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로그

교차

by천시록

《신의 로그》

PART 1 — 〈카네시〉


제3화 〈교차〉



아침이 밝았을 때 비는 거의 그쳐 있었다.


밤새 산과 길을 두드린 빗줄기는 물러났지만, 지나간 흔적까지 거두어 가지는 못했다. 바위들은 물을 머금어 검게 젖어 있었고, 길 가장자리의 움푹 팬 곳마다 누런 흙탕물이 고여 있었다. 나귀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물러진 땅이 푹 꺼지며 발굽 자국을 깊게 남겼다.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발을 준비했다. 젖은 천을 펼쳐 물기를 털고, 밤새 내려놓았던 화물을 다시 나귀 등에 올린 뒤, 느슨해진 가죽끈과 밧줄을 하나씩 조였다. 사람보다 먼저 짐승들에게 물을 먹이고 발굽과 다리를 살핀 뒤에야 행렬이 움직일 채비를 갖췄다.


“오늘도 오려나?”


누군가 잔뜩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그걸 알면 장사를 하고 있겠어?”


“그럼 뭘 하는데?”


“왕 옆에 앉아서 하늘이나 쳐다보고 있겠지.”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슈르나담은 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자신의 나귀를 살폈다. 등에 올린 개인 짐꾸러미를 손바닥으로 힘껏 눌러보고 반대편으로 돌아가 무게를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밧줄을 잡아당겼다.


어제 비를 피해 다른 화물 안쪽으로 옮겨놓았던 짐이었다. 그 깊숙한 곳에 작은 가죽주머니가 들어 있었고, 꾸러미를 묶은 끈은 단단했다.


“갑시다!”


행렬 앞쪽에서 출발을 알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나귀들이 하나둘 발을 떼었다. 젖은 흙을 밟는 소리가 길 위로 이어지기 시작했고, 아슈르나담도 자신의 나귀 옆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해가 높아질수록 길은 산 사이로 깊숙이 들어갔다.


한쪽에는 완만하게 솟은 사면이 길을 따라 이어졌고, 다른 한쪽 아래로는 골짜기가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 오래전부터 수없이 많은 대상이 오갔던 길에는 발굽 자국과 바퀴 흔적이 겹겹이 패여 있었지만, 밤새 내린 비 때문에 곳곳의 형태가 달라져 있었다.


물이 고인 자리에서는 짐승의 걸음을 늦추고, 진흙이 깊게 팬 곳에서는 조금 멀더라도 단단한 땅을 골라 돌아갔다. 비탈 가까이에서는 누구랄 것도 없이 나귀의 고삐를 짧게 잡았다.


그것 말고는 평소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가 그친 뒤라 공기는 오히려 서늘했고, 걷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아슈르나담보다 몇 걸음 앞에서 젊은 사내 하나가 나귀를 끌고 가고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걷던 사내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아슈르나담 님. 어제 말씀하신 거 말입니다.”


“뭐?”


“아내분께 줄 거요.”


아슈르나담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도 그게 궁금해?”


“하루 종일 걷다 보면 별게 다 궁금해집니다.”


“그럼 네 발이나 보면서 걸어.”


“장신구 아닙니까?”


아슈르나담의 표정을 본 사내가 입꼬리를 올렸다.


“맞죠?”


“아니야.”


“그럼 뭡니까?”


“나귀 먹이.”


사내는 자기가 끌고 가는 나귀를 내려다봤다.


“아주 좋은 걸 먹네요.”


“그러니까 잘 모셔.”


사내가 피식 웃으며 다시 앞을 향했다.


몇 걸음이나 갔을까. 이번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래도 좋아하시겠죠?”


“누가?”


“아내분 말입니다.”


아슈르나담은 자신의 나귀를 잠깐 돌아봤다.


“모르지. 좋아하기 전에 가격부터 물어볼 테니까.”


젊은 사내가 웃었다.


“그럼 값은 좀 깎아서 말씀하셔야겠네요.”


아슈르나담의 머릿속에 라미시의 얼굴이 떠올랐다.


목걸이를 받아 들고 한 번 바라본 뒤, 다시 자기 얼굴을 볼 것이다. 분명 눈빛부터 달라질 테고, 기뻐하는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면서 가장 먼저 물을 말은 뻔했다.


얼마 줬어요?


아슈르나담의 입가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시끄러워. 앞이나 봐.”


그때 앞서 걷던 상인이 손을 들자 행렬의 속도가 서서히 줄었다.


“뭐야?”


사람들이 길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산길 너머 먼 곳에서 작은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인지 둘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이 거리가 좁혀지자 차츰 여러 개의 형체로 갈라졌다. 짐을 실은 나귀들이 줄지어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젊은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아슈르 쪽에서 오는 모양인데요.”


아슈르나담도 손을 이마에 얹었다.


“그렇겠지.”


두 대상은 같은 산길 위에서 서로를 향해 천천히 가까워졌다.


───

맞은편의 나귀들 역시 비를 맞은 흔적이 역력했다. 털은 아직 눅눅했고, 화물 위에 덮어놓았던 가죽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직물과 자잘한 물품들 사이에는 천과 가죽으로 여러 겹 싸인 작은 문서 꾸러미 하나가 들어 있었다. 라미시가 아슈르에서 떠나보낸 편지가 그 안에 있었다.


그것을 등에 싣고 걷는 나귀도 다른 짐승들과 다르지 않았다. 젖은 땅을 한 발씩 밟으며 카네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두 대상의 선두가 마주쳤다.


누가 명령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익숙하게 고삐를 짧게 잡고 길 가장자리로 나귀들을 붙였다.


“어디서 옵니까?”


“아슈르요.”


“길은 어떻소?”


“비 말고는 별일 없소.”


“우리도 밤새 맞았소.”


한 남자가 아직도 축축한 옷자락을 들어 보이며 투덜거리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카네시까지 얼마나 남았겠소?”


“지금부터 세기 시작하면 더 멀어지오.”


다시 웃음이 번졌다.


양쪽 행렬이 길을 나눠 쓰기 시작했다. 부피 큰 짐끼리 부딪칠 것 같으면 한쪽이 잠시 멈췄고, 나귀가 겁을 먹지 않도록 사람들은 몸을 틀어 서로에게 공간을 내주었다.


수없이 이 길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아슈르나담도 자신의 나귀 목 가까이로 손을 뻗었다.


“이쪽으로.”


고삐를 짧게 잡아 나귀를 산 쪽으로 조금 붙였다.


맞은편에서 직물과 여러 꾸러미를 실은 나귀 한 마리가 다가왔다. 양쪽으로 불거진 짐이 서로 스칠 만큼 가까워지자 아슈르나담은 자기 나귀의 목을 손바닥으로 밀며 반걸음 더 안쪽으로 붙였다.


두 짐승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


아슈르나담은 지나가는 화물을 무심코 한 번 바라보고는 곧바로 앞을 향했다. 천과 가죽으로 싸인 작은 문서 꾸러미도 그의 어깨 가까이를 지나갔다.


라미시의 편지였다.


그 편지가 남편을 알아볼 리도 없었고, 남편 역시 그것이 아내에게서 온 것임을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산과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해 오던 두 사람의 마음이, 산길 한복판에서 고작 몇 걸음의 거리를 두고 엇갈렸다.


아슈르나담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맞은편 상인에게 물었다.


“아슈르에는 별일 없소?”


“내가 떠날 때까지는 없었소.”


“떠날 때 날씨는 어땠소?”


“비가 좀 왔소.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아슈르나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그가 다시 걸음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자신의 나귀가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래?”


고삐를 가볍게 당겼지만 짐승은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목을 잔뜩 세웠다. 두 귀가 쉴 새 없이 방향을 바꾸며 주변의 소리를 더듬었고, 콧구멍이 크게 벌어질 때마다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아슈르나담이 목덜미를 두드렸다.


“가자.”


나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거의 동시에 앞쪽에 있던 다른 나귀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목 깊은 곳에서 평소와 다른 낮고 거친 울음이 흘러나오자 맞은편 대상의 나귀도 걸음을 멈췄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여기저기에서 짐승들이 고개를 들거나 비탈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려 했고,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삐를 잡아당겼다.


“왜 이래?”


“가!”


한 마리가 몸을 돌리려다가 옆의 나귀와 부딪쳤고, 등에 실린 짐들이 서로 밀리면서 팽팽하게 조여놓은 밧줄이 끼익 소리를 냈다.


젊은 사내가 날뛰려는 나귀의 고삐를 붙들며 외쳤다.


“갑자기 왜 이러지?”


아슈르나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처럼 발굽에 돌이라도 끼었는지 확인하려 몸을 숙이던 순간이었다.


쿵.


발밑에서 무언가 울리자 그는 허리를 굽힌 자세 그대로 굳었다.


귀로 들었다기보다는 발바닥과 정강이를 타고 올라온 느낌에 가까웠다. 땅속 어딘가에서 거대한 것이 한 번 몸을 뒤척인 것처럼 둔중한 떨림이 지나갔다.


나귀들은 사람보다 먼저 그 진동을 느낀 모양이었다.


사람들도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웃음과 말소리가 끊긴 가운데 누군가 산비탈을 돌아보았다.


“뭐지?”


아슈르나담도 고개를 들었다.


돌 하나가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멀리 있어 주먹만 하게 보이던 돌이 젖은 비탈을 몇 차례 튀어 오르더니 그대로 길 쪽으로 떨어졌다.


퍽.


길바닥을 찍은 돌에서 흙탕물이 튀자 나귀들이 일제히 몸부림쳤다.


“잡아!”


사람들의 고함이 터졌지만, 비탈 위쪽에서는 벌써 둘, 셋,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돌이 젖은 흙을 튀기며 잇달아 굴러오고 있었다.


아슈르나담이 위를 올려다봤다.


사면이 움직이고 있었다.


밤새 물을 먹은 흙에 길고 어두운 금이 생기더니, 그 아래의 흙덩이가 풀과 돌을 끌어안은 채 천천히 미끄러졌다. 처음에는 비탈 한 귀퉁이에 불과하던 움직임이 순식간에 옆으로 번졌다.


누군가 소리쳤다.


“피해!”


그 순간 비탈이 무너졌다.


흙과 돌, 밤새 스며들었던 빗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산길을 덮쳤다.


───

두 대상의 질서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뒤로 물러나던 나귀가 뒤따르던 짐승과 엉켰고, 달아나려던 사람이 땅에 떨어진 화물에 걸려 앞으로 나뒹굴었다. 밧줄이 끊어지면서 짐꾸러미가 길 한가운데 쏟아졌고, 놀란 나귀 몇 마리는 고삐를 쥔 사람을 그대로 끌고 달렸다.


나귀의 울음과 사람들의 비명, 돌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토기가 깨지는 소리가 좁은 산길 안에서 뒤엉켰고, 쏟아진 흙과 빗물이 진흙이 되어 사람들의 얼굴과 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피해!”


누가 먼저 외쳤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는 고삐를 놓았고, 누군가는 조금 전까지 목숨처럼 지키던 짐을 버렸다. 화물을 지키겠다며 몇 걸음을 머뭇거리던 사람들도 비탈에서 또 한 무더기의 흙이 쏟아지는 것을 보자 손에 든 것을 내던지고 달렸다.


아슈르나담 역시 뛰었다.


등 뒤에서는 무엇이 부서지고 어디선가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돌아볼 수 없었다. 그는 앞서 달아나는 사람의 등과 발만 보며 진흙길을 내달렸다.


그때 옆으로 나귀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달려오자 아슈르나담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나귀였다.


등에 실린 짐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있었고, 개인 짐꾸러미를 묶은 끈 하나가 끊어져 벌어진 틈으로 내용물이 드러나 있었다.


그 틈에서 작은 물건 하나가 보였다.


가죽주머니.


아슈르나담의 걸음이 느려졌다.


버려야 했다.


나귀도, 짐도, 그 안에 든 모든 것도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살고 싶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계속 달려야 했다.


그런데 그의 눈은 주머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카네시 시장에서 손바닥 위에 올려보았던 짙은 푸른 구슬과, 그것을 받아 들고 기쁨을 감추려다 결국 실패할 라미시의 얼굴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리고 틀림없이 물을 것이다.


얼마 줬어요?


“아슈르나담!”


앞서 달아나던 젊은 사내가 돌아서며 고함을 질렀다.


그제야 아슈르나담이 정신을 차린 듯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나 다음 걸음은 반대쪽이었다.


“젠장.”


이성은 여전히 달아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몸은 이미 방향을 틀어 나귀를 향해 뛰고 있었다.


겁에 질린 나귀가 골짜기 쪽 길 가장자리로 몸을 비틀자 기울어진 화물이 크게 흔들렸고, 가죽주머니가 벌어진 틈 밖으로 조금 더 밀려나왔다.


아슈르나담은 나귀에게 달려들어 한 손으로 기울어진 짐을 붙잡고, 다른 손을 벌어진 꾸러미 사이로 밀어 넣었다. 손끝에 가죽이 스치자 놓칠세라 주머니를 움켜쥐었다.


바로 그 순간, 발밑의 땅이 사라졌다.


밤새 물을 먹고 버티고 있던 길 가장자리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아슈르나담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고, 나귀가 앞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발판을 찾았지만 이미 그 아래에는 딛고 설 땅이 없었다.


사람과 짐승이 함께 비탈 아래로 떨어졌다.


아슈르나담의 몸이 진흙 위에서 몇 번이나 뒤집혔다. 어깨가 단단한 바위에 부딪치며 숨이 끊기는 듯했고, 등과 옆구리가 다시 땅을 쳤다. 눈앞에 회색 하늘이 나타났다가 진흙으로 뒤덮였고, 잠시 뒤 다시 하늘이 뒤집혀 들어왔다.


무엇이 위이고 아래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오른손만은 펴지지 않았다. 손바닥 안에서 가죽주머니가 뭉개질 듯 눌려 있었다.


비탈 어딘가에 몸이 처박히며 굴러가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아슈르나담은 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가슴 깊숙이 날카로운 통증이 박혀 제대로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위쪽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힘겹게 고개를 들자, 조금 전까지 두 대상이 나란히 지나가던 길이 무너지고 있었다.


길 위에 남아 있던 사람과 나귀들이 땅과 함께 아래로 밀려 내려왔다. 나귀 한 마리가 몸을 뒤집은 채 미끄러졌고, 터진 짐꾸러미에서는 직물과 그릇, 자루와 자잘한 물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토기가 바위에 부딪쳐 깨지고, 젖은 직물이 진흙 위에 펼쳐졌다가 다시 흙더미 아래로 말려들었다.


조금 전까지 서로 다른 주인을 따라 서로 다른 곳으로 향하던 사람과 짐승과 물건들이 이제는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뒤섞여 있었다.


그 속에는 카네시로 향하던 화물도 있었다. 천과 가죽으로 감싼 작은 문서 꾸러미 역시 어디선가 흙과 짐 사이로 굴러 들어갔다.


그리고 더 위쪽에서 새로운 소리가 시작됐다.


처음의 돌무더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낮고 거대한 울림이었다. 산이 속에서부터 갈라지는 듯한 굉음이 능선을 따라 번지자 아슈르나담은 고개를 더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사면 전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밤새 물을 머금고 한계까지 무거워진 흙이 돌과 나무뿌리를 끌어안은 채 거대한 덩어리로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길 위에 남은 사람과 나귀, 버려진 짐과 깨진 토기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발굽과 바퀴가 오가며 만들어놓은 길 자체를 통째로 삼키고 있었다.


아슈르나담은 몸을 움직여보려 했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제야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것을 바라봤다. 도망칠 곳도, 붙잡을 것도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


가죽주머니가 손안에 있었다.


아슈르나담은 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것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굉음이 모든 소리를 삼켰다.


───

그리고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걷고 있던 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수없이 겹쳐 있던 발굽 자국도, 바퀴가 남긴 두 줄의 깊은 홈도, 카네시와 아슈르를 오가던 두 대상이 서로에게 길을 내주던 자리도 모두 사라졌다.


산비탈 아래에는 뒤엉킨 흙과 돌만 남아 있었다.


잠시 잦아들었던 비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물이 새로 드러난 흙 위를 흐르며 가느다란 물길을 만들었고, 작은 흙덩이가 무너지면 그 자리를 다른 흙이 메웠다. 조금 전까지 존재했던 사람과 짐승과 물건의 흔적이 그렇게 하나씩 땅 아래로 사라졌다.


어디쯤인지 알 수 없는 흙더미 아래에는 천과 가죽으로 싸인 작은 점토 편지 하나가 묻혀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아슈르나담의 오른손에는 작은 가죽주머니가 여전히 쥐어져 있었다.


그 주머니 안에는 라미시에게 주려고 샀던 푸른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빗물이 흙 위를 계속 흘렀다.


그리고 산은 다시 조용해졌다.



제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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