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9_소정수련일지_3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설레는 기회를 덥석 물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설레게 하는 일은 항상 돈이 안 되었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결국 돈이 되어야
그 일을 하는 동안의 마음이 평화로웠다.
애초부터 시작이 잘못된 걸까,
똑같은 일을 해도 내가 하면 돈이 안 되었다.
돈이 없는 프리랜서 생활이 지속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땐
결국 돈이 되는 일이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고
유의미한 결과로 남는다는 기준이 생겼다.
그때부터 무용한 것,
관심은 있지만 수익화가 어려운 모든 것을
점점 멀리했다.
끝없이 아웃풋을 내기 위한 시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살기 위한 시간에만 집중했다.
그러면서 재미있게 그리던 그림도 하기 싫어졌다.
내가 그린 그림도 보기 싫었고,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조차 궁금하지 않았다.
호기심 없는 무지의 상태.
결국 돈이 안 되는 무언가가 나를 설레게 한다.
요즘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때로 돌아가는 게 약간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활발한 시장에서 벗어나
자꾸 나만의 세계에 갇히려는 걸까?
그런 나를 자주 검열한다.
하지만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함부로 버려선 안 된다는 것 또한 배웠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잘 좀 맞춰 살아보자.
결국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 주고
에너지를 불러일으켜주니
원래 생존은 불안하다.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남고
개선하고 대비하며 살아간다.
수시로 올라오는 불안을 지긋이 바라보면
남들은 바쁜 하반기를 보내는 것 같은데
나는 일이 없이 한가한 것이
과연 옳은 일하는 방식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괜히 불안감이 올라온다.
숨을 쉬며
너 자신을 믿어보라며 다시 한번 불안을 잠재운다.
어차피 너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니
어떻게든 먹고살 테니, 너 자신을 믿어보라며.
답답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현실이 펼쳐지지 않을 땐 답답함이 치솟는다.
치솟는다는 표현이 딱 알맞다.
맨홀 뚜껑이 물의 압력으로 솟구치듯
내 안의 답답함은 잠긴 문을 뻥 차버리고
머리끝까지 치솟는 느낌이다.
내가 만든 릴스는 조회수가 잘 나오면 좋겠고
내가 하는 일에 모든 사람이 공감해 주면 좋겠고
내가 말하는 것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봐 주면 좋겠다.
정말 이 모든 게 이루어졌을 땐
나는 행복할까?
뭐, 행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무엇 때문에 나는 이리도
다른 사람의 시선과 관심을 갈망하는가.
훈장이라도 되듯
그것으로 우쭐대는 삶을 살고 싶은 건가.
나의 욕망을 다시 한번 검토한다.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내부로 시선을 돌리자.
"1주일에 1회 강의를 4번 해야 하는 거니깐 시간이 남잖아요?
그러니깐 에이전시 역할까지 하는 거예요.
제가 연결해 드리면 직접 연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이 가능합니다."
스쳐 지나간 그의 말이 갑자기 툭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다.
2시간짜리 강의안을 며칠째 붙잡고 있는 나를 보며 생각났나 보다.
목차를 짜는 데 5일이 걸렸다.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 점검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제목에 들어갈 내용의 뼈대를 잡고
소제목을 계속 수정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 분노와 답답함이 올라온다.
느리다. 정말 느리다.
이 세상에 내가 제일 느린 것 같다.
노력만큼 되지 않는 부분에서 분함이 올라온다.
내 일의 능력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반기 다짐 중 하나는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를 최대한 신중히 받아들이고
내 안의 혼란을 잠재워 최대한 잔잔한 상태로 있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 세상을 넓히지 못하는 건 나의 선입견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나를 대략적인 카테고리로 분류해 던져놓은 듯 취급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불쾌하다.
불편함이 올라오는 시장.
난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왜 또 현실과 타협하며 휩쓸리고 있을까.
정상 끝까지 올라가 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여유가 질투 난다.
언제나 한 번쯤은 내가 발 담근 시장에서 정상까지 올라가 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숫자의 한계를 계속 올려가려는 욕구.
하지만 그 과정은 온통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저 위에 있는 1%의 사람들의 삶을 봐도
저것이 행복한 걸까 되묻게 된다.
숫자가 싫으면서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알면서도
결국 숫자로 말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숫자는 냉철하고, 현실적이다.
돈값을 하겠다는 태도가 나를 성장시켰다.
숫자를 바라봐야
시선이 소비자를 향하게 되고, 시장의 흐름이 보인다.
경쟁자와 비교하며 분석하게 된다.
성과가 실력인지 운인지,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인지.
숫자는 숨기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던 시절
노력과 성과를 구분하지 못하고
나의 전문성이 신뢰자본으로 넘어가지 못할 때의 답답함을
오래 겪은 덕분인지
추상적인 것에서 올라오는 답답함을 유독 잘 느낀다.
노력(努力)은 힘쓸 노(努) + 힘 력(力),
'열심히 힘썼다'는 뜻이다.
성과(成果)는 이룰 성(成) + 실과 과(果),
'성과로 이득을 취하다'라는 뜻이다.
1년 내내 농사를 지었다면 수확을 하고 이익을 내야 성과다.
그래야 먹고살고, 그래야 숨이 잘 쉬어진다.
숫자를 명확히 바라봐야
나를 지킬 수 있다.
마음을 전달하는 것과 숫자를 보는 건 다른 일이다.
누군가는 숫자를 다루는 일을 해야
모든 일이 잘 돌아간다.
그래서 요즘, 성과=이익이 나지 않는 지금은
나는 쉬는 중이다.
쉬는 중이지만 일은 많이 한다.
콘텐츠를 쌓아가는 일
몸을 단련시키는 일
새로운 세계를 배우는 일
테스트해 보는 프로젝트
등
지금 쌓아가는 노력의 시간이
나의 성과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