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리가 하나의 소리로 들릴 때
아들이 떠난 뒤에도 강은 그대로 흐른다.
싯다르타의 마음은 그대로 있지 않다.
그는 오래 아파한다.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붙잡고 싶었던 마음,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끝내 놓아주지 못했던 집착이 가슴 안에 남아 있다. 아들의 발자국은 이미 사라졌지만, 아버지가 된 사람의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 고통이 중요한 이유는, 싯다르타가 이제 더 이상 삶을 바깥에서 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그는 세속의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욕망에 흔들리는 사람들.
이익과 손실에 울고 웃는 사람들.
자기 자식과 재산, 이름과 평판에 매이는 사람들.
그는 한때 그들을 유치하다고 느꼈고, 자신은 그들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들을 사랑한 뒤, 그는 안다.
그들이 왜 울고 왜 붙잡는지.
왜 놓지 못하고, 왜 같은 걱정 속을 맴도는지.
왜 어떤 상실은 논리로 지나가지 않는지.
이해는 종종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함께 아파 본 뒤에야 온다.
아들을 잃은 뒤 싯다르타는 비로소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을 자기 안에서 느낀다. 그러자 세상은 더 이상 어리석은 사람들의 시장이 아니라, 모두가 저마다의 사랑과 집착, 두려움과 상실을 안고 건너는 강가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창업가도 어느 순간 이런 경계에 선다.
예전에는 사람을 평가했다.
왜 저 대표는 그 시점에 멈추지 못했을까.
왜 저 팀은 명백한 신호를 보고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까.
왜 사람들은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고, 접어야 할 때 접지 못하며, 이미 무너진 관계를 오래 붙잡을까.
멀리 있을 때는 쉽게 보인다.
데이터가 있고, 사례가 있고, 시장의 언어가 있다. 그 언어 안에서는 잘못된 결정과 집착이 비교적 선명해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일이 되고 나면 달라진다.
한 사람의 퇴사가 단순한 인력 이탈이 아니게 된다.
한 번의 투자 실패가 단순한 자금 부족이 아니게 된다.
오래 만든 제품을 접는 일이 단순한 포트폴리오 조정이 아니게 된다.
그 안에는 함께한 시간, 자기 확신, 약속, 체면, 사랑, 바카라임, 두려움이 모두 들어 있다.
그래서 이해는 판단보다 늦게 온다.
그리고 더 무겁다.
나도 심사 자리에서 숫자와 논리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창업가가 왜 그 결정을 붙잡았는지, 왜 그 말을 끝내하지 못했는지, 왜 손절의 시점을 그렇게 오래 놓쳤는지를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집착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
이해가 시작되면 사람을 단순하게 재단하기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성과를 냈던 대표도 두려움 때문에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조직도 허기와 피로 속에서 타인을 소모할 수 있다.
충분히 똑똑한 사람도 사랑하는 것을 잃기 싫어서 현실을 늦게 인정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판단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판단보다 먼저 전체를 보는 일이다.
부분만 떼어 내면 잘못과 실패, 미련과 집착처럼 보이는 것들이, 전체의 흐름 속에서는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선택의 소리로 함께 들리는 것.
창업가가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어리석었다”라고만 말하면 그 결정 안에 들어 있던 사랑과 바카라임, 두려움을 놓칠 수 있다.
반대로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라고만 말하면 실제 잘못과 회피를 보지 못한다.
옴은 둘 중 하나를 고르게 하지 않는다.
잘못은 잘못으로 남고, 사랑은 사랑으로 남으며, 집착은 집착으로 드러난 채 함께 들린다.
그 상태에서야 비로소 사람은 자기 삶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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