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카마스와미

생각하고, 기다리고, 굶을 수 있다는 것

by김진환

5장. 카마스와미



생각하고, 기다리고, 굶을 수 있다는 것


카말라의 정원을 지나 싯다르타는 상인의 집으로 들어간다.


헤세는 그곳에 카마스와미를 세워 둔다.

부유한 상인. 물건의 값과 사람의 신용을 알고, 거래가 시작될 때보다 끝났을 때 무엇이 남는지를 먼저 보는 사람이다. 그에게 사람의 능력은 쓸모로 증명된다.

카마스와미가 싯다르타에게 묻는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싯다르타는 대답한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굶을 수 있습니다.


이상한 대답이다.


장부를 쓸 수 있다고 하지 않는다. 물건의 시세를 안다고도, 고객을 설득하거나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상인의 집에서 곧바로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세 가지 능력.


그러나 싯다르타는 다른 것을 말하지 않는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기다릴 수 있다는 것.

굶을 수 있다는 것.


그는 사문의 길에서 배운 능력을 세속의 문 앞에 내려놓는다. 세계를 떠나기 위해 익힌 능력이 이제 세계로 들어가는 자격이 된다.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눈앞의 답에 서두르지 않는다.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결과 때문에 자기 방향을 너무 빨리 바꾸지 않는다.


굶을 수 있는 사람은 결핍에 쫓겨 자신의 선택을 헐값에 넘기지 않는다.


카마스와미는 돈과 물건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싯다르타는 아무것도 없어도 당장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필요한 것이 적은 사람은 쉽게 다뤄지지 않는다.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조급한 거래에 끌려가지 않는다.


굶을 수 있는 사람은 상대가 정한 시간 안에 자신을 팔지 않아도 된다.


카마스와미의 집에서 가장 현실적인 능력은 뜻밖에도 상술이 아니다. 결핍 앞에서 자유를 잃지 않는 힘이다.

4장이 사람과 세계를 얻는 기술을 물었다면, 5장은 그 세계 안에서 자기 선택을 지키는 힘을 묻는다.


창업가에게 필요한 능력도 이 세 가지가 아닐까.


정답이 없을 때 생각할 수 있는가.

결과가 늦을 때 기다릴 수 있는가.

돈과 인정이 부족할 때 굶을 수 있는가.


5장은 장부의 장이 아니다.

아직 장부에 붙잡히지 않은 사람이 가진 세 가지 힘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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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수 있다는 것


창업가의 방에는 답이 많다.


시장자료가 답을 말한다. 고객 인터뷰가 답을 말한다. 투자자와 자문위원이 방향을 말한다. 경쟁사의 성장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재촉한다.

틀린 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그럴듯하다.


그래서 생각하기가 어렵다.


생각한다는 것은 정보를 많이 모으는 일과 같지 않다. 더 많은 자료가 더 나은 판단을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정보가 늘어날수록 결정은 쉬워질 것 같지만, 때로는 반대다.

시장자료는 확장을 말하고, 고객은 안정을 요구한다. 투자자는 속도를 묻고, 팀은 제품을 고칠 시간을 원한다. 경쟁사는 가격을 내리는데, 우리 회사는 마진을 지켜야 한다.


모든 말에는 근거가 있다.

모든 근거를 따를 수는 없다.


생각한다는 것은 그 사이에서 문제를 자기 언어로 다시 쓰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매출이 부족한 것인가. 고객이 남을 이유가 부족한 것인가. 제품이 약한 것인가. 제품은 충분하지만 고객에게 도달하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투자를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투자받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하는가.

새로운 시장에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고객에게 더 오래 머물러야 하는가.


질문이 바뀌면 같은 자료도 다른 답을 준다.


창업가에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다.


정답이 아직 없는 자리에서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능력이다.


나도 생각한다고 믿었던 밤이 많았다.

자료를 읽었고, 조언을 들었고, 비슷한 회사의 성공과 실패를 정리했다. 회의가 끝나면 더 많은 정보를 요청했고, 불확실할수록 더 정교한 표를 만들었다.

그러나 실패를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답을 찾고 있었던 때가 많았다.
그것도 내가 이미 원하는 결정을 승인해 줄 답을.

확장하고 싶을 때는 시장의 크기를 보여 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투자를 받고 싶을 때는 선점의 중요성을 말하는 사례가 설득력 있게 보였다. 멈추고 싶을 때는 현금흐름을 경고하는 자료가 더 정확해 보였다.

자료가 결정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미 기울어진 마음이 필요한 자료를 불러 모았다.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믿는 일만이 아니다.

자기 생각을 의심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지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은 고객의 문제에서 출발했는가, 내 불안에서 출발했는가.

이 결정을 설명하는 근거 가운데 반대편에 놓인 근거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사람은 확신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확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3장이 마지막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다면, 5장은 그 사람이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지를 묻는다.

자기 이름으로 결정한다고 해서 자기 생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행하는 문장을 자기 목소리로 말할 수도 있고, 욕망이 만든 결론을 분석의 결과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래서 싯다르타의 첫 번째 능력은 지식이 아니다.

생각할 수 있음이다.


아는 것이 부족해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일.

다른 사람의 답이 빨리 도착해도 자기 문제를 다시 쓰는 일.

결정해야 할 때까지 생각하되, 생각을 결정하지 않는 이유로 쓰지 않는 일.


생각은 행동의 반대가 아니다.

행동할 이유와 행동하지 않을 이유를 구별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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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 수 있다는 것


창업가에게 기다리라는 말은 불편하다.


시장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먼저 움직여야 하고, 빠르게 검증해야 하며, 실패하면 곧바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늦으면 경쟁자가 고객을 가져가고, 투자시장이 닫히면 기회를 잃는다.


그 말들도 대부분 틀리지 않다.


그래서 기다림은 쉽게 게으름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모든 시간이 같은 속도로 흐르지는 않는다.

제품은 빠르게 만들 수 있어도 신뢰는 빠르게 만들기 어렵다. 광고로 사람을 데려올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남을 이유까지 구매할 수는 없다. 사람을 채용할 수는 있지만 팀이 서로의 판단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것은 실행으로 앞당길 수 있다.

어떤 것은 통과해야만 생긴다.


싯다르타가 말한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아니다.

조급함이 자기 판단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아직 의미가 없는 신호에 너무 큰 뜻을 붙인다.


첫 고객의 칭찬을 시장의 검증으로 받아들인다. 한 투자자의 거절을 사업 전체에 대한 판정으로 여긴다. 출시 직후의 반응이 약하면 제품의 방향을 바꾸고, 경쟁사가 투자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준비하지 않았던 확장을 시작한다.


결과가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행동은 많아진다.


기능을 바꾸고, 가격을 바꾸고, 고객을 바꾸고, 사업의 문장을 바꾼다.

움직이고 있으니 실패하고 있지 않다고 믿기 위해서다.


나도 기다리지 못한 밤이 있었다.


반응이 늦으면 설명을 바꾸었다. 계약이 미뤄지면 혜택을 더했다. 투자가 늦어지면 사업의 크기를 먼저 키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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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러레이터 , VC/PE 투자심사역을 거쳐 자산운용사 임원 등으로, 투자와 창업 멘토를 해왔습니다. 투자자의 시선으로, 고전을 다시 읽고, 슬롯현상에 대해 관찰한 내용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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