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처럼 장편소설 쓰는 법 #2

원고를 기억하는 LLM, 되돌리는 Git

by빌리박

지난 편에서 장편을 쓰는 사람의 두 적, 기억과 버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둘을 각각 LLM과 Git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이번 편에서는 그 두 조력자가 소설을 쓰는 동안 정확히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그리고 왜 하필 그 둘인지를 제대로 들여다보자.


LLM이 소설가에게 해줄 수 있는 일


LLM은 챗GPT나 클로드처럼 사람의 말로 묻고 답하는 도구다. 그런데 '대화하는 AI'라는 한 줄로는 소설가에게 무슨 쓸모인지 와닿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풀어 보자.


첫째는 기억이다. 다만 한 가지 오해는 먼저 풀어야 한다. 27만 자를 통째로 LLM에게 던져 놓고 그때그때 묻는 방식은 사실 현실적이지 않다. 아무리 긴 글을 읽는 모델이라도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분량에는 한계가 있고, 설령 전부 집어넣더라도 그 방대한 텍스트에서 한 줄을 매번 정확히 짚어 내리란 보장이 없으며, 그렇게 할 때마다 드는 비용과 시간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실제로는 LLM이 원고를 미리 읽어 '설정집'이라는 압축된 자료를 따로 만들어 두고, "이 인물의 눈동자 색이 어디서 처음 나오지?" 같은 질문에는 원고 전체 대신 그 설정집만 펼쳐 본다. 설정집은 원고보다 훨씬 짧아 매번 빠르게 훑을 수 있다. LLM과 설정집이 한 쌍이 되어 작가의 외장 기억 노릇을 하는 것이다. 설정집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바로 다음 장에서 설명한다.


둘째는 정리다. 방금 첫째에서 말한 그 설정집을 만드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방금 쓴 화를 읽고 인물 설정을 정리해 줘"라고 하면, LLM이 그 화에 흩어진 묘사를 그러모아 인물 사전에 채워 넣는다. 한 번에 수십만 자를 삼키는 게 아니라, 화 단위로 조금씩 쌓아 가는 방식이다. 세계관의 규칙도, 사건의 연표도, 장소 목록도 그렇게 자란다. 머릿속에만 떠다니던 설정이 비로소 문서의 모습을 갖춘다.


셋째는 모순을 잡아내는 일이다. "설정이 어긋난 곳을 찾아 줘"라고 하면, 한 인물의 말투가 초반과 후반에서 딴사람처럼 달라졌다거나, 9화에서 죽은 인물이 30화에 멀쩡히 등장한다거나 하는 충돌을 짚어 준다. 글이 길어질수록 작가 혼자서는 놓치게 되는 것들이다.


넷째는 물어보면 분석해 주는 일이다. "이 복선은 회수됐나?", "여기까지 누가 무엇을 알고 있지?", "두 인물의 관계를 정리해 줘". 원고라는 거대한 자료를 상대로, LLM은 즉석에서 답을 만들어 낸다.


분명히 해 둘 것이 하나 있다. 이 중 어디에도 '소설을 대신 써 준다'는 항목은 없다. LLM이 맡는 일은 기억하고, 정리하고, 점검하고, 찾아 주는 것까지다. 쓰는 사람은 끝까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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