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내 것이 아니게 되는 때
바수데바의 오두막 곁에서 싯다르타는 강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모든 소리가 함께 흐른다는 것.
웃음과 울음, 떠남과 돌아옴, 시작과 끝이 서로를 지우지 않는다는 것.
그는 이전보다 조용해졌고, 이전보다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강이 모든 것을 가르치기 전에, 삶은 그에게 마지막으로 가장 인간적인 수업 하나를 남겨 둔다.
카말라가 다시 나타난다.
오래전 정원의 여인.
사랑을 가르쳤던 사람.
세계를 얻는 기술을 보여 주었던 사람.
이제 그녀는 예전의 카말라가 아니다. 여행의 피로를 안고, 한 아이를 데리고 강가에 이른다. 아이는 싯다르타의 아들이다.
카말라는 뱀에 물리고, 싯다르타의 곁에서 마지막 숨을 놓는다.
그 순간 싯다르타에게는 한 번에 여러 시간이 겹쳐진다.
젊은 시절의 사랑.
세속의 시간.
카말라와 함께 있었던 밤들.
그리고 그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
아버지라는 이름.
이전까지 싯다르타는 사랑을 배웠다.
욕망도 알았고, 잃음도 겪었으며, 사람을 얻는 기술과 세계의 달콤함도 지나왔다.
그러나 아들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그는 전혀 다른 사랑 앞에 선다.
이 사랑은 얻는 사랑이 아니다.
붙잡고 싶은 사랑이다.
이전까지 싯다르타는 떠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났고, 사문들의 길을 떠났으며, 붓다의 곁도 떠났다. 카말라의 정원과 카마스와미의 집도 결국 떠났다.
늘 자기가 떠나는 쪽에 있었다.
이제 처음으로 남겨지는 쪽에 가까워진다.
처음으로 자기 곁에 머물게 하고 싶은 한 사람을 만난다.
그는 아들을 사랑한다.
너무 사랑한다.
바로 그 때문에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9장은 강의 지혜가 더 깊어지는 장이면서, 동시에 싯다르타가 그 지혜를 가장 어렵게 통과하는 장이다.
모든 것을 흘려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사랑 앞에서는 흘려보내지 못한다.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언제 이해가 되고, 언제 소유가 되는가.
창업가의 삶에도 이런 장면이 있다.
오랫동안 시장과 고객, 투자자와 조직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질문 앞에 선다.
내가 진짜 붙잡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그것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잃고 싶지 않아 하는가.
사업에서는 많은 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고객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팀을 아낀다고 말한다.
회사의 미래를 누구보다 믿는다고 말한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니다.
다만 사랑이라는 말은 쉽게 미끄러진다.
돌봄과 집착 사이에서.
바카라임과 통제 사이에서.
함께 가고 싶은 마음과 내 뜻대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사이에서.
싯다르타는 아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곧 상처를 예비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지 않는다. 강가의 가난하고 단순한 삶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도시의 삶에 익숙한 아이에게 바수데바의 오두막은 궁핍하고 낯설며, 싯다르타의 조용한 사랑은 답답한 선의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싯다르타는 아이를 벌하지 못한다.
거칠게 말해도 참는다.
화를 내도 받아들인다.
버릇없는 행동을 해도 오래 기다린다.
그는 사랑으로 아이를 감싸면 언젠가 아이도 강의 소리를 듣게 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사랑이 상대의 시간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싯다르타는 자신이 한때 떠났던 아버지의 자리에 선다.
예전에는 떠나는 사람의 자유를 알았다.
이제는 남겨지는 사람의 고통을 배운다.
창업가도 어떤 대상을 너무 아끼는 순간 같은 오해에 들어갈 수 있다.
팀을 아끼기 때문에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회사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의 방향을 버리지 않으려 한다.
고객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고객이 자기 확신을 떠받쳐 주기를 바랄 수 있다.
좋은 뜻은 있다.
문제는 좋은 뜻이 언제나 좋은 관계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반드시 상대에게도 사랑의 방식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주는 사람의 마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받는 사람의 시간과 자유가 그 안에 있어야 한다.
싯다르타는 아버지가 된다.
이 문장은 단순한 가족 관계의 변화가 아니다.
이전의 삶을 다시 읽게 하는 사건이다.
그는 젊은 시절 아버지를 떠났다.
밤에 집을 나서며 자기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는 붙잡지 못했고, 싯다르타는 떠났다.
그때 그는 떠나는 쪽의 진실을 알았다.
자기 삶은 자기 것이어야 한다는 진실.
누구의 사랑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는 진실.
그러나 그 진실은 떠나는 쪽의 진실이었을 뿐이다.
이제 그는 남겨지는 쪽의 진실을 배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뜻과 다르게 살 것이라는 사실.
그 사실을 알아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남는다는 사실.
상대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곧 고통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
아들은 싯다르타를 미워한다기보다 거부한다.
그 조용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인내를 감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이 자신을 길들이려는 또 다른 방식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싯다르타는 상처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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