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오랜만에 테드 창의 소설을 읽으며 요가매트 위에 누워있었다. 어쩌다보니 엄마와 한 달 동안 통화를 하지 않았다. 동생 문제도 있고 엄마가 미안해하는 걸 보는 걸 피하고 싶었다. 자꾸 미루다보니 자주 공황증세가 올라올 정도였다. 오늘은 전화를 걸었다. 동생이 일을 시작했고, 6월에 엄마는 스텐트 시술을 하는데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미안해서 전화를 걸지 못한 건 엄마도 마찬가지.
미안할 걸 알면서도 미안한 일을 멈출 수 없는 것,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도 주인공은 슬플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외계에서 온 생명체들과 대화하며 행동하는 순간 끝을 알게 되는 사고방식을 체득한다. 삶이 인과가 아니라 선택의 순간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딸이 태어나기도 전에 딸을 잃을 것을 알지만,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 딸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끝을 알고 있지만, 딸을 만나고 사랑하고 잃는 삶을 산다. 앎이 삶을 행하는 것과는 다르다.
목적지를, 결말을 알지만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 삶을 행한다.
언제까지나 나는 엄마에게, 엄마는 나에게 미안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미안하려면 사랑하고 미안해하는 수 밖에 없다. 미안할 거라는 걸 머리로 아는 것과 사랑하고 울고 웃으며 미안함을 행하는 삶을 사는 일은 다르다. 알고 있어도 행해야 일어난다.
언젠가 내가 전혀 다른 일을 할 것을 안다. 목적지를 안다면 그렇게 살아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 오래 전의 나는 내가 만드는 일의 기쁨을 발견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 같다. 먼 훗 날에 내가 다른 일을 하게 되는 미래는 사실 그때부터 시작되어있었다. 삶이 이렇게 동시에 일어난다고, 시작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대단히 대단할 게 없다. 아는 것을 행하느냐 알고만 있느냐, 의 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