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소설 소개: 마흔 살, 출판사 편집자. 어느 날 20년 전 투고된 미출간 원고를 발견한다.
육아에 지치고, 온라인 게임에 치이고, 사람에게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원고 속 여자의 삶이 소름 끼치도록 내 삶과 닮아 있다. 이 여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이 원고에는 내 미래까지 적혀 있을까.
'오늘은 이거랑 이거 꼭 해야 할 것 같고, 이건 이번 주까지니까.. 내일로 미루고.. 무엇보다 제일 급한 건, 팀장이 꽂혀있는 유튜버 작가 놈 원고인데.. 하.. 다시 퇴고 푸시를 해봐야 하나... 돌겠네...'
바카라상 오른쪽 바들바들 떨며 가련하게 서있는 주간달력을 펼쳐 볼펜으로 해야 할 일을 체크한다. 나름 커리어우먼처럼 보이게 루틴으로 매일 하는 건데, 하루하루, 한주 한 주, 넘어갈수록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일은 많고, 해도 해도 계속 생겨나는 건지. 출판업계는 망해가고 있다고 하는데, 왜 내 주간달력은 활활 타오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타 없어지지 않고 달력만 타는 게 문제지. 문제다 문제. 아니. 왜 나만 바쁜 것 같지. 저 망할 구 팀장은 뭐가 신난 지 줄 달린 이어폰 귀에 꽂고 낄낄 대고 있고, 마 과장은 오늘 점심 메뉴 뭐 먹을지 화면에 띄우고 눈을 반짝이고 있는데... 망.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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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Lewis
'멋진 말이네. 애니띵. 라이팅. Ing로 라임 맞추고, 쓰면 어떤 거이든 할 수 있다라...'
컴퓨터 앞에 선, 아니 앉은 편집자로서 수많은 루틴 중 하나인 온라인카지노 로그인 전 화면에 뜬 글귀에 눈길이 머문다. 내게 뭔가 말을 거는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다. 생각은 하는데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분명 아는 것 같은데.
온라인카지노에 떠있는 글귀. 직업 특성상 수십 수백 번은 봤을 문구인데, 요즘 유독 내 눈에 거슬리는 말. 그리고 더 이상하게도 애니띵이 왜 썸띵이 아니었을까 하는 텅 빈 쓸쓸함을 주는 문구.
애써 쓸쓸한 눈빛을 감춘 채 묵묵한 두 번째 손가락으로 애꿎은 마우스를 클릭하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마우스 가운데 있는 휠을 돌려 화면 속 스크롤을 빠르게 내려본다.
'어디.. 오늘은 좀 다르려나...'
마음속에서는 유튜버 작가한테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지지만 내 손가락은 꿋꿋이 글들을 탐닉한다.
온라인카지노 세상은 아프다. 속상하고. 눈물 나고. 그러다 또 아프다.
가족이 떠나고, 본인이 아프고, 세상에 절망하고, 길을 잃은 분노가 글자에 담겨 활활 타기도 한다.
하소연에 하소연이 끝이 없지만, 행여 누군가 그런 자신을 발견할까 봐 겁내고 떨며 아파하는 글자들의 세상.
서로 자신을 더 봐달라고, 더욱더 반짝반짝 빛나고 싶어 뽐내고, 치장하고, 자랑을 쏟아내는 인스타그램과는 딴판인 세상.
같은 현실에 있는 세상이라고 믿기 어려운 만큼 정반대인 두 세상.
그 두 세상이 함께하는 이 현실은, 이 현실 속 사람들의 진짜 현실은 어떤 모습인 걸까.
온라인카지노와 인스타그램.
현실 속 사람들은 어디에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어떨까.
나라는 인간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온라인카지노 작가라면, 어떤 글이 나올까.
일단 확실한 건 해피엔딩에 집착할 것 같다. 그리고.. 최대한 가벼운 어투로 쓸 거 같다. 반짝반짝 인스타그램 가벼운 글자들처럼. 물론 그 가벼움 속에 작가로서 전하고 싶은 목소리는 잘 감춰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아. 그런 작가가 하나 있었지!‘
내용은 해피하지 않은데 결말은 어떻게 해든 해피엔딩을 멱살 잡고 끌어오는 작가. 세상 가벼운 말투로 말을 걸어오지만, 글을 읽고 나면 알 수 없는 묵직함을 마음속에 남기는 작가.
<작가소개: 글 쓰고 싶은 작가입니다>
작가 소개란을 보니 그 작가 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가와는 육아 휴직 전 살짝 인연이 있다. 애증의 관계랄까.
우연히 처음 온라인카지노에서 이 작가의 글을 보게 되고는 홀딱 반했었다. 당장 컨택해서 이 작가의 글을 편집자로서 말끔하게 다듬고 돌봐줘서 세상에 활짝 보여주고 싶었다. 육아휴직 전의 나는 야생마 같은 직진 편집자였기에 바로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그 작가는 답장이 없었다. 어떻게든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메일을 보내는 족족 씹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았던 출판사의 편집자 아닌가. 바로 온라인카지노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작가의 연락처를 물어봤다.
"개인정보는 공개할 수 없..."
'그래. 내 위치가 그 정도였겠지. 사장님이 전화 걸어서 물어봤어도 개인정보 운운할까. 언제부터 그렇게 법을 잘 지키셨다고. 누가 보면 나라 위해 온몸 불사르는 철밥 공무원인 줄 알겠어.'
결국 실패했다. 한동안 메일을 보냈지만 결국 닿지 못했다. 그렇게 작가의 글을 간간이 염탐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작가에게 메일 답장이 왔다. 본인이 메일 확인을 아예 안 했어서 온 줄 몰랐고 연락이 늦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본인에게 출간 제안을 해줘서 감사하다고. 하지만. 그래 늘 이 하지만이 문제다. 어떤 때는 정말 꼴도 보기 싫은 세 글자. 하지만. 그때도 딱 그랬다.
하지만 그 작가는 이미 같이 하기로 한 출판사가 있고, 이번 주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 위해 미팅을 하기로 했다고.
야생마였던 나는 직진으로 아직 계약 전이면 계약 파투내고 나랑 하자고. 우리 회사의 자랑을 구구절절 썼더랬다.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 작가에게 답장이 온 건 내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사무실에서 추스르던 어느 날이었다. 내용은 그때 계약했던 출판사에서 출간을 했고 본인의 바카라은 모두에게서 잊혔다는 내용. 대부분의 작가들이 겪는 일이었기에 크게 놀라진 않았으나, 한 때 그 작가의 글로 세상을 들썩이게 하고 싶었던 편집자로서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출간한 지 몇 년이 지났건만 계약서에 있는 내용과 달리 아무런 정산을 받지 못했는데 방법이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것저것 묻고 싶었으나, 아니, 사실 그때 그러니까 내 말대로 나 같은 훌륭한 편집자와 작업하지 그랬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다 지난 일. 그리고 육아휴직 전의 야생마는 출산과 육아휴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상태였기에 그럴 에너지가 없었다. 그저, 잘 해결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답장만 보냈던 것 같다. 이것저것 조언해주고 싶었으나, 이 업계에서 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그저 그렇게 짧은 메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 이후로 그 작가는 웬일인지 한동안 온라인카지노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글 쓰고 싶은 작가입니다> 소개만 남긴 채 예전 글들만 두고 홀연히 사라졌다. 많은 온라인카지노의 작가들이 그랬듯이.
나는 그 작가가 사라지기 전 남기고 간 예전 글들을 살펴본다. 가볍지만 무겁다. 깊지만 얕게 펼친다. 글 쓰고 싶은 작가다운 글이다. 분명 그 출판사와 낸 바카라이 잘 되었다면, 더 크게 되었을 작가이다.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내 편집자로서의 촉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엥? 이건 뭐야?'
작가의 글에 댓글이 달려있다. 구구절절 무려 5줄에 걸친 댓글이다.
'사람이 쓴 게 아닌 거 같은데.'
분명 댓글을 쓴 사람은 있는 거 같은데, 그 글은 사람이 쓴 게 아닌 게 느껴진다.
'AI...? AI야?? 진짜??? 도랐네..'
작가의 다른 글에도 비슷한 댓글이 5줄 써있다. 다른 글에도 5줄. 또 다른 글에도 5줄이다.
너무 기가 막힌다. 이제 글을 AI에 그냥 쓰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런 댓글도 AI로 쓰나 보다. 이것도 유행인 건가? 망할 AI가 어디까지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겠다. 아니, 왜 사람들은 이런 것까지 AI로 쓰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댓글을 왜 AI로 쓰는 거지? 아니, 글을 쓰는 작가들이 정말 이걸 AI가 썼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작가를 기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아닌, 작가를 꿈만 꾸는 애 엄마 편집자도 단박에 알아보는데 이 작가가 이런 댓글을 보면 얼마나 자괴감이 들까.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그냥, 글을 읽지 않을 거라면, 하트 좋아요도 바라지 않으니 그냥 지나가시라고, 그렇게 말할 것 같다.
아마도 출판사에 상처받고 글을 절필한 이 온라인카지노 작가에게, 이런 무참한 댓글들의 나열은 또다시 상처가 될 것이다. 메일을 보내볼까, 하는 마음이 살짝 든다. 그래도 나름 업계에서 이름 있는 출판사의 편집자로서 메일을 보내면, 상처에 찢겨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고 있을 이 작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야생마의 욕심이 피어오른다.
"아니, 마 과장. 뭔 느낌인지 몰라? 여태 내가 설명해 줬잖아. 이 느낌을 왜 이해 못 하는 거야 도대체. 어디까지 떠먹여 줘야 하는 건지 참. 미국 출판사에서는 이런 포스터 안 만들어봤나 보지? 어휴. 어휴!!!"
구 팀장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커다란 마 과장이 잔뜩 웅크린 채 팀장 옆에서 쩔쩔매고 있다. 기력이 다 빠진 지금의 야생마는 고개를 돌려 회피한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