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신의 로그》
PART 3 — 〈몽골〉
제16화 〈바다〉
무함마드가 고삐를 잡은 뒤에도 전장은 한동안 달라지지 않았다.
술탄의 깃발은 여전히 본진 위에서 펄럭였고, 먼지로 흐려진 평원에서는 호라즘 기병들이 수부타이의 전열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창과 칼이 햇빛을 튕길 때마다 함성이 솟구쳤으며, 조금 전까지 무함마드 자신도 그 광경을 내려다보면서 승리가 가까워졌다고 믿었다.
실제로 이길 수 있었다.
수부타이의 선봉은 처음 맞부딪친 자리에서 크게 밀려났고, 호라즘군에는 아직 전장에 들어가지 않은 병력도 남아 있었다. 제베가 도착하더라도 본진을 지킬 기병으로 시간을 번 뒤, 앞에서 싸우는 부대를 돌려세우면 승부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눈은 더 이상 그 전장을 보고 있지 않았다.
수부타이를 밀어붙이는 호라즘군의 뒤쪽, 아득한 먼지구름 아래에서 제베의 기병들이 커다란 호를 그리며 달리고 있었다. 수부타이의 측면을 구원하기에는 지나치게 깊고, 싸우는 부대의 후방을 치기에는 너무 바깥쪽으로 벌어진 움직임이었다. 그 궤적이 향하는 곳은 전장이 아니라 자신이 있는 본진이었고, 제베가 조금만 더 깊숙이 파고들면 아직 열려 있는 서쪽 퇴로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자신이 붙잡히면 이 전투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술탄이 살아 있는 한 서쪽의 도시와 장수들은 다시 병력을 모을 수 있었고, 남은 영토도 하나의 제국이라는 이름 아래 묶어둘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죽거나 포로가 되는 순간, 지금 눈앞에서 이기고 있는 군대조차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무함마드는 그렇게 판단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믿었다.
그는 곁에 남아 있던 호위대장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앞의 군대에는 계속 밀어붙이라고 전해라. 수부타이를 전선에 붙잡아두면 제베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호위대장이 명령을 전하려 몸을 돌리자 무함마드는 술탄의 깃발을 올려다봤다. 바람을 받아 크게 펄럭이는 깃발 아래에는 천막과 전령, 예비 병력이 그대로 남아 있어 멀리서 본다면 술탄과 장수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믿을 수 있었다.
“깃발과 천막은 그대로 둔다. 꼭 필요한 사람만 데려간다.”
곁에 있던 장수의 얼굴이 굳었다.
“전하, 군대에 퇴각 명령을 내리시려는 겁니까?”
“퇴각이 아니다. 내가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동안 전선은 그대로 유지한다. 저 군대를 살리려면 제베가 노리는 것을 먼저 치워야 해.”
무함마드는 먼지 속에서 자신을 향해 휘어지는 기병을 바라봤다.
“내가 붙잡히면 오늘의 승리도 끝이다. 서쪽으로 가서 다시 병력을 모은다.”
장수는 전장을 돌아봤다. 호라즘군의 깃발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병사들은 자신들의 술탄이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고 믿으며 싸우고 있었다.
“병사들에게는 언제 알리시겠습니까?”
“지금 알려서는 안 된다. 내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면 퇴각 명령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제베보다 먼저 우리 군대가 길을 막게 돼.”
짧은 침묵이 흘렀다.
장수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시종과 전령 가운데 필요한 사람만 추려졌고, 호위병들도 대열을 갖추지 않은 채 둘씩 셋씩 나뉘어 본진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말의 속도를 높이면 전장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눈에도 이상하게 보일 수 있었으므로, 멀리서는 장수 몇 사람이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만 보일 만큼 천천히 움직였다.
그들의 등 뒤에서 함성이 터졌다.
“술탄 만세!”
승기를 잡았다고 믿은 호라즘 병사들의 외침이었다.
무함마드의 손이 고삐 위에서 잠깐 굳었다.
돌아본다면 아직 자신을 위해 싸우는 수만 명과, 그 위에서 펄럭이는 자신의 깃발이 보일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낮은 구릉이 전장을 가려 깃발과 창끝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말의 옆구리를 걷어찼고, 그 순간까지 조용히 움직이던 호위대도 일제히 속도를 높였다.
수십 개의 발굽이 마른 땅을 후려치며 흙먼지를 길게 끌어올렸다.
술탄은 자신이 제국을 지키기 위해 전장을 떠난다고 믿었다.
그 뒤에 남은 군대는 아직 그 사실을 몰랐다.
───
에센은 호라즘의 술탄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에게 보이는 세상은 말의 머리와 흔들리는 깃발, 눈과 입 안으로 파고드는 먼지, 그리고 자신을 따라 움직이는 아홉 명의 기병이 전부였다. 호라즘군의 압박은 좀처럼 약해지지 않았고, 창을 든 기병들이 앞줄에서 쓰러져도 뒤의 말들이 곧바로 그 자리를 메우며 밀려들었다.
에센의 왼쪽에서 병사 하나가 칼을 막아내다 안장에서 미끄러졌다. 한쪽 발이 등자에 걸린 채 몸이 말 옆으로 늘어지자 에센은 가까운 병사의 어깨를 밀며 소리쳤다.
“붙잡아! 발부터 빼지 않으면 말에 끌려간다!”
병사 둘이 달려드는 적을 막는 사이 다른 하나가 말의 고삐를 붙잡아 속도를 늦췄다. 에센이 옆으로 붙어 늘어진 기병의 몸을 받쳐 올리자 등자에 걸려 있던 발이 빠졌고, 사내는 땅에 떨어져 무릎과 손바닥으로 흙을 짚었다.
그는 피가 흐르는 이마를 손등으로 훔친 뒤, 병사가 붙들고 있던 제 말의 안장을 움켜쥐었다. 에센이 팔을 잡아 끌어주자 이를 악물고 다시 말 위로 올라왔다.
“움직일 수 있겠어?”
“할 수 있습니다!”
대답은 힘이 있었지만, 안장에 앉는 순간 사내의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에센은 놓치지 않았다.
“가운데로 들어와. 혼자 앞으로 나가지 마.”
그를 안쪽으로 들여보낸 에센이 다시 전방을 보았을 때, 호라즘 기병 하나가 흙먼지를 뚫고 달려들었다. 사내가 내지른 창끝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번뜩였고, 에센이 몸을 말의 목 가까이 낮추며 고삐를 틀자 쇠날은 갈기를 몇 올 끊고 그의 뺨 옆을 스쳤다.
차가운 바람이 피부를 훑었다.
에센은 칼을 뽑았다. 말머리가 엇갈리는 순간 상대가 거두려던 창대를 칼등으로 밀어 올린 뒤 몸을 틀어 사내의 옆구리를 그었지만, 갑옷에 부딪친 칼날은 살을 파고드는 대신 거친 마찰음을 내며 미끄러졌다.
두 필의 말이 서로 지나쳤다.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새로운 기병이 이미 먼지를 헤치며 다가오고 있었고, 에센의 말도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발굽으로 마른 흙을 걷어찼다.
그런데 다음 충격은 오지 않았다.
에센은 칼을 든 채 몇 걸음 더 달린 뒤 자신도 모르게 말의 속도를 늦췄다. 조금 전까지 빈틈만 생기면 밀려들던 호라즘 기병들이 앞에서 서로의 말머리를 피하느라 엉키고 있었고, 그 뒤에서는 앞으로 오던 병력과 뒤로 빠지려는 병력이 맞부딪쳐 대열이 비틀리고 있었다.
호라즘의 깃발 아래로 달려갔던 기병 하나가 되돌아와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외쳤다. 그러나 그가 가리키는 방향과 다른 기병이 내젓는 팔의 방향은 서로 달랐고,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망설이는 말들이 그 사이에서 몸을 돌리고 있었다.
에센의 옆에 있던 병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저쪽이 왜 저럽니까?”
에센도 알 수 없었다.
적의 수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앞에 보이는 창과 말은 여전히 몽골군보다 많았고, 조금 전까지 수부타이의 전선을 밀어붙이던 힘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달라진 것은 그 힘이 향하는 방향이었다. 한 덩어리처럼 밀려들던 병력이 이제는 제각기 다른 명령을 들은 듯 앞으로 나아갔다가 멈추고, 옆으로 움직이다 다시 뒤를 돌아봤다.
그때 몽골군의 깃발들 사이에서 약속된 신호가 올라왔다.
후퇴를 멈추라는 명령이었다.
에센은 칼을 쥔 손을 들어 목이 쉰 채 외쳤다.
“대열 붙여! 저쪽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지금 놓치면 다시 밀려난다. 다친 사람은 가운데 세우고, 양쪽은 나를 따라와!”
흩어졌던 아홉 명이 먼지 사이에서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투구를 잃었고 다른 한 명은 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모두 말 위에 있었다.
에센은 그들을 확인한 뒤 고삐를 당겼다.
조금 전까지 뒤로 밀려나던 몽골의 전열이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
수부타이도 같은 변화를 보았다.
호라즘군은 여전히 강했고 전선 일부에서는 몽골 기병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빈틈을 메우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늦어졌다. 앞으로 너무 깊이 들어온 병력이 멈춰 뒤를 돌아보았고, 그들을 따라와야 할 후속 부대는 어느 깃발을 좇아야 할지 알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사람과 말은 그대로였다.
그들을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던 명령이 끊기고 있었다.
수부타이는 전령을 불렀다.
“왼쪽은 더 물러나지 말고 가운데와 붙여라. 오른쪽은 앞으로 나오지 말고 기다렸다가, 적이 갈라지는 순간 옆구리를 친다. 흩어진 부대를 쫓지 마라. 지금 끊어야 할 것은 사람의 목이 아니라 저놈들의 전열이다.”
명령이 깃발과 전령을 타고 퍼져나가자 뒤로 휘었던 몽골군의 선이 천천히 펴졌다. 물러나던 기병들이 말머리를 돌렸고, 조금 전까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밀려나던 병사들은 호라즘군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따라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호라즘군의 후방에서는 이미 소문이 칼보다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술탄이 다른 부대를 지휘하러 갔다는 말이 처음 돌았고, 곧이어 제베에게 포위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는 술탄이 서쪽으로 달아났다고 했으며, 어느 대열에서는 그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말까지 사실처럼 퍼졌다.
무엇이 진짜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명령을 받으러 본진에 갔던 전령이 빈 천막과 펄럭이는 깃발만 보고 돌아왔다는 사실은 감출 수 없었다.
후방에서 말머리를 돌린 것은 처음에는 몇 기뿐이었다. 그 움직임을 본 병사들이 퇴각 명령이 내려온 것으로 착각해 뒤따르면서 몇 기는 수십 기가 되었고, 수십 기가 한꺼번에 움직이자 앞에서 싸우던 사람들까지 어깨 너머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오른쪽 날개에서는 루큰 앗딘이 흩어지는 병사들을 깃발 아래로 불러 모았다. 아버지의 명령을 확인하러 보낸 전령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다른 부대에 진형을 유지하라고 전하는 사이에도 후방의 기병들은 계속 전장을 빠져나갔다.
“아직 퇴각 명령은 없었다! 자리를 지켜라!”
가까이 있던 병사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먼지 너머의 대열까지 그 명령이 닿기 전에, 달아나는 말들이 먼저 그들 곁을 지나갔다.
멀리 구릉 너머에서는 제베의 정찰대가 술탄의 호위대가 남긴 먼지를 발견하고 있었다.
“본진에서 소수의 기병이 빠져나갔습니다. 술탄의 호위로 보입니다.”
보고를 들은 제베는 달아나는 무리를 한동안 바라봤다. 곧장 뒤를 쫓는다면 추격은 계속할 수 있었지만, 아직 전장에는 수부타이를 압박하는 수만의 호라즘군이 남아 있었다.
그는 정찰대를 둘로 나눴다.
“놈들이 어느 길로 가는지 놓치지 마라. 가까이 붙지는 말고, 방향이 바뀔 때마다 흔적을 남겨라.”
정찰대가 술탄의 뒤를 따라 서쪽으로 흩어졌다.
제베는 나머지 병력을 향해 손을 들었다.
“우리는 돌아간다.”
기병들이 일제히 말머리를 틀었다. 술탄을 향해 길게 휘어졌던 대열이 이번에는 전장에서 싸우는 호라즘군의 후방을 향해 꺾였고, 수천 개의 발굽이 새로 일으킨 먼지가 바람 속에서 거대한 갈고리처럼 휘어졌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호라즘군은 더 이상 하나의 군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전방에는 아직 수부타이의 기병과 칼을 맞대는 병사들이 남아 있었지만, 후방에서는 수백 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장수들이 깃발을 흔들며 대열을 붙잡으려 할수록 앞으로 나아가려는 말과 뒤로 빠지려는 말이 한곳에 엉켜 움직임을 막았고, 넘어진 기수 위로 겁먹은 말들이 발굽을 내리찍으면서 비명과 울음이 먼지 속에서 뒤섞였다.
그 틈으로 수부타이가 밀고 들어갔다.
곧이어 제베의 기병이 후방을 때렸다.
아침부터 팽팽하게 버텨온 전열은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는 호라즘 장수들이 병사들을 다시 모아 몽골군의 돌파를 막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술탄이 없어도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며 깃발 아래 모이는 기병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곁을 달아나는 말이 하나씩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남은 사람들의 눈에도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술탄은 어디에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해줄 사람이 없었다.
앞에서 싸우던 부대 하나가 마침내 등을 보이자 뒤의 대열도 무너졌고, 조금 전까지 평원을 가득 메웠던 호라즘의 깃발들이 하나둘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는 사람과 말 사이를 몽골 기병들이 파고들면서, 승리를 눈앞에 두었던 군대는 해가 완전히 지기도 전에 수많은 패잔병으로 흩어졌다.
그 시각 무함마드는 이미 멀리 서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군대를 남겨두는 것이 제국을 버리는 일은 아니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자신이 살아서 서쪽의 병력을 다시 모으면,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장에 남은 사람들에게 그 차이는 없었다.
───
전투가 끝난 뒤 제베와 수부타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술탄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해가 진 평원에서는 부상자들의 신음과 주인을 잃은 말들의 울음이 이어졌고, 짓밟힌 풀과 흙 위로는 피와 말똥, 부러진 화살과 찢어진 깃발이 뒤섞여 있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다친 동료를 찾아 어둠 속을 돌아다녔지만, 두 장수의 전령들은 벌써 제베가 앞서 보낸 정찰대의 흔적을 좇고 있었다.
전장에서 붙들려 있던 시간은 이미 말로 따라잡아야 할 거리가 되어 있었다.
무함마드는 자신을 위해 싸우던 군대를 남겨놓고 시간을 얻었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 시간을 거리로 바꾸는 일이었고, 제베와 수부타이는 그 거리를 다시 없애야 했다.
부상으로 말을 탈 수 없는 사람과 그들을 돌보며 전리품을 수습할 병력만 남고, 나머지는 날이 밝기 전에 다시 안장에 올랐다.
추격이 시작되었다.
그 뒤로는 도시의 이름보다 흔적이 중요했다. 어느 성의 깃발이 바뀌었는지, 누가 그곳을 다스리는지는 술탄의 행방과 관계없는 일이었다. 우물가에서 급히 말을 바꿔 탄 자국과 길가에 버려진 짐, 피가 채 마르지 않은 말의 사체, 서쪽으로 향한 낯선 일행에게 물과 식량을 빼앗겼다는 촌부의 증언이 그들을 앞으로 이끌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무함마드가 지나간 자리가 선명했다. 말발굽 자국은 바람에 무너지지 않았고 야영지의 재에서는 희미한 온기가 남았으며, 밤이 되면 멀리 서쪽 하늘 아래에서 불빛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술탄은 다시 사람의 모습에서 흔적으로 바뀌었다.
길은 산맥을 돌아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메마른 평원을 가로질렀고, 얕은 강을 건넌 뒤에는 바위와 가시덤불이 뒤섞인 구릉으로 이어졌다. 그 사이 무함마드는 자신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을 하나씩 남겨두고, 짐을 버리고, 더 빠른 말로 갈아탔다. 제베와 수부타이의 군대도 같은 길을 지나며 남아 있던 무거운 짐과 불필요한 물자를 떼어냈고, 사람과 말이 견딜 수 있는 한계까지 하루의 거리를 늘렸다.
에센에게는 지나온 도시의 이름보다 말의 상태가 더 정확한 시간의 표시가 되었다. 아침에는 힘차게 땅을 차던 말이 저녁이면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고, 안장을 벗겨낸 자리에는 땀이 거품처럼 엉겨 있었다. 병사들은 잠깐 멈출 때마다 발굽에 박힌 돌을 빼고 갈라진 굽에 기름을 문질렀으며, 제 말의 다리가 무너지기 전에 예비마로 안장을 옮겼다.
술탄이 어느 곳에서 말을 바꿨다는 소식이 들어오면 추격대도 속도를 높였다.
하루가 며칠이 되고, 며칠이 다시 여러 날로 포개졌다.
그들이 지나온 땅은 등 뒤에서 계속 멀어졌지만 앞에는 언제나 또 다른 길이 열렸다. 산을 넘으면 평원이 있었고, 평원의 끝에서는 새로운 구릉이 솟았으며, 강이 나타나면 얕은 여울을 찾아 건넜다.
땅이 있는 한 달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두에서 능선을 넘던 기병들이 갑자기 말을 세웠다.
뒤따르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정찰대가 적을 발견했거나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먼저 올라간 기병들은 무기를 꺼내지도,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지도 않은 채 능선 너머만 바라보고 있었다.
뒤에서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는 말들이 계속 능선으로 올라왔고, 앞이 막히자 기수들은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고삐를 잡아당기며 좌우로 퍼져나갔다.
에센도 자신의 십호를 이끌고 그곳에 도착했다.
“앞에 무슨 일이야?”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먼저 도착한 병사들의 얼굴에는 적을 발견했을 때의 긴장도, 길을 잃었을 때의 당혹감도 없었다. 모두 무언가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눈을 가늘게 뜬 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센은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고삐를 당겼다.
산과 강, 사막과 초원을 지나며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대지가 능선 아래에서 갑자기 끊겨 있었다.
그 너머에는 물이 있었다.
처음에는 거대한 호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물의 끝이 보이지 않았고,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겨도 푸른빛은 계속 이어졌다. 햇살은 잔물결 위에서 수천 수만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눈이 시릴 만큼 반짝였으며, 멀리 갈수록 물과 하늘의 빛깔이 서로 스며들어 어디까지가 물이고 어디서부터 하늘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초원도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초원에는 말발굽을 디딜 땅이 있었고,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달려가면 언젠가는 닿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눈앞의 것은 달랐다.
땅이 끝났다.
에센이 멈춘 뒤에도 군대는 계속 능선을 넘어왔다. 십 기가 백 기로, 백 기가 천 기로 불어나면서 해안과 구릉 사이의 빈 땅이 사람과 말로 채워졌고, 한 명의 기병이 끌고 온 예비마와 짐말까지 섞이자 어느 방향을 바라보아도 말의 등과 갈기, 가죽 안장과 창끝이 햇빛 아래 이어졌다.
누군가 먼저 물가로 내려가기 전까지 병사들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이 달릴 때마다 대지는 언제나 소리로 먼저 반응했다. 수천 개의 발굽이 만들어낸 진동이 땅속을 타고 퍼졌고, 그 위를 덮은 굉음은 사람의 목소리와 뿔나팔 소리마저 삼켜버렸다. 흙먼지가 일어나면 한낮의 햇빛도 누렇게 흐려졌으며, 멀리 있는 사람들은 군대의 모습을 보기 전에 땅의 떨림부터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말들이 하나씩 걸음을 멈출 때마다 그 거대한 소리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발굽 소리가 사라진 자리를 낯선 소리가 채웠다.
철썩.
물결 하나가 모래 위로 길게 밀려왔다가 수많은 자갈을 끌고 물러났다. 뒤이어 들어온 파도는 먼저 남은 물자국을 덮으며 햇빛을 하얗게 부쉈고, 그때마다 젖은 모래 위로 얇은 거품이 생겼다가 금세 사라졌다.
바람에도 처음 맡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강이나 우물가의 축축한 흙냄새와 달랐고, 비를 머금은 초원의 풋내와도 달랐다. 물에서 불어오는 바람인데도 코와 입술에는 어딘가 마른 듯한 짠 기운이 남았으며,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목구멍 안쪽까지 서늘해졌다.
말들도 그 냄새와 소리를 낯설어했다.
물가까지 내려간 말 한 필이 파도를 향해 코를 내밀었다가 갑자기 밀려든 물이 발굽을 적시자 목을 세우며 뒷걸음질 쳤다. 기수가 고삐를 당기기도 전에 말은 젖은 모래를 걷어차며 돌아섰고, 그 모습을 본 병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시 수평선을 바라봤다.
한 병사가 눈앞의 물과 동료들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저게 강이라면 건너편이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넓어도 강에는 맞은편이 있잖아.”
옆의 병사가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한참 동안 먼 곳을 살폈다.
“강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호수라기에는…… 끝이 어디 있는지도 보이지 않는데.”
“끝이 없는 호수도 있나?”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에센은 말에서 내려 물가로 걸어갔다. 장화 밑으로 젖은 모래가 조금씩 꺼졌고, 얕은 물이 발목 가까이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면서 작은 돌들이 서로 부딪치는 사각거림을 남겼다.
그는 손가락 끝에 물을 묻혀 혀에 가져갔다.
“짜다.”
뒤따라온 병사가 에센이 자신들을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물을 직접 찍어 맛보았다가 곧바로 뱉어냈다.
“정말 짜잖습니까. 저렇게 물이 많은데 한 모금도 못 마신다고요?”
주변에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누군가 물었다.
“저게 전부 짠 건가?”
에센도 수평선을 바라보며 입가를 조금 올렸다.
“궁금하면 네가 끝까지 가서 확인해 봐.”
“말이 들어가지 않는데 제가 어떻게 갑니까?”
“그러니까 묻지만 말고 네가 알아내라고.”
이번에는 웃음이 조금 더 길게 이어졌다.
전투에서 살아남았을 때 터뜨리는 웃음도, 달아나는 적을 조롱하는 웃음도 아니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세상의 길을 제법 많이 알게 되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로는 닿을 수 없는 세계를 처음 만났을 때 흘리는 당혹스러운 웃음이었다.
에센은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말을 세운 수부타이를 발견했다.
수부타이도 아무 말 없이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센은 그에게 다가가 나란히 물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장군님, 저 너머는 어떤 곳입니까? 우리가 지나온 곳처럼 말을 달릴 수 있는 땅입니까?”
평소 같으면 수부타이는 바로 대답했을 것이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어디에서 물을 구할 수 있는지, 적이 어느 방향에서 나타날 수 있는지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에센에게 수부타이는 세상의 길을 모르는 법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답이 늦었다.
수부타이는 햇빛 속에서 희미해지는 수평선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모른다.”
그 짧은 대답이 에센에게는 바다보다 낯설었다.
그때 해안선을 따라 달려온 정찰병 하나가 수부타이와 그 곁으로 다가온 제베 앞에서 말을 세웠다.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말의 콧김이 거칠었고 목과 가슴은 거품 섞인 땀으로 젖어 있었다.
“술탄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확인해 보니 배를 타고 떠났다고 합니다. 물 건너에 섬이 있고, 그곳으로 들어갔답니다.”
제베가 정찰병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보이는 것은 물뿐이었다.
“섬까지 얼마나 멀지?”
“해안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물길을 아는 자가 아니면 어느 방향인지도 알기 어렵다고 합니다.”
“배는?”
“술탄이 탈 만한 큰 배와 뱃사람들을 먼저 데려갔습니다. 남은 것은 해안 가까이에서 고기를 잡는 작은 배들뿐입니다. 몇 사람은 태울 수 있지만 파도가 높아지면 견디기 어렵고, 이곳 물길에는 얕은 곳과 갑자기 깊어지는 곳이 뒤섞여 있어 길을 아는 사람 없이 나가면 섬을 찾기 전에 표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수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사마르칸트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무함마드는 짐을 버리고, 자신을 따르던 사람을 줄이고, 마지막에는 자신을 위해 싸우던 군대까지 전장에 남겨놓았다. 제베와 수부타이는 그가 버린 것들을 하나씩 지나 더 먼 곳까지 달렸고, 마침내 술탄을 말로는 더 이상 쫓을 수 없는 곳까지 몰아붙였다.
마지막 순간 그를 지켜준 것은 성벽도, 군대도, 보물도 아니었다.
말이 달릴 수 없는 물이었다.
파도가 다시 밀려왔다.
젖은 모래 위로 하얀 거품이 번졌다가 수평선을 향해 천천히 끌려갔다. 해안에 늘어선 말들은 파도가 가까워질 때마다 귀를 뒤로 눕혔고, 병사들은 고삐를 쥔 채 그 움직임을 바라봤다.
몽골군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자신들을 멈춰 세운 세계를 바라보았다.
───
바다는 제베와 수부타이의 말을 멈춰 세웠다.
그러나 호라즘의 다른 도시들에서는 아직 발굽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무함마드가 카스피해의 섬으로 몸을 피한 뒤에도 그의 제국에는 수많은 성벽과 시장, 모스크와 집이 남아 있었다. 사막 사이의 오아시스마다 사람들이 살았고, 강을 따라 이어진 농경지에서는 다음 계절에 거둘 곡식이 자라고 있었으며, 대상로의 도시들은 아직 자신들의 세상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도시들을 하나로 묶던 명령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어느 길에서는 몽골군의 선두가 나타났고, 다른 길에서는 함락된 도시를 빠져나온 사람들이 반대편으로 몰려왔다. 어제까지 비단과 곡식, 소금과 말을 실은 대상이 오가던 길 위로 이제는 서로 다른 소문들이 사람보다 먼저 달렸다.
성문을 열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성문을 열어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도 있었다.
어떤 도시는 금과 말, 식량을 내놓고 다음 날 다시 시장을 열었지만, 어떤 도시에서는 항복한 주민들까지 성 밖으로 끌려나갔다. 몽골군에 맞서 얼마나 오래 싸웠는지, 그 과정에서 누구를 죽였는지, 장수와 칸의 가족 가운데 누가 피를 흘렸는지에 따라 같은 항복 뒤에도 서로 다른 결과가 기다렸다.
문을 닫는 순간 무엇을 잃을지는 알 수 있었다.
문을 열었을 때 무엇을 지킬 수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이듬해, 툴루이가 이끄는 군대가 호라산의 거대한 도시 메르브 앞에 나타났다.
그곳에는 본래 살던 주민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몽골군을 피해 주변 마을과 도시에서 몰려온 피난민들이 친척과 지인의 집, 모스크의 뜰과 시장의 빈 창고까지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 집에 두세 가족이 몸을 붙이고 지냈고, 성문 안쪽에는 언제 다시 길이 열릴지 기다리는 수레와 가축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성 안에서는 싸울 것인지 항복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성벽은 높았지만 피난민까지 먹일 식량은 넉넉하지 않았고, 사마르칸트와 부하라가 무너졌다는 소식도 이미 들어와 있었다. 끝까지 싸우자는 사람들은 문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을 빼앗길 것이라고 외쳤고, 항복하자는 사람들은 문을 닫고 버틴 도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하라고 맞섰다.
논쟁 끝에 성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문을 열었다고 해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 안의 모든 사람에게 밖으로 나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처음에는 무기를 빼앗긴 수비병들이 성문을 통과했고, 그 뒤로 관리와 상인, 장인과 그들의 가족이 이어졌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노인은 자식의 등에 업혀 나왔고, 신발을 찾을 틈도 없었던 아이들은 맨발로 돌바닥을 밟으며 어머니의 손을 붙잡았다.
어떤 사람은 곧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 집을 나서면서도 문을 잠갔다.
시장에는 미처 거두지 못한 물건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화덕 위에서는 끓다 만 솥이 불길을 잃은 채 식어갔다. 주인을 잃은 개 한 마리가 골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냄새를 좇았지만, 행렬은 계속 성 밖으로 밀려나왔다.
한 가족 뒤에 다른 가족이 붙고, 골목마다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큰길에서 합쳐지면서 조금 전까지 집과 가게, 작업장에 흩어져 살던 메르브의 주민들은 거대한 사람의 물결이 되어 평원으로 흘러나왔다.
성문 밖에서는 그들을 다시 나누기 시작했다.
“쇠나 돌, 나무를 다룰 줄 아는 자는 앞으로 나와라. 필요한 기술을 숨기면 가족까지 벌을 받는다.”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잠시 뒤 대장장이 한 명이 굳은 손을 들어 올렸고, 그를 시작으로 목수와 석공, 도공과 직조공들이 하나씩 앞으로 나왔다. 몽골 병사들은 손바닥의 굳은살과 손톱 사이에 밴 쇳가루, 옷에 묻은 돌가루까지 살피며 거짓말하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장인들은 한쪽으로 보내졌다.
가족이 따라가려 하면 창대가 길을 막았다.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잡은 아이가 울면서 매달렸고, 병사가 팔을 떼어내려 하자 작은 손가락들은 옷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결국 낡은 천이 찢어지면서 아이가 뒤로 넘어졌고, 끌려가던 아버지는 몇 번이나 몸을 돌렸지만 사람들 사이로 밀려나 더는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다음에는 젊은 남자들이 골라졌다.
“우리를 군대로 끌고 가는 건가?”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옆에 있던 남자가 앞만 바라보며 대답했다.
“말하지 마.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편이 낫다.”
병사들은 얼굴과 어깨, 팔과 다리를 살피며 싸울 수 있는 나이의 남자들을 다른 줄로 보냈다. 늙은 어머니가 아들의 허리를 끌어안고 놓지 않으려 했지만, 창대가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팔을 떼어놓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동안 평원의 모습도 달라졌다.
장인들이 모인 곳에는 별도의 무리가 생겼고 젊은 남자들의 줄도 길게 이어졌지만,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노인과 여자, 어린아이들이 서로 몸을 붙인 채 넓은 땅을 메웠으며, 처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묻던 목소리도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었다.
멀리 떨어진 가족을 찾는 이름만 간간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하산!”
어딘가에서 여자가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조금 뒤 다른 곳에서 아이가 어머니를 불렀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누군가 그 아이의 이름을 외쳤지만 두 목소리는 수천 명의 웅성거림 속에서 서로에게 닿지 못한 채 흩어졌다.
성문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주민들을 집 밖으로 몰아내고, 성문을 지나게 하고, 정해진 무리로 나누었던 몽골 병사들은 이제 평원을 에워싼 채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그때 멀리서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수천 명의 웅성거림에 묻힐 만큼 희미했지만 소리는 빠르게 가까워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먼지를 길게 끌고 달려온 전령 하나가 주민들을 둘러싼 병사들 사이를 지나 장수 앞에서 말을 세웠다.
전령은 안장에서 몸을 숙여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전했다.
장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주변의 병사들이 그를 바라봤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주민들도 말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는지, 평원을 채우던 웅성거림이 서서히 낮아졌다.
장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먼저 장인들이 모인 곳을 지나갔다.
다음으로 젊은 남자들의 긴 줄을 훑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원의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에게 멈췄다.
노인과 여자와 아이들.
수천 명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장수가 손을 들었다.
제16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