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신의 로그》
PART 1 — 〈카네시〉
제1화 〈편지〉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빛도 없었고, 소리도 없었다. 위와 아래의 구분도, 멀고 가까움을 가늠할 거리도 없었으며, 시간이라는 말조차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빛이 생겼다.
점이라고 부르기에도 작은 하나의 기점에서 시작된 빛이 어둠을 밀어냈다. 공간이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열과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적어도 인간은 훗날 그것을 그렇게 이해했다.
약 138억 년 전.
우주의 시작.
빅뱅.
───
기원전 19세기. 아나톨리아, 카네시.
아침 해가 성벽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카네시는 이미 거대한 몸을 뒤척이며 깨어나고 있었다.
도시의 새벽을 가장 먼저 흔든 것은 사람이 아니라 나귀들이었다. 길고 탁한 울음소리가 좁은 흙담 골목을 타고 번지면, 곧이어 단단한 발굽이 굳은 흙길을 두드리는 소리와 짐꾼들의 걸쭉한 고함이 그 위로 겹쳐졌다. 밤새 차갑게 식었던 화덕마다 붉은 불씨가 되살아나면서 가느다란 회색 연기가 낮고 빽빽한 지붕 사이로 피어올랐다.
갓 구운 빵의 고소한 온기와 눅눅한 양모 냄새가 엉켰고, 그 아래로는 짐승의 분뇨와 밤새 사람의 몸에 밴 땀 냄새가 묵직하게 깔렸다. 보기 좋게 다듬어진 도시는 아니었지만, 장사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에는 늘 이런 냄새와 소리가 따라붙었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온 아슈르나담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에는 벌써 수십 마리의 나귀가 줄지어 서 있었다. 등 양쪽으로 무거운 짐을 매단 짐승들 사이를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다. 누군가는 팽팽하게 조여진 가죽끈을 다시 잡아당겼고, 누군가는 한쪽으로 기운 화물을 들어 반대편 무게와 맞췄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은 조각의 무게를 두고 상인 둘이 목청을 높였고, 그 사이로 짐꾼 하나가 고함을 치며 나귀들을 몰고 지나갔다.
아슈르나담에게는 지독히 익숙한 아침이었다.
티그리스강 유역의 아슈르에서 이곳 카네시까지 이어지는 먼 길을 몇 번이나 오갔는지 이제는 굳이 세어보지도 않았다. 계절이 바뀌고 대상의 얼굴이 달라져도 길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햇볕과 모래바람, 발목을 붙잡는 진흙과 돌길, 사람보다 먼저 지쳐 쓰러지는 짐승들까지 그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 세월은 얼굴에도 남아 있었다. 햇볕과 바람에 오래 노출된 피부는 검게 그을렸고, 깊어진 주름 사이로 짧은 수염이 거칠게 돋아 있었다. 그 사이사이 희끗한 털이 눈에 띄었다. 몸은 여전히 크고 단단했지만 청년의 탄력과는 달랐다. 수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도 꺾이지 않은 나무처럼, 오래 버틴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단단함이었다.
그는 나귀 한 마리 앞에 멈춰 서서 등에 얹힌 짐을 손바닥으로 힘껏 밀어보았다.
반대편 화물이 무겁게 들썩였다.
“다시 묶어.”
나귀의 짐을 살피던 젊은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어젯밤에 확인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묶으라고.”
“문제없습니다, 아슈르나담 님.”
아슈르나담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가라앉은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자 잠시 버티던 사내의 시선이 먼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묶겠습니다.”
그제야 아슈르나담은 나귀의 투박한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저 산비탈에 올라가서 네 말이 맞았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그냥 둬.”
사내는 군말 없이 밧줄을 풀었다.
“무게를 반대쪽으로 조금 옮겨. 이대로 오르막을 타면 한쪽으로 쏠려. 비탈에서 넘어지면 짐만 잃는 게 아니야.”
“예.”
아슈르나담은 다음 나귀로 옮겨갔다.
상인에게 나귀는 단순히 짐을 나르는 짐승이 아니었다. 상품과 먹을 것을 나르고, 때로는 사람이 살아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다리였다. 한 마리가 쓰러지면 그 짐을 남은 나귀들에게 나눠 실어야 했고, 두 마리가 쓰러지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갈지 선택해야 했다. 길 위에서 그런 선택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가 되곤 했다.
그래서 아슈르나담은 주머니 속 은보다 먼저 나귀의 숨소리와 발굽을 살폈다.
“아슈르나담!”
등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돌아보니 배가 불룩 나온 상인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정말 이번 대상과 함께 떠날 모양이군.”
“그래.”
“이번에는 꽤 빠른데?”
“빠르다고?”
아슈르나담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이곳에 온 지가 언젠데.”
“겨울까지는 있을 줄 알았지.”
“그러다가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해.”
“왜?”
“내가 더 늦으면 아내가 문을 안 열어줄 테니까.”
상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라미시가?”
아슈르나담의 입가에도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아내의 이름을 들은 것만으로 조금 전까지 굳어 있던 얼굴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편지라도 왔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없어.”
“그럼 조금 더 있지 그래. 다음 대상 편에 올 수도 있잖아.”
아슈르나담은 대답 대신 나귀 등에 얹힌 짐을 한 번 더 눌러보았다.
“됐어.”
“왜?”
“언제 올지도 모를 편지를 기다리다가 늙어 죽겠다.”
그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눈앞에 두고 직접 들으면 되지.”
───
같은 아침.
수많은 산과 강 너머, 아슈르.
라미시는 남편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글자를 새기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다. 서늘한 그늘이 드리운 작은 방 안에서 서기관이 손바닥만 한 젖은 점토판을 받쳐 들고, 끝을 비스듬히 깎은 갈대 촉으로 쐐기 모양의 글자를 하나씩 눌러 새기고 있었다.
“제대로 적고 있는 거죠?”
라미시의 물음에 서기관의 손이 멈췄다.
“말씀하신 그대로 적고 있습니다, 부인.”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서기관이 지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지난번에도 말씀하신 그대로 적었습니다.”
“그런데 석 달이 지나도록 답장 한 줄 없었어요.”
“그건 제 갈대 탓이 아닙니다. 대상이 언제 출발하고 언제 도착하는지까지 제가 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방 한쪽에서 양모를 정리하며 실을 감던 젊은 여자가 풋 하고 웃음을 삼켰다.
라미시가 곧장 돌아봤다.
“뭐가 웃겨?”
“아무것도 아닙니다.”
“웃었잖아.”
“착각이십니다, 부인.”
라미시는 미심쩍은 눈으로 여자를 한 번 훑어본 뒤 다시 서기관을 바라봤다.
“어디까지 적었죠?”
서기관이 방금 새긴 내용을 읽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라미시의 눈썹이 조금씩 좁아졌다.
“잠깐. 그렇게 적으면 내가 은 때문에 화난 것처럼 들리잖아요.”
“은과 장부 이야기를 하셨으니까요.”
“내가 은 몇 닢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요?”
서기관은 결국 갈대 촉을 점토판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화가 나신 겁니까?”
라미시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방 한쪽에는 아직 손질하지 않은 거친 양모가 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완성된 직물 몇 필이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남편이 카네시로 떠났다고 해서 이 집의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양모의 질을 살피고 사람들에게 일을 나누며, 실을 뽑고 천을 짜서 다시 먼 카네시로 보내는 일까지 대부분 라미시의 몫이었다.
그렇게 보낸 직물을 남편은 팔았고, 그 대가로 은을 보내왔다. 때로는 꼼꼼하게 정리한 장부도 함께 왔다. 모두 집안을 꾸려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지만, 은이 쌓이고 장부가 늘어날수록 남편이 없는 자리는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라미시는 은도 장부도 아닌, 그 모든 것을 들고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적어요.”
서기관이 다시 갈대 촉을 집어 들었다.
라미시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그 먼 곳에서 잘 먹고 잘 지내는지 몰라도, 여기에도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잊지 마세요.”
갈대 끝이 물기 어린 점토를 눌렀다. 작은 쐐기가 패이고, 그 옆으로 또 하나의 글자가 이어졌다.
라미시는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서기관의 손끝을 바라보다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보낸 천 이야기도 적어줘요. 이번 것은 정말 잘 짰다고.”
“예.”
“손끝이 부르트도록 만든 거예요. 싼값에 넘기지 말라고도 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기관이 갈대 촉을 든 채 기다렸다.
라미시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술을 다물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킨 채 잠시 점토판만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더 남기실 말씀은 없습니까?”
“없어요.”
서기관이 다시 점토판으로 시선을 내렸다.
“잠깐.”
갈대 끝이 허공에서 멈췄다.
라미시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이번에는 조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에 하나만 더.”
“말씀하십시오.”
“이제는 정말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냐고…… 그렇게 써줘요.”
서기관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갈대 끝이 다시 젖은 점토를 눌렀고, 라미시는 그곳에 하나씩 생겨나는 쐐기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마지막 말은 꼭 그대로 써요.”
───
카네시의 시장은 해가 머리 위로 높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의 열기로 들끓었다.
아슈르나담은 청동 저울의 두 접시를 번갈아 바라보며 거래에 쓰일 은의 무게를 확인했다. 몇 차례 가볍게 오르내리던 접시가 마침내 수평을 이루자 상대 상인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군.”
오늘 처리해야 할 거래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며칠 뒤면 이 북적이는 카네시를 떠나 다시 먼 길을 가야 했지만, 이번 여정에는 이전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목적지가 집이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길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했다.
아슈르나담은 시장을 가로질렀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형형색색의 직물이 펄럭이고, 투박한 토기들이 흙바닥에 늘어서 있었다. 햇빛을 정면으로 받은 청동 그릇과 도구들이 눈부시게 번뜩였으며, 말린 무화과와 짐승 가죽을 펼쳐놓은 상인들은 지나가는 사람의 옷자락이라도 붙들 기세로 저마다 값을 외쳤다.
수없이 드나든 시장이었다. 무엇이 어디에서 팔리는지도 대강 알고 있었기에 아슈르나담은 별다른 관심 없이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걸었다.
그러다 문득 발걸음이 멎었다.
수많은 물건 사이에서 푸른빛 하나가 그의 눈을 붙들었다.
허름한 노점이었다. 유리 구슬과 뼈 장신구, 자잘한 물건들이 뒤섞인 가운데 작은 푸른 돌들이 놓여 있었다. 짙고 깊은 청색 속으로 금빛 점들이 잘게 박혀 있어 햇살을 받을 때마다 어둡게 가라앉았다가 다시 반짝였다.
청금석이었다.
늙은 상인은 아슈르나담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놓치지 않았다.
“좋은 물건을 알아보시는군요.”
“보기만 한 거요.”
“봐야 사지요.”
“살 생각은 없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푸른 구슬에 머물러 있었다.
상인이 기다렸다는 듯 목걸이 하나를 들어 보였다. 작은 청금석 구슬들이 가지런히 이어진 것이었다.
아슈르나담은 마지못한 듯 그것을 받아들었다. 손바닥에 얹힌 목걸이는 보기보다 묵직했고, 햇살이 닿을 때마다 깊은 푸른빛 사이로 잘게 박힌 금빛이 드문드문 살아났다.
라미시에게 잘 어울리겠군.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말이 먼저 나왔다.
“얼마요?”
상인이 값을 말했다.
아슈르나담은 곧바로 목걸이를 내려놓았다.
“잘 있으시오.”
몸을 돌리려는데 뒤에서 상인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아내에게 줄 거 아닙니까?”
아슈르나담의 발이 멈췄다. 천천히 돌아선 그가 상인을 바라봤다.
“내게 아내가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지?”
상인이 웃었다.
“자기 것이면 가격부터 묻지 않습니다.”
아슈르나담도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그 값을 낼 생각은 없소. 반의반이면 몰라도.”
“청금석입니다.”
“나도 눈은 있어.”
“먼 곳에서 온 물건이고.”
“그래서?”
“귀한 물건이지요.”
아슈르나담은 다시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귀한 건 알겠는데, 내 아내 목이 왕비 목은 아니오.”
흥정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웃으며 주고받던 말이 어느새 시장의 소음에 뒤지지 않을 만큼 커졌고, 서로 돌아서는 시늉을 몇 번이나 한 뒤에야 둘 사이에 가격이 정해졌다.
한참 뒤 아슈르나담이 노점을 떠났을 때 그의 은은 조금 줄어 있었다. 대신 손에는 작은 가죽주머니 하나가 들려 있었다.
몇 걸음 가지 못해 그는 다시 멈췄다.
주머니를 열자 청금석 구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햇빛 아래에서 짙푸른 빛과 금빛 점들이 함께 반짝였다.
라미시가 이것을 받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분명 좋아할 것이다. 아마 잠깐은.
그리고 틀림없이 물을 것이다.
얼마 줬어요?
아슈르나담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 질문에만큼은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가죽주머니의 입구를 묶었다. 한 번 매듭을 짓고 힘껏 당겨보더니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풀어 이번에는 두 번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자신의 짐꾸러미 안쪽 깊숙한 곳에 넣었다.
───
아슈르에서는 편지가 완성되고 있었다.
점토판의 마지막 글자까지 확인한 라미시는 그것을 서기관에게 건넸다. 서기관은 얇게 편 점토로 점토판 전체를 감싼 뒤 바깥 면에 수신자의 이름을 새기고, 원통 인장을 굴려 봉인을 남겼다. 누군가 내용을 몰래 읽으려면 바깥의 점토 봉투를 깨뜨려야 했다.
그렇게 작은 편지 하나가 닫혔다.
며칠 뒤면 카네시로 떠나는 대상에게 넘겨질 것이다.
라미시는 완성된 점토 봉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고작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물건이었지만, 이제 이것은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고 짐승의 등에 실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남편에게 가야 했다.
“이번에는 빨리 가야 할 텐데.”
서기관이 말했다.
“좋은 대상에 맡기면 무사히 갈 겁니다.”
라미시는 손바닥 위의 편지를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가만히 쓸었다.
“그래야죠.”
───
같은 날 저녁, 카네시.
하루 종일 시장을 채웠던 소음이 조금씩 잦아드는 동안에도 아슈르나담은 출발할 짐들을 마지막으로 살피고 있었다.
“이건 내 나귀에 실어.”
그가 작은 짐꾸러미 하나를 가리켰다.
젊은 사내가 그것을 받아 들며 물었다.
“중요한 겁니까?”
아슈르나담은 잠깐 생각했다.
“아니.”
사내가 짐을 내려놓으려 하자 그가 덧붙였다.
“그런데 잃어버리면 안 돼.”
사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봤지만 아슈르나담은 설명하지 않았다. 직접 짐을 받아 자기 나귀의 등에 올린 뒤 가죽끈을 당겨 고정했다. 조금 전 청금석 목걸이를 넣어둔 가죽주머니가 들어 있는 짐꾸러미였다.
그는 끈을 힘껏 잡아당겨보고 다시 한번 손으로 눌렀다.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제야 손을 뗀 아슈르나담이 고개를 들었다.
멀리 산 위로 먹구름이 걸려 있었다.
낮 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하늘 한쪽이 어느새 짙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산등성이 너머에서는 구름이 천천히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비가 오려나.”
옆에 있던 사내도 산 쪽을 바라봤다.
“아직 멀었습니다.”
아슈르나담은 잠시 하늘을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습관처럼 다시 나귀의 짐을 확인했다.
며칠 뒤, 그는 아슈르로 떠날 것이다.
같은 무렵 아슈르에서는 작은 점토 편지 하나가 카네시를 향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하나는 아내에게로.
하나는 남편에게로.
아직 둘 사이에는 수많은 산과 강이 놓여 있었다.
제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