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속에 묻어 둔 시간

인간은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by현월안



가끔 소식으로만 알던 중학교 동창을 십 년 만에 만났다. 친구는 그때의 얼굴이 시간과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친구를 만나니까 문득 오래전 그때 학교의 냄새와 운동장 흙먼지, 또 이름만 불러도 웃음이 터지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유독 특이했던 이 친구. 유난히 맘이 곱고 천사 같았던, 눈이 예뻐서 한눈에 확 띄던 친구.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 고향이 어디냐고 궁금해한다. 그리고 조금 더 궁금하면 어느 고등학교 출신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중학교를 어디 나왔느냐는 질문은 거의 하지 않는다. 어쩌면 중학교 시절은 삶의 셈을 배우기 전의 시간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 시절은 아직 덜 익었고 맑고 순수하고 보송보송한 시절. 그저 덜 자란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좋아하고 또 미워하며 함께 웃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중학교 친구들은 인생의 긴 시간을 지나가는 동안 점점 기억 속으로 멀어진다. 세월 속에 자연스럽게 묻혀 버린 시간들. 누구는 외국으로 떠났고 누구는 연락처가 바뀌었고 또 누구는 이름만 겨우 남아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내 연락처 안에 늘 들어있는 친구다. 아주 가끔 안부 정도만 묻던 사이. 친구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남편을 만나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건너서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요즘 들어 자꾸 전화가 온다. 만나자고. 그리고 또 중학교 친구들을 부쩍 보고 싶어 한다. 그 순수하던 시절이 그립다고 말한다. 친구는 여러 친구들과 관계를 이어가질 않았다. 사람을 쉽게 곁에 두지 않았고 관계에도 소원했다. 그런데 이제는 모임이 있으면 가리지 않고 나가겠다고 말한다. 학교 때 친구들이 부르면 어울리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친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를 많이 내려놓은 듯한, 또 그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얼굴에 많이 들어 있다. 뭔가 '남편 사업이 잘 안 되는 걸까.'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얼굴보다 분위기가 먼저 변한다. 전체적으로 편안해진 느낌과 살짝 말의 톤이 높아지고 또 알 수 없는 눈빛과 두서없는 말들. 누구나 젊은 날에는 눈빛 속에 욕심이 들어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 조금씩 힘이 빠진다. 이겨야 한다는 마음보다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래서 많이 가지는 것보다 오래 곁에 있는 사람이 귀해지는 것이다.



친구는 헤어지며 말한다. "우리 자주 만나서 맛있는 거 많이 먹자."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이는 말. "운동 많이 하지? 건강해야 오래 만나지." 마지막 말이 진심 같아서 가슴에 남았다. 그 말속에는 힘든 시간을 건너온 사람이 가진 쓸쓸하고 다정한 정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화려했던 젊음도 지나가고, 한때 좋았던 욕망도 흐릿해진다. 대신 남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람은 새로운 인연보다 오래된 인연을 더 그리워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고향을 바라본다고 했을까. 그 순수했던 시절의 자신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계산하지 않았던 시절과 아직 상처보다 꿈이 많았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일 것이다. 친구가 중학교 친구를 찾는 마음도 어쩌면 그와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세월은 사람을 둥글게 만든다. 늙고, 약해지고, 떠나간다는 사실 앞에서 사람은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친구의 변화를 보며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일 테고 또 약해지는 모습일 것이다. 젊을 때는 세상이 넓어 사람보다 일이 중요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일보다 오래 만나던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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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것은 잃어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늦게나마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월은 때로 서글프지만, 그 서글픔 덕분에 사람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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