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해당한다는 건 뭘까?

by정안

침해당한다는 건 뭘까?


내가 불같이 화나는 순간은 멍청함에 침해당했다고 느낄 때이다. 회사에서 멍청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가족들이 징징거릴 때 기타 등등. 머리를 말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같은 분노로 다른 사람을 침해한 적은 없을까?


ADHD 진단을 받기 전부터도 내가 주의력과 기분은 몹시 한정되고 분산되기 쉬운 자원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몰입하고 고립되는 시간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언제까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효율적이고 가혹하게 과업을 수행해야한다. 당장 내일, 아니 오분 뒤라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지고 그 어떤 집중력도 남지 않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그게 공부와 바카라 읽기 였고, 지금은 일하는 것과 도자기 작업이다. 빨리 일하고 도자기 하러 가야 되는데 팀장이 붙잡고 하소연하거나 자기 아이피 주소도 못찾는 팀원이 나를 붙잡으면 불같이 화가 난다. 학생 때도 그랬다. 빨리, 더 많이 공부해서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하는데 제일 쉬운 문제도 틀리고 오는 동생을 보면 너무 이해가 안가서 머리가 핑 돌았다. 스스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왜 스스로 선택하지 못할까.


그런 외부 자극들로 낙엽처럼 간신히 긁어모은 집중력이 달아날 때, 화가 난다. 실제로 그들이 그렇게 멍청한 게 아니더라도 내 결정권이나 집중력을 침해하는 건 멍청하다.


하지만, 나의 한정된 자원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소중한 뭔가를 침해한 적은 없을까? 근데 그 전에 타인에게 뭔가 소중한 게 있을거라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방해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내게 죽은 것과 같다. 아무런 중요함도 소중함도 없다. 방해한 사람 -> 멍청한 사람 -> 분노의 대상이라는 공식이 적용되므로, 상대가 누구라도 별 흥미가 없다.


근데 머리를 말리다가 문득, 내가 침해당했다고 느껴서 분노하는 일이 누군가를 침해한 적은 없을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분노하는 순간에는 분노하는 나 밖에 없어서 상대가 어떤 감정이나 의식이었는지 전혀 모르겠다.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누군가도 나처럼 소중한 것을 침해당해서 분노든 슬픔이든 뭔가 느꼈을텐데. 갑자기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황당하고 어리둥절하다.

월요일 연재
이전 24화사실 이번 생은 길고 긴 회상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