 온몸으로 환대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자의 기상이다.


인생은 본래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비겁한 자들은 그 위험이 두려워 '안전'이라는 이름의 감옥 속에 자신을 가두려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위험을 피하려 하는 그 순간,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없다. 진정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위기의 냄새를 맡고도 기꺼이 그 길을 택한다. 가슴은 언제나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의 '머리(Mind)'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모든 정보의 총체이자 과거의 퇴적물이다. 그것은 기억이고, 이미 지나가 버린 죽은 시간이다. 머리는 익숙한 과거에 매달려 우리를 주저앉게 만든다. 하지만 '가슴(Heart)'은 다르다. 가슴은 언제나 미래를 향한다. 머리가 과거를 반추할 때 가슴은 미래를 꿈꾸며, 머리가 계산기를 두드릴 때 가슴은 가능성을 품는다.


과거는 이미 소진된 연료이며 죽은 시간이다. 그곳에는 더 이상 새로운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과거에서 미래로 건너가는 찰나의 징검다리일 뿐이다. 우리가 내딛는 이 순간의 한 걸음이 현재라면, 그 발끝이 향하는 곳은 오직 미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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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의 삶을 설계할 때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머리의 속삭임'이다. "예전엔 이랬는데", "그때가 좋았는데"라며 과거의 기억을 복기하는 것은 낡은 데이터베이스를 돌려보는 일에 불과하다. 진정한 리빌딩은 머리의 데이터가 아니라 가슴의 박동을 따라가는 것이다.


낯선 도시의 식당 문을 열 때의 설렘, 창업의 파도 앞에서 느끼는 긴장감, 장자의 붕새가 되어 구만리 창공을 바라보는 담대함. 이 모든 것은 가슴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만 가능하다. 미래는 언제나 다가오고 있으며, 가능성은 오직 그 미지의 영역 속에만 숨겨져 있다.


과거라는 안온한 무덤에서 걸어 나와라. 당신의 가슴이 뛰는 곳으로 인생의 인덱스를 재설정하라. 위험해 보이는 그 길이야말로 당신이 진짜 살아있음을 증명할 유일한 활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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