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시티, 초광역권, 5극3특—최근 몇 년 사이 국토정바카라의 언어는 점점 더 큰 단위를 향해 왔다. 부산·울산·경남을 하나로 묶고, 대구·경북을 연결하고, 충청과 광주·전남을 초광역 단위에서 바라본다. 5극3특은 이 흐름의 최신판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기 위해 전국을 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 중심으로 재편하고, 권역별 전략산업과 광역교통망을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산업을 고도화하고 규모의 경제를 만든다는 취지 자체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질문이 빠져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큰 권역 안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어느 도시를 중심으로 살아가는가.
성장거점을 만드는 것과 그 거점을 둘러싼 크고 작은 도시들이 각자의 역할을 유지하며 살아남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초광역 단위로 예산과 인프라가 재편될수록 각 권역 안에서도 부산, 대구, 광주, 대전 같은 큰 중심으로 인구와 기능이 더 빠르게 모일 수 있다. 그 아래 중소도시들은 광역 중심에도 수도권에도 속하지 못한 채 비어갈 위험이 있다.
그런데 광역과 시·군 사이에는 원래 하나의 층위가 더 있었다. 지역생활권이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가 쌓이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정바카라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해 온 질서다. 생활권 하나는 대개 중심도시 한 곳과 그를 둘러싼 몇 개의 시·군으로 이루어진다. 이 바카라은 이런 지역생활권의 중심도시를 중견도시라고 부른다.
예컨대 진주는 오랫동안 서부 경남의 지역생활권을 이끄는 중견도시 역할을 해왔다. 주변 지역 주민들은 모든 일을 부산이나 창원 같은 광역 중심지까지 가서 해결하지 않았다. 진주에 와서 병원을 찾고, 법원 일을 보고, 물건을 사고, 학교에 다녔다. 규모와 구성은 달라도 이런 관계가 전국 곳곳에서 반복되어 왔다.
한 도시가 생활권의 중심이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바카라이 묻는 것은 중견도시의 중심성이 무엇으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작동하는가이다. 광역 중심지와 생활권 중심지는 서로 전혀 다른 종류의 도시가 아니다. 비슷한 기능을 갖되 규모와 영향권이 다르다. 광역 중심지에 법원 본원이 있다면 생활권 중심지에는 지원이 있고, 상급종합병원이 있다면 종합병원이 있으며, 거점국립대가 있다면 생활권 중심도시에는 지역의 교육 수요를 담당하는 대학이 있다. 철도역과 버스터미널, 관공서와 학교, 산업시설과 시장도 주변 지역의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다. 오늘날에는 군 단위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존재조차 그 도시가 주변 지역의 소비를 얼마나 끌어들이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지표가 된다.
이렇게 교통·행정·의료·산업·상업·문화의 기능이 한 도시에 겹치면서 주변 시·군의 일상이 그 도시를 중심으로 조직된다. 이 여섯 가지 중심 기능을 이 바카라에서는 ‘앵커’라고 부른다.
중요한 것은 이 앵커들이 어느 날 누군가의 계획에 따라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철도가 놓이고, 법원이 들어서고, 학교와 병원이 생기고, 시장이 커지면서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결과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혁신도시나 산업단지처럼 정바카라적으로 이식된 거점과는 성격이 다르다. 새로 이식된 앵커는 기존의 지역 질서를 강화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존 중심지를 우회하면서 전혀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문제는 이렇게 오랜 시간 만들어진 자생적 앵커들이 조용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대학의 통합과 재편이 진행되고, 병원과 학교가 약해지고, 원도심 상권이 쇠퇴하면서 생활권 중심도시의 기능도 흔들리고 있다. 특히 대학의 변화는 교육기관 하나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학생과 교직원, 소비와 문화, 지역의 인재 공급이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활권 중심도시가 이런 기능을 잃으면 주변의 작은 시·군은 가까운 중심도시보다 더 큰 도시를 향하게 되고, 그 흐름의 끝에는 수도권이 있다.
지역소멸은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만이 아니다. 중심과 주변을 이어주던 관계가 끊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역의 질서』는 이 관계가 지금도 남아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한 답사다. 출발점은 1982년 시작된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다. 당시 정부는 전국을 28개 지역생활권으로 나누었다.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를 중심으로 한 5개 대도시생활권을 제외하면 지방도시생활권 17개와 농촌도시생활권 6개, 모두 23개 생활권이 남는다. 이 바카라은 바로 이 23개 지역생활권을 기본 골격으로 삼는다. 국가가 40여 년 전에 이미 확인했던 지역의 중간 구조이기 때문이다. 다만 변화한 도시의 위계와 현실을 반영해 속초를 추가하고 점촌은 상주로 대체해 모두 24개 중견도시를 답사한다.
답사는 강원의 춘천에서 시작한다. 속초·강릉·원주·영월을 거쳐 경상의 상주·안동·영주·포항·거창·진주로 내려간다. 다시 전라의 순천·강진·목포·남원·전주·익산을 지나 충청의 홍주·서산·천안·충주·제천·청주를 걷고, 마지막으로 제주에 닿는다.
나는 이 도시들의 역과 터미널에 내리고, 원도심을 걸으며 시장과 상가를 들여다볼 것이다. 법원과 병원과 대학이 여전히 중심 기능을 수행하는지, 버스와 철도가 어디를 향하는지, 주변 지역 사람들이 지금도 이 도시를 찾아오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한때 중심이었던 곳은 여전히 중심인지, 중심을 잃었다면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했는지도 찾아볼 것이다.
이 여행이 향하는 곳은 하나다. 지역소멸에 대응하려면 지역생활권의 중심인 중견도시의 역할을 복원해야 한다. 새로운 지역의 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중심과 생활권의 관계를 되살리는 일이다. 지역은 백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