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가르치겠다
붓다를 떠난 길 위에서 싯다르타는 문득 멈춘다.
헤세는 그 순간을 크게 그리지 않는다. 싸움도, 선언도 없다. 한 사람이 새벽길에서 자기 속을 들여다볼 뿐이다.
지금까지 나는 누구를 피해 왔는가.
아버지를, 경전을, 고행을, 그리고 방금 전의 성자를. 피한 자리마다 가르침이 있었다. 가르침이 있을 때마다 그는 그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오래 앉아 있는 동안, 정작 한 사람은 가르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었다.
그때 하나의 문장이 떠오른다. 나는 나를 가르치겠다.
교만이 아니다. 스승이 없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스승이 너무 많아서다. 결정이 늘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다.
경전이 말해 주면 외웠고, 고행이 시키면 비웠다. 성자가 고요하면 그 고요를 빌리려 했다. 그러나 빌린 고요는 자기 고요가 아니었다. 빌린 결정도 자기 결정은 아니었다.
《데미안》이 “너는 누구인가”를 물었다면, 이곳의 질문은 조금 더 좁고 구체적이다.
이 길에서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알아차림이 이미 지나간 뒤에도 결정은 여전히 남의 입에서 나올 수 있다. 스승을 떠났다고 해서 곧 자기 자신에게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몸은 숲을 떠났지만, 판단은 아직 숲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창업가의 방에도 스승이 많다.
멘토. 자문위원. 투자자의 한마디.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링크. 어젯밤 읽은 글. 잘된 회사의 회고. 유명한 창업자의 인터뷰. 실패한 사람이 뒤늦게 정리한 교훈.
그 말들은 대부분 틀리지 않다.
그래서 위험하다.
틀린 말은 비교적 쉽게 걸러진다. 맞는 말은 오래 남는다. 하나씩 쌓인 맞는 말 사이에서, 정작 누가 결정하고 있는지가 흐려진다.
나도 그 방에 오래 앉아 있었다.
창업하던 밤마다 조언을 모았다. 경험이 부족했기에 더 많이 물었고, 불안했기에 더 성실하게 기록했다.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러나 실패를 지나고 나서야 뒤늦게 알았다.
조언이 부족해서 넘어진 것이 아니었다.
조언이 결정을 대신하도록 내버려 둔 쪽에 가까웠다.
누가 무엇을 권했는지는 기억났지만, 내가 왜 그 길을 골랐는지는 늦게 생각났다. 실패한 결정의 끝에는 자꾸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붙었다. 그가 권해서, 그 자료가 그렇게 말해서, 당시에는 모두가 동의해서.
심사 자리에서도 그 방을 본다.
어떤 대표는 질문마다 다른 사람의 문장으로 답한다. 투자자가 좋아하는 문장, 선배 창업자가 쓰던 문장, 유행하는 사업 단계의 문장. 말은 맞다. 논리도 정돈되어 있다.
그런데 밤에 혼자 쓴 문장이 없다.
2장이 성자의 길을 입지 말라고 했다면, 3장은 조금 더 안쪽을 묻는다.
성자를 떠난 뒤에도 결정은 여전히 바깥에 있을 수 있다.
질문이 하나 남는다.
조언과 방법론 너머에서, 누가 결정하는가.
결정이라는 말에는 뜻밖에도 물의 움직임이 들어 있다.
한자 ‘결정(決定)’의 ‘결(決)’은 물길과 관계된 글자다. 막힌 둑을 터서 물이 흐를 길을 내는 뜻에서 출발했다. 여러 방향으로 고여 있던 물에 하나의 흐름을 만드는 일이다.
영어의 decide는 더 단호하다. 라틴어 decidere에서 왔는데, *de-*와 ‘자르다’를 뜻하는 caedere가 결합한 말이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을 잘라 내는 일이기도 하다.
결정은 한편으로 물길을 내는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능성을 잘라 내는 일이다.
그래서 결정은 가볍지 않다.
조언은 어느 쪽에 물이 많은지 알려 줄 수 있다. 시장 자료는 어느 길이 넓고 낮은지 보여 줄 수 있다. 경험자는 어디에 바위가 숨어 있는지 말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둑을 트는 손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키르케고르의 말로 널리 전해지는 문장이 있다.
“삶은 뒤를 돌아볼 때 이해되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한다.”
투자도 창업도 대개 그렇다.
결정할 때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고객의 반응도, 경쟁자의 움직임도, 자금시장의 변화도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왜 그 선택이 옳았는지,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가 보인다.
그러므로 결정의 핵심은 완전한 확신이 아니다.
불완전한 채로 앞으로 나아가고, 그 선택의 이름을 자기 것으로 받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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