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바수데바

듣는 사람 곁에서

by김진환

8장. 바수데바


듣는 사람 곁에서


강가에서 다시 눈을 뜬 싯다르타는 아직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했다.


옴을 들었지만 깨달음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도시를 떠났지만 도시에서의 시간이 곧바로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는 여전히 지나온 삶을 모두 품은 사람이다.

사문이었던 시간.

카말라의 정원에서 사랑과 세계의 예법을 배운 시간.

카마스와미의 집에서 돈과 장부, 쾌락과 권태를 익힌 시간.

그 모든 시간이 싯다르타 안에 남아 있다.


다만 하나가 달라졌다.

이제 그는 그 시간을 더 빨리 설명하거나 심판하지 않는다.


강가에서 그는 바수데바를 다시 만난다.

오래전 자신을 강 건너로 데려다주었던 뱃사공. 그때는 그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다르다. 이제 싯다르타는 건너가기 위해 강가에 온 것이 아니다.


머물기 위해 왔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그전까지 싯다르타는 늘 어딘가로 향했다.

아버지의 집에서 숲으로.

사문들 곁에서 붓다에게로.

붓다에게서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에게서 카말라의 정원으로.

정원에서 상인의 집으로.

상인의 집에서 다시 강으로.


그는 늘 다음 세계를 향해 움직였다.


바수데바는 다르다.

그는 향하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강 곁에 머물며 사람을 건네고, 강의 소리를 듣고, 필요한 말만 한다. 더 많이 갖고자 하지 않고, 더 크게 보이려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증명해야 할 다음 단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다른 움직임이다.


바수데바는 듣는 사람이다.

그는 싯다르타의 과거를 정리해 주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판정하지도 않고, 이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위로하지도 않는다.


대신 듣는다.


싯다르타가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끝까지 말하지 못했던 자기 삶을.

자기 자신에게조차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았던 시간을.

그는 조언보다 자리를 내어 준다.


이 장에서 처음으로 싯다르타는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기보다, 들려질 수 있는 자리를 얻는다.

앞선 장들이 떠남과 배움, 얻음과 상실의 장이었다면 8장은 다른 질문을 연다.


무엇을 더 배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끝까지 들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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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보다 먼저 필요한 자리


창업가의 곁에도 바수데바가 필요할 때가 있다.


조언은 많다.

시장자료가 방향을 말하고, 투자자는 속도를 묻는다. 멘토는 확장의 타이밍을 말하고, 주변의 창업가는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한다. 실패 뒤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빨리 다시 시작하라고 하고, 누군가는 더 쉬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사업모델의 문제라고 하고, 누군가는 팀의 문제라고 한다.


대부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더 피곤해진다.


말들은 빠르게 들어오지만, 정작 자기 안에서는 아직 무엇이 끝났고 무엇이 남아 있는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조언이 아닐 수 있다.

끝까지 말해도 되는 자리일 수 있다.


나는 심사와 투자 이후의 여러 장면에서 그런 얼굴을 본다.


대표는 숫자를 설명할 수 있다. 어느 지점에서 성장이 멈췄는지, 어떤 기능이 실패했는지, 어떤 투자자가 왜 빠졌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금 더 지나면 전혀 다른 문장이 나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투자보다 제 판단을 다시 못 믿겠는 게 더 큽니다.”

“사업을 접어야 하는지보다, 제가 누구였는지 헷갈립니다.”


이 문장들은 전략 회의의 문장이 아니다.

삶의 문장이다.


전략은 분석할 수 있다.

삶은 먼저 들어야 한다.


창업가는 바쁠수록 자신에게도 보고하듯 말한다. 원인과 결과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잘못을 분류한다. 그러나 그렇게 정리된 말들은 때로 너무 빨라서 자기 경험의 깊이까지 닿지 못한다.


바수데바 같은 자리는 그 속도를 늦춘다.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무엇이 정말 두려웠는지.

어느 순간부터 사업의 문제와 자신의 문제가 구분되지 않게 되었는지.

그때 무엇을 알고도 외면했는지.

실패를 이야기할 때 무엇을 설명하고, 무엇은 아직 말하지 못하는지.


이 질문들에는 빠른 답이 없다.

그래서 더 중요하다.


조언은 방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삶의 방향이 다시 보이기 전까지 조언은 또 하나의 외부 문장이 되기 쉽다.


창업가에게도 듣는 사람은 필요하다.


정답을 말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빨리 답을 만들지 않도록 곁에 있어 주는 사람.

그 사람은 멘토일 수도 있다.

오래된 동료일 수도 있고, 가족이나 상담자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능이 아니라 태도다.

내가 아직 잘 설명하지 못한 시간을, 설명이 끝날 때까지 버리지 않고 들어 주는 태도.

바수데바의 가르침은 말의 내용보다 먼저 그 자리에 있다.



듣는다는 일


듣는다는 것은 조용히 있는 일과 같지 않다.

상대가 말할 때 끼어들지 않는다고 해서 듣고 있는 것은 아니다. 끝까지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이미 답을 준비할 수도 있다.


바수데바의 듣기는 다르다.

그는 싯다르타의 말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잘못은 무엇입니까”라고 서둘러 묻지 않는다.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군요”라고 너무 빨리 이해한 척하지도 않는다.

좋은 의미를 붙여 정리하지도 않는다.

그는 흘러가는 말을 붙잡지 않고, 그러나 흘려보내지도 않는다.

말이 자기 모양을 갖출 때까지 함께 앉아 있는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사람은 자기 경험을 처음부터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만 말한다. 남에게 설명하기 쉬운 버전, 스스로도 견딜 수 있는 버전, 바카라임을 줄이거나 수치심을 덜 느끼게 하는 버전으로 자기 삶을 정리한다.


창업가도 마찬가지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품 완성도가 아직 부족했습니다.”

“타이밍이 조금 빨랐습니다.”


모두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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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러레이터 , VC/PE 투자심사역을 거쳐 자산운용사 임원 등으로, 투자와 창업 멘토를 해왔습니다. 투자자의 시선으로, 고전을 다시 읽고, 슬롯현상에 대해 관찰한 내용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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