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강가에서

끝이라고 믿은 자리에서 들리는 소리

by김진환

7장. 강가에서


끝이라고 믿은 자리에서 들리는 소리


도시를 떠난 싯다르타는 강가에 도착한다.


한때 건넜던 강이다.

카말라를 만나기 전, 상인의 집에 들어가기 전, 좋은 옷과 돈과 쾌락을 알기 전에도 이 강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의 싯다르타는 강을 건너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강 건너에는 도시가 있었고, 도시에는 자신이 아직 살아 보지 않은 세계가 있었다. 강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기 위해 지나야 하는 경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건너갈 곳이 없다.

돌아갈 곳도 없다.

숲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다시 젊은 사문이 되어 고행을 시작할 수도 없다. 붓다의 가르침을 찾아가 그 곁에 앉는 일도 이제는 자기 길이 아니다.


도시로 돌아갈 수도 없다.

좋은 옷을 다시 입고 장부를 펼친다고 해서 새장 속 새가 다시 노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돈과 쾌락이 잠시 허기를 가려 줄 수는 있어도, 이미 들은 침묵까지 지울 수는 없다.


앞으로 갈 길도 보이지 않는다.

싯다르타는 강가의 나무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본다.


검은 물이 흐른다.

자신의 삶도 그 물 위에 떠오른다.


아버지의 집을 떠난 젊은이.

사문들과 굶었던 수행자.

붓다 앞에서 홀로 다른 길을 선택했던 구도자.

카말라에게 사랑을 배운 남자.

카마스와미의 집에서 돈을 벌고 거래하던 상인.

도박과 쾌락에 지쳐 버린 늙은 얼굴.


서로 다른 삶처럼 보였던 장면들이 한 사람에게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깊이 실망한다.


세상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은 다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재산을 가져도 재산에 붙잡히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쾌락을 경험해도 쾌락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속의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자신은 그들을 바라보는 구도자로 남아 있다고 여겼다.


그 믿음이 무너진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피하고 싶었던 사람이 되어 있다.


생각은 계산이 되었고, 기다림은 조급함이 되었으며, 굶을 수 있던 자유는 끝없는 허기로 바뀌었다.

강물은 깊다.

몸을 조금만 앞으로 기울이면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보인다.

그때 한 소리가 떠오른다.


옴.


아주 오래전에 알고 있었으나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


싯다르타는 멈춘다.

옴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잃은 돈을 되돌려 주지도 않고, 지나온 시간을 없애 주지도 않는다. 그의 삶이 옳았다고 위로하지도 않는다.

다만 끝이라고 믿었던 순간에, 그 끝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들려준다.


실패한 삶도 삶 안에 있다.

부끄러운 자신도 자기 안에 있다.

지워 버리고 싶은 시간도 존재 전체에서 떨어져 나갈 수 없다.

옴은 싯다르타를 이전의 순수한 사람으로 돌려놓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자신을 없애지 않고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다.


6장이 자기 안의 새가 침묵했음을 알아차리는 장이었다면, 7장은 그 침묵 속에서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소리를 듣는 장이다.


끝난 것은 한 가지 삶의 방식이다.

사람 전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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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설명이 끝난 방


창업가에게도 강가가 있다.


회사가 문을 닫은 뒤일 수 있다.

투자가 무산되고, 잔고가 바닥나고, 함께하던 사람들이 떠난 뒤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준비한 제품이 시장에서 아무런 대답을 얻지 못한 순간일 수도 있다.

회사는 남아 있는데 대표 안에서 무언가가 먼저 끝난 때도 있다.


회의를 하고 계획을 세우지만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 사람들은 다음 전략을 묻는데, 대표는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그만두어야 하는지도 분명히 말하지 못한다.


창업가의 강가는 반드시 폐업 신고서 앞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설명이 더 이상 자신을 설득하지 못하는 자리가 강가다.


나도 그런 얼굴을 보았다.

미팅이 끝난 뒤에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비용을 줄여야 했고, 투자자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구성원과 고객, 거래처에 알릴 내용도 정리해야 했다.

대표는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침묵한 뒤 이렇게 말했다.

“사업이 실패한 건지, 제가 실패한 건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그 문장은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창업가가 가장 늦게 마주하는 부채다.

회사와 자신을 오래 같은 문장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회사가 성장하면 자신의 판단이 옳은 것 같았다. 투자받으면 자기 가능성이 인정된 듯했고, 고객이 늘면 자신도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므로 회사가 흔들리면 사업모델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설명도 함께 무너진다.


제품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신은 선택받을 가치가 없다는 판결처럼 들린다. 투자자가 거절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는 평가처럼 느껴진다.


사업의 실패가 사람의 실패로 번역된다.

이 번역은 빠르고 잔인하다.


사업에는 조건이 있다.

시장 진입 시점이 맞지 않았을 수 있다. 자금이 부족했거나 제품이 고객의 문제에 충분히 닿지 못했을 수 있다. 팀의 역량과 사업의 단계가 어긋났을 수도 있다. 대표의 판단이 실제로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존재는 손익으로 결산할 수 없다.


대표가 바카라임에서 벗어난다는 뜻이 아니다.

잘못된 판단은 인정해야 한다. 구성원과 투자자, 고객과 거래처에 끼친 손실도 가능한 범위에서 바카라임져야 한다. 실패를 성장담으로 너무 빨리 포장해서도 안 된다.


다만 바카라임과 자기 소멸은 다르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과 자신을 잘못된 사람으로 확정하는 일도 다르다.

강가에 선 창업가에게 필요한 것은 “괜찮다”는 쉬운 위로가 아닐 수 있다.

괜찮지 않은 것은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돈을 잃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사람을 실망시켰다.

판단이 틀렸다.


그 사실을 줄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 사실들 뒤에 한 문장을 더 붙여야 한다.


그래도 사람 전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옴은 실패를 지우는 소리가 아니다.

실패를 자기 삶에서 잘라 내지 않고도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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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이라는 소리


옴은 인도 사상과 종교 전통에서 오래 이어져 온 성스러운 음절이다.


말로 완전히 나눌 수 없는 전체를 하나의 소리로 담는다. 시작과 끝, 깨어 있음과 잠듦, 생성과 소멸처럼 서로 반대되어 보이는 것들이 하나의 존재 안에서 이어져 있음을 상징한다.


싯다르타에게 옴은 새로운 지식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던 소리다.

경전을 외울 때도 알았고, 제사를 지내는 아버지 곁에서도 들었으며, 사문으로 수행할 때도 입에 올렸다.

그러나 알고 있던 소리와 들리는 소리는 다르다.


예전의 옴은 가르침 안에 있었다.


강가의 옴은 자기 삶 전체에서 나온다.

순수했던 소년만 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욕망에 빠진 상인도 그 안에 있다.


붓다를 존경하면서도 떠난 사람, 카말라를 사랑했으나 사랑을 온전히 알지 못한 사람, 돈을 벌었고 도박에 빠졌으며 자기 안의 새가 침묵할 때까지 듣지 못했던 사람도 모두 같은 생명 안에 있다.


싯다르타는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자기라고 부를 수 없다.

모두 자신이다.


이것이 강가에서 일어나는 첫 번째 변화다.


그는 더 이상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젊은 수행자를 좋은 자신이라 부르고, 지친 상인을 나쁜 자신이라 부르며 둘 가운데 하나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분리해 심판하는 일을 잠시 멈춘다.

창업가도 실패 뒤에 자신을 둘로 나누기 쉽다.


처음의 자신은 순수했다고 말한다.

그때는 고객의 문제를 진심으로 생각했고, 팀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겼다고 기억한다. 투자를 받고 조직이 커진 뒤의 자신은 욕심이 많아졌고 본질을 잃었다고 판단한다.

과거의 자신을 구하고 현재의 자신을 벌한다.

그러나 처음에도 욕망은 있었다.


돈을 벌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으며, 자기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반대로 회사가 커진 뒤에도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니었다. 더 많은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구성원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도 남아 있었을 수 있다.


사람은 한 가지 이유로 시작하지 않는다.

한 가지 욕망 때문에 무너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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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러레이터 , VC/PE 투자심사역을 거쳐 자산운용사 임원 등으로, 투자와 창업 멘토를 해왔습니다. 투자자의 시선으로, 고전을 다시 읽고, 슬롯현상에 대해 관찰한 내용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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