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장의 지도

임시정부 편 (03)

by로크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은 미대륙을 넘어 아시아까지 전해졌다. 조선의 청년들은 파리강화회의가 독립을 약속받을 수 있는 중대한 기회라 여기고 관련 논의를 위해 중국 상해에 모였다.


상해의 프랑스 조계의 어느 이층 방에 청년 여덟 명이 둘러앉았다. 창밖에서 인력거의 방울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그들의 앞에는 어제 들여온 신문 한 부가 놓여 있었다. 신문의 굵은 글씨가 그들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파리 강화회의.


“강화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지배를 비판하고 조선의 독립을 촉구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멋드러진 콧수염을 지닌 여운형이 운을 떼며 회의를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여운형과 친분을 쌓아왔던 조동호는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입을 열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조선을 대표한다고 할만한 명분이 필요한데 그게 없지 않습니까?”


동호의 말에 운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얼마 전 혁명에 성공한 터키청년당이라고 있지요. 그들의 이름을 따 우리도 당을 만드는 것은 어떻습니까?”

“무슨 당을 말입니까?”

“신한청년당. 당의 이름으로 파리에 독립청원서를 보낸다면 개인이 하는 것보다야 대표성을 지닌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자리에 있던 서병호, 한진교, 장덕수, 김철, 선우혁 등의 청년들이 이에 동의하며 여운형을 신한청년당의 초대 당수로 추대했다. 운형은 자신의 콧수염을 만지며 감사의 인사를 한 뒤 실질적으로 오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안건을 꺼내 들었다.


“우리 신한청년당을 대표하여 파리에 참석할 수 있는 자가 필요합니다. 혹시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당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정적이 불편했던 동호가 어렵게 먼저 입을 열었다.


“신석우 동지는 어떻습니까? 와세다대학을 나왔을만큼 학식에 능하고 상당한 자산가이기에 일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덜할 것입니다.”


동호의 제안에 상당수의 당원들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장덕수는 고개를 저으며 우려를 표했다.


“우창은 분명 능력이 있는 자이지요. 하지만 이번 파리강화회의에는 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이는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외국어에 능통한 자를 대표로 내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덕수의 말을 듣자 하니 틀린 점이 없었다. 운형은 그의 생각에 동의하며 물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설산께서 생각하시는 대표에 적합한 자란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런 조건을 갖춘 자가 주변에 있기나 합니까?”


운형의 의심 섞인 물음에 덕수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밖에서 듣지 못하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있습니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충분한 학식을 갖춘 사람. 그자는 …….”


덕수의 입모양을 끝까지 지켜본 운형이 밝게 미소 지었다.


난징의 이름 모를 선교사의 집에 대여섯 남짓한 사람이 모였다. 남녀는 성경 위에 손을 얹으며 증인들 앞에서 서약을 준비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예비신부의 얼굴을 바라보던 신랑은 마지막 절차에 앞서서 다시 한번 물었다.


“차라리 과부가 낫지. 독립운동가와 산다는 것은 평생토록 외로운 삶을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요. 정말 괜찮겠소?”


순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랑은 그녀의 얼굴에서 굳은 결심을 읽었고, 서약서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나 김규식은 김순애를 아내로 맞이하여 죽는 날까지 사랑하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몸이 불편할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서로 조건 없이 사랑하고 함께 울고 웃으며 항상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증인 앞에서 맹세합니다.”


신랑에 이어 신부까지도 서약을 마무리하자 곧바로 낡은 카메라가 신랑신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기의 셔터가 짧게 내려앉는 소리가 방 안에 남았다. 규식은 순애의 손을 잠시 잡았다. 그녀의 손이 따뜻했다. 그가 이 손을 다시 잡을 자리가 언제 올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서약을 마친 규식은 신부가 된 순애와 증인이 되어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곧바로 상해로 떠났다. 신한청년당의 대표로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전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병호로부터 당의 대표로 선출되었다고 소식을 들은 이후로 규식의 머릿속은 온통 파라강화회의로 가득 찼다.


신한청년당의 당원들은 상해에 찾아온 그를 환영해주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시간을 보내야 할 때에 신부와 떨어지게 만든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규식은 불가피한 상황을 이해한다 말하며 자신이 구상한 계획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강화회의에서 일제의 학정을 폭로하고 조선의 독립을 선전할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당원 여러분들께서는 국내를 비롯해 일본, 만주, 노령 등지에 사람을 보내 독립선언을 하고 대중 시위 운동을 벌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냉혹한 강대국들일지라도 우리는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신한청년당은 규식의 계획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역할을 나누었다. 그 결과 김철, 서병호 등은 국내로, 장덕수는 일본으로, 여운형은 만주와 노령으로 잠입하여 국내외에서 식민지 조선 백성들의 독립의지를 이끌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날 밤. 청년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떠나기 위해 짐을 쌌다. 상해의 프랑스 조계의 이층 방에는 서로 다른 언어로 된 지도들이 펼쳐져 있었다. 국내 지도, 일본 지도, 만주 지도. 각자의 자리로 향하는 길이 그 지도 위에서 서로 다르게 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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