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변형

세상을 보는 눈의 리빌딩

by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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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왕이 큰 박씨를 주어 심었더니 다섯 섬이나 들어가는 큰 박이 열렸소. 물을 담자니 무거워 들 수가 없고, 쪼개서 바가지로 쓰자니 앝아서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었지요. 확실히 크기는 컸지만 아무 쓸모가 없어서 부숴버리고 말았답니다.‘

장자가 말했다. ”당신은 큰 것을 쓰는 데 매우 서툴군요. 다섯 섬이나 들어가는 큰 박이 있다면서 그 속을 파서 큰 술통을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워 즐기지를 못하고 얕아서 쓸모가 없다는 걱정만 하는구려. 당신은 마음이 꽉 막혀 있군요.“ - 장자 / 소요유 -




혜자는 장자에게 다섯 섬이나 들어가는 거대한 박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 부숴버렸다고 불평했다. 바가지로 쓰기엔 너무 얕고, 물을 담기엔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장자는 탄식한다. 그 큰 박을 술통으로 만들어 강에 띄우고 그 위에서 유유자적 노닐 줄 모르는 혜자의 '꽉 막힌 마음'을 말이다.


우리는 평생 세상이 요구하는 '효율'과 '쓸모'라는 좁은 바구니 안에 자신의 존재를 구겨 넣어 왔다. 은퇴라는 지점에 서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제 나는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를 고민하며 스스로를 부수려 한다. 하지만 장자는 말한다. 쓸모를 넘어선 차원에서 보면, 아무짝에도 쓸데없어 보이던 그 거대한 박이 비로소 우리를 자유의 바다로 인도할 '소요유(逍遙遊)'의 배가 된다고.


'소요(逍遙)'란 목적 없이 천천히 거니는 것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인정받으려 악착같이 살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세상과 그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마치 소풍 나온 아이처럼 가볍고 자유자재한 삶의 경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내 존재의 가치를 세상의 보편적인 기준에 저당 잡히지 마라. 각자가 걸어가는 그 길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며 평등하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여름벌레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하나만 아는 사람에게는 도를 말할 수 없다. 그가 받은 교육에 얽매어 있기 때문이다. - 장자 / 추수 -


자기 삶의 의미와 자기 존재의 가치는 세상에서 널리 인정되는 보편적인 혹은 절대적인 가치에 구속되어서는 안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 가치에 차등이 없으며 평등하다. 각자가 걸어가는 길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유로운 길은 홀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생은 '타자'와의 우발적인 마주침과 소통을 통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우리는 이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중요한 것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설명할 수 없고,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듯, 익숙한 환경과 낡은 교육에 매여 있는 한 우리는 결코 다른 세상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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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0년이 넘는 온라인 게임생활을 통해 수없이 많은 사람과 교유하였다. 어떤이는 당시의 상황과 위치에 따라 친밀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일적인 만남으로 일시적인 교류로 끝났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사람 중에는 아직도 간간히 연락하며 사유하는 이가 있는 반면, 인연이 끝나 잊혀진 이도 있다. 만남을 통해 이직을 하는 등 나름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나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만남은 없었다. 첫 온라인 게임에서 삼성으로 옮길 때는 당시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지인의 추천이 있었고, 삼성에서 두산으로 옮길 때는 당시의 인사팀장(현재는 SBI저축은행 사장)과의 인연이 있었으며, 두산을 끝으로 대기업의 경험을 접고 야인으로 있을 때, 20여 년 인연을 맺고 있었던 중소기업 사장님과의 인연으로 중소기업에서 8년간 근무할 수 있었다. 2년 전 독립하여 창업할 때는, 모임에서 만난 중소기업 사장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 지금까지 사업을 같이 하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우발적 마주침과 소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생길을 걸어가다보면,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인생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자 조건이다. 우리는 예상한대로 되어지지도 않지만, 예상하지 않는 흐름으로 이끌려 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 내가 어느 정도 열고 , 믿고 신뢰하느냐? 혹은 상대방이 나를 어느정도 믿고 신뢰하느냐? 이런 타인과의 인간적 태도에 따라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로 살기도 하고, 하늘을 날아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새가 되기도 한다.




장자는 북쪽 바다의 거대한 물고기 '곤(鯤)'이 어마어마한 새 '붕(鵬)'으로 변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의 의식 수준에서, 하늘을 나는 새의 의식 수준으로 나를 완전히 뒤바꾸는 '자기 변형'의 선언이다. 누워 있을 때 보이는 세상과 날아오를 때 보이는 세상은 천양지차다. 의식이 변해야 비로소 세상과 맺는 관계의 방식도 변한다.


이 '자기 변형'을 위해 우리에겐 낯선 '조력자'가 필요하다. 나를 가두고 있던 우물을 깨뜨려 줄 낯선 자, 낯선 환경과의 조우가 필요하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에서 진정한 새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스스로 깨고 나와야한다. 하지만, 누군가 밖에서 알을 깨주는 사람이 있다면 훨씬 쉽고 빠르게 하늘을 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타자와 마주하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미래의 나 역시 내가 앞으로 마주칠 낯선 인연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곤(鯤)이 붕(鵬)이 되기 위해 필요한 '믿음'이다. 우연히 마주친 타자가 나에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결국 나의 태도에 달려 있다. 낡은 자기를 죽이고 새로운 자기를 탄생시키는 힘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가치를 믿고 나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나를 신뢰한다는 것은 곧 나와 우연히 마주치는 타자에 대한 남다른 신뢰와 믿음에 대한 혜안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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