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면 나쁜 엄마래

by빨양c

# 소설 소개: 마흔 살, 출판사 편집자. 어느 날 20년 전 투고된 미출간 원고를 발견한다.

육아에 지치고, 온라인 게임에 치이고, 사람에게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원고 속 여자의 삶이 소름 끼치도록 내 삶과 닮아 있다. 이 여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이 원고에는 내 미래까지 적혀 있을까.



삐리리릭- 삐리리릭-


새벽의 고요함을 찢는 알람이 울린다. 그 소리에 잘자던 남편이 화들짝 놀라 깬다.

당연히 오늘도 3:29에 깨어있던 나는 놀라지 않는다. 부스스 잠에서 깬 남편이 허리를 일으켜 세워 멍하니 앉아있는 게 보인다. 매일같이 잠에서 깨는 똑같은 일이지만, 매일같이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자는 척하는 내게 시선을 던진 후, 옆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는다. 행여 아이가 깰까 걱정스럽긴 하지만, 남편도 같은 생각인 듯 서둘러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이번주에 남편의 생일이 있다. 같은 마흔 인 남편의 생일. 마흔의 생일은 어떤 기분일까. 그다지 별 감흥이 없을 것 같긴 하다. 참 특별하게 느껴졌던 태어난 날이 이상하게도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를 하는 과정을 거치니 아무 감흥이 없는 날이 된 것 같다. 마흔도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해 본다.


남편이 씻는 동안 핸드폰 액정을 켜 쇼핑 어플을 연다. 금일 도착 예정 중. 남편의 생일 선물로 가을에 입을 재킷을 하나 샀다. 연애 때부터 결혼 후 작년까지도 옷에 관심이 없던 남편이었는데, 올해 들어 부쩍 온라인 게임에 입고 갈 옷을 신경 쓰더니 본인 용돈을 모아 비즈니스용 캐주얼 정장? 뭐 그런 걸 조금씩 사기 시작했다.


"여보. 내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거기서 누가 그러더라. 나이가 들수록 옷에 신경 써야 한대."


"왜? 갑자기?"


"나이가 들수록 얼굴이 못생겨지거든. 그러니까 옷이라도 잘 입어야 하는 거래. 맞는 말 같지 않아?"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왜인지 내게 내 얼굴 나이 먹었으니까 옷 좀 잘 챙겨 입으라고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안 그러던 사람이 본인 옷을 하나 둘 사 입는 걸 보고는 정말 본인이 그렇게 느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 같아서는 결혼식에 입을 때처럼 맞춤 정장 열 벌, 빨주노초파남보 색깔로 쫙 맞춰주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열 벌은커녕, 한 벌도 맞춰주지 못하고, 생일을 핑계로 가을 재킷 하나 사주는 것도 내 용돈이 벌벌 떤다. 남편도 나도 열심히 아끼며 살고 있는데 현실은 왜 이렇게 각박한지 모르겠다.


그래도 늦지 않게 도착한다니 다행이다. 일에, 육아에, 집안일에 또 이것저것 핑계로 생일 선물 사야지-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 깜짝 놀라 급 주문해서 내일 생일 전에 도착 안 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오늘 도착할 것 같다. 쇼핑앱에 그 재킷을 다시 눌러보니 내가 산 것보다 가격이 5만 원이나 올라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이상하게 쇼핑앱은 내가 물건을 사고 나면 그 가격이 올라가 있다. 우연이겠지만, 오르기 전에 사서 잘 샀다는 안도감을 준다. 내 다음 산 사람은 나보다 5만 원이나 비싸게 주고 사게 될 테니.


쾅-

멍멍 야옹 애옹~

남편이 문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캔디와 빌리의 우렁찬 인사 소리가 들린다. 마음은 일어나서 꼭 안아주고 잘 다녀와. 다 잘될 거야. 오늘도 힘내자. 해주고 싶지만 침대가 잔뜩 끌어안고 있는 내 몸은 꿈쩍하지 않는다. 내일 생일 때는 꼭 일어나서 해줘야지. 다짐한다. 물론 다짐만 될 가능성이 크지만.


시간이 흐른다. 진경이를 깨운다. 일어나지 않지만 어찌저찌 약간의 실랑이를 하고 차에 태워 어린이집과 온라인 게임으로 출발한다.


"엄마 나 고래 노래 보고 싶어."


양말도, 새콤달콤도 아니고, 오늘은 고래 노래다. 아침에 깨울 때 우아하게 클래식으로 아이를 깨우고 싶었는데 결국 실패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요란한 노래인 고래 노래를 켜서 아이를 깨웠다. 물론 힘들게 일어났지만 아이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는지 등원하는 차 안에서 고래 노래 동영상을 보여달라는 요구다.


"아~! 진경이 고래 노래 보고 싶구나? 근데 진경아, 지금은 뭐 하는 시간이지?"


"고래 노래~~!!!!"

또 폭발하기 직전의 시동은 거는 아~주 사랑스러운 진경이. 하지만 5년 차 엄마답게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진경이 정말 보고 싶은가 보구나. 진경아 근데 지금은 어린이집 가는 시간이지, 영상 보는 시간이 아니다. 그치? 대신 나중에 칭찬 스티커 모으면 보여줄게.~ 알았지?"


"으앙!!!!!!! 싫어~~~~~~~~~~~~~~~엄마 미워!!!!!!!!!!!!!!!!!!"


휴. 한숨이 난다. 물론 입 밖으로 나오는 한숨은 아니다. 마음의 한숨. 5살 엄마에게 한숨도 마음으로 내뱉는 스킬쯤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의 울음이 점점 커진다. 하루라도 웃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날이 없다. 하지만 영상에 있어선 나도 물러서지 않는다.


누군가는 밥을 먹는 동안 아이에게 영상을 틀어주고, 치킨을 먹을 때도 영상을 틀어주고, 외식을 할 때도 영상을 틀어준다. 아이는 분명 같은 공간에 있지만 영상에 빠져 그 안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편안하게 밥을, 치킨을, 외식을 한다. 분명 모두가 편안해 보이는 해결바카라처럼 보일 수 있다. 나도 쉬운 육아에 유혹을 느낀 적이 뻥 안 치고 1,500번은 될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다.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면 나쁜 엄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진경이가 세 돌이 막 지났을 무렵 남편과 호캉스를 한답시고 호텔에서 조식을 한번 먹었는데, 그 호텔에는 그날따라 나와 남편 또래의 일본인 가족들이 많았다. 우리 진경이 또래 정도 돼 보이는 아이를 하나씩 갖고 있는 일본인 부부. 그리고 그 부부들은 정말 놀랍게도 아이에게 영상을 아예 보여주지 않았다. 평소 일본인이라 하면 남에게 피해 주는 걸 극히 꺼려한다고 생각했기에, 호텔에 아이를 데려온 그들이 한국의 우리 또래처럼 무조건 영상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모든 테이블의 아이들에게 차분히 밥 먹는 법을 알려주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알았다. 아이들에게 영상을 보여주지 않아도 같이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영화 속 장면 같은 가족의 식사 장면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면 나쁜 엄마다."


내 마음속에는 늘... 나쁜 엄마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새겨져 있다. 분명 생각이고, 강박인데 새겨진 곳은 마음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진경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괜히 아려온다. 정말 멋진 워킹맘처럼 일도, 육아도 훌륭하게 해내는 엄마의 모습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진경이에게 나쁜 엄마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질문. 5살에 엄마를 잃고 홀아비로 불리던 아빠 손에 자란 내게 엄마의 모습은 없다. 마흔. 딱 지금의 내 나이. 다섯 살. 딱 지금의 딸의 나이. 그때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본인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때 5살이었던 나도 원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 세상은 꼭 원하지 않는다고 안 되는 것은 아니기에.


영상을 보지 못하게 했다고 저렇게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울고 불며 나를 미워하고, 싫다 소리쳐대는 딸에게 나와 같은 그때 마흔의 엄마는 뭐라고 하실까. 모르겠다.


빨간 신호에 걸려 차를 멈춘다. 룸미러를 통해 눈물범벅이 된 진경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런 내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물만 펑펑 울리고 있는 내 딸.


여전히 모르겠다. 엄마가 울고 있는 딸에게 뭐라고 했을지.

내가 진경이에게 뭐라고 해줘야 할지.

아이를 위해서 지켜내려고 하는 내 노력이

왜 나를 오히려 나쁜 엄마로만 몰아붙이는 것 같은지.


가을이 성큼 다가온 아침.

가야 할 길은 분명한데,

나만 길을 잃은 기분이다.


나는 정말 나쁜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정말...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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