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얼굴에 많은 삶이 함께 있을 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고빈다는 다시 싯다르타를 만난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함께 길을 떠났다.
브라만의 집을 떠나 사문들의 길로 들어갔고, 더 나은 삶과 더 깊은 진리를 향해 나란히 걸었다. 그러나 붓다 앞에서 길은 갈라졌다.
고빈다는 남았다.
싯다르타는 떠났다.
그 갈라짐은 단순한 선택의 차이가 아니었다. 무엇을 통해 진리에 이르는가에 대한 서로 다른 믿음의 시작이었다.
고빈다는 가르침을 통해 길을 걷는 사람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고, 그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진리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그는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성실하고, 겸손하고, 끝까지 구도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찾는 사람이다.
반면 싯다르타는 이제 더 이상 찾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강 곁에 머문다.
무언가를 얻으려 애쓰지 않고, 자신이 깨달았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바수데바는 떠났고, 아들은 떠났으며, 카말라도 이미 지나갔다. 남은 것은 강과 한 사람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에 오래 겹쳐진 삶의 흔적뿐이다.
고빈다는 그 얼굴 앞에서 멈춘다.
예전에도 그는 싯다르타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붓다를 떠난 젊은 싯다르타도 그랬고, 강가에서 다시 만난 지친 상인의 얼굴도 그랬다. 지금 만나는 싯다르타는 더 어렵다.
그의 얼굴에는 이상한 평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수행자가 모든 욕망을 비워 얻는 단순한 고요와 다르다.
그 얼굴에는 기쁨만 있지 않다.
상실도 있다.
욕망도 있다.
사랑과 부끄러움, 집착과 포기, 기쁨과 실패, 젊은 날의 자부심과 늦은 날의 자비가 함께 있다.
마치 여러 사람이 한 얼굴 안에 동시에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11장은 싯다르타가 마지막으로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설명하는 장이 아니다.
오히려 깨달음이 한 사람의 얼굴에서 어떻게 보이는가를 보여 주는 장이다.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은 언제 단일한 정체성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함께 지닌 얼굴이 되는가.
고빈다는 마지막까지 찾는 사람이다.
이 말은 그의 부족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빨리 찾기를 끝낸다.
자신이 옳다고 결론 내리고, 자기 길을 진리라고 이름 붙인다. 좋은 스승을 만난 뒤에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몇 번의 성공 뒤에는 자기 확신을 깨뜨릴 반대 의견을 듣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고빈다는 진지하다.
그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다. 아직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오래 걸을 수 있다.
그러나 찾는다는 일에는 역설이 있다.
언제나 앞에 있는 것을 향해 가는 사람은, 이미 곁에 와 있는 것을 놓칠 수도 있다.
고빈다는 늘 진리를 향해 걸었다.
그러나 그 진리가 이미 자신의 삶과 관계, 실패와 그리움 안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가능성은 늦게 본다. 가르침의 말은 오래 따랐지만, 말로 다 가르쳐지지 않는 삶의 얼굴은 충분히 보지 못한 셈이다.
창업가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다.
더 좋은 전략을 찾는다.
더 적절한 투자자를 찾고, 더 정교한 사업모델을 찾고, 더 완벽한 팀 구성을 찾는다. 더 맞는 시장, 더 적절한 타이밍, 더 좋은 질문의 답을 계속 찾는다.
그 태도는 필요하다.
문제는 찾는 일이 어느 순간 지금 여기에서 이미 배우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고객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대표는 더 좋은 프레임워크를 찾느라 그 신호를 늦게 읽는다. 팀의 피로는 이미 분명한데, 더 나은 성장 공식을 찾느라 지금의 경고를 이론으로 미룬다.
찾는다는 것은 성실한 일이다.
그러나 언제나 멀리에만 답이 있다고 믿으면, 가까이에 와 있는 진실을 놓칠 수 있다.
고빈다는 어리석어서 찾는 것이 아니다.
너무 진지하게 찾기 때문에, 이미 있는 것을 늦게 본다.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은 고빈다를 싯다르타보다 낮게 보는 일이 아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한다.
고빈다는 끝까지 찾는 사람이고, 싯다르타는 마침내 찾는 일을 멈춘 사람이다.
고빈다는 싯다르타의 얼굴을 본다.
그 얼굴은 한눈에 정의되지 않는다.
젊은 수행자의 얼굴도 있고, 세속의 쾌락을 배운 남자의 얼굴도 있다.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해 오래 아파한 아버지의 얼굴도 있고, 강의 소리를 들으며 웃을 수 있게 된 늙은 사람의 얼굴도 있다.
모순된 시간들이 지워지지 않고 함께 남아 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의 얼굴에서 일관성을 원한다.
성공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했기를 바라고, 지혜로운 사람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기를 기대한다. 창업가의 얼굴에서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는 때때로 대표가 명확하고 일관된 비전, 흔들리지 않는 확신, 선명한 리더십을 갖추었기를 기대한다.
그 기대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리더에게는 분명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얼굴이 너무 매끈하면, 오히려 삶이 빠져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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