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심사 테이블과 강가 사이에서

by김진환

에필로그


심사 테이블과 강가 사이에서


오랫동안 나는 사람의 가능성을 숫자와 문장 사이에서 보아 왔다.

사업계획서가 있고, 재무추정이 있고, 시장의 크기와 성장률이 있다. 대표는 짧은 시간 안에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왜 자신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심사역은 그 말과 숫자 사이에서 무엇이 진짜로 작동하고 있고, 무엇이 아직 희망의 언어에 머물러 있는지를 가려내려 한다.


투자심사라는 일은 겉으로 보면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좋은 시장인지.

해결하려는 문제가 충분히 아픈지.

제품이 그 문제에 실제로 닿는지.

팀이 끝까지 해낼 수 있는지.

얼마를 투자하면 어떤 성장이 가능한지.

숫자는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회수가 가능한지.


이 질문들은 중요하다.

어쩌면 투자심사역이라는 직업은 결국 불확실한 미래를 현재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가능성을 자료와 인터뷰, 재무와 정성의 조합으로 읽어 내고, 거기에 자본과 시간, 신뢰를 걸어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일.


나는 오랫동안 그 일이 주로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잘 보는 사람.

숫자의 허점을 보는 사람.

대표의 과장과 진심을 구별해 보는 사람.

시장의 방향과 구조의 위험을 보는 사람.


틀린 말은 비교적 쉽게 보인다.


과장된 시장 규모, 비현실적인 추정, 고객 검증 없는 확신, 비용보다 낙관이 큰 조직은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심사라는 일이 보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대표는 숫자가 좋지 않아도 오래 남는다.

어떤 대표는 완벽한 발표를 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

어떤 팀은 아직 미숙하지만, 실패를 대하는 방식에서 다음 결정을 바꿀 힘이 보인다.

반대로 어떤 조직은 모든 자료를 갖추었지만, 이미 자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믿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 차이는 종종 숫자 바깥에 있다.


사람이 실패를 어떻게 말하는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어떻게 다루는가.

고객을 숫자로만 말하는가, 얼굴로도 말하는가.

성장을 설명할 때 무엇을 일부러 말하지 않는가.

떠난 사람을 말할 때 남 탓만 하는가, 자기 존재 전체를 부정하는가, 아니면 그 사이의 더 정확한 바카라임을 감당하려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어떤 얼굴로 지니고 있는가.


《싯다르타》를 다시 읽은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정답을 빨리 주지 않는다.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을 단순히 갈라놓지도 않는다.

수행은 무조건 높고 세속은 무조건 낮다고 말하지 않고, 사랑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붙잡음이 될 수 있으며, 자유는 고귀하지만 남겨지는 사람의 고통을 모를 때는 아직 반쪽짜리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길이 직선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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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러레이터 , VC/PE 투자심사역을 거쳐 자산운용사 임원 등으로, 투자와 창업 멘토를 해왔습니다. 투자자의 시선으로, 고전을 다시 읽고, 슬롯현상에 대해 관찰한 내용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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