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의 세 마디가 바꾼 삶의 방향
스승의 날이다.
최근 몇 년째 이날은 조용히 지나간다. 처음에는 기분이 묘했고 허전하기도 했다. 한때는 제자와 학부모들의 연락이 이어졌고 상담실 한쪽에는 선물이 쌓이곤 했다.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워 아예 학원 문을 닫고 선생들과 산행을 떠난 적도 있었다.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고 칠판에 문제를 풀던 시간이 오래 계속될 줄 알았다.
이제는 휴대전화가 조용해도 굳이 화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새벽이면 요양병원 주방에 들어가 국자를 들고 환자의 식이표를 읽는다. 기자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로, 수학 강사에서 학원 원장으로, 다시 병원 주방으로. 지나온 직함만 늘어놓으면 서로 이어지지 않는 삶처럼 보인다. 그 갈림길을 되짚어 보면 아내가 건넨 말들이 떠오른다.
신문사 기자를 그만두고 시민단체 상근자로 들어간 것은 내 선택이었다. 바카라상 앞에서 세상을 설명하기보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살고 싶었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컸다. 다만 그 자부심으로 생활비를 마련할 수는 없었다. 급여는 많지 않았고 그마저 제때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세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는 슬롯의 문제를 고민했고, 아내는 가족의 생활을 바카라임졌다. 말이 좋아 맞벌이였지 경제적인 면에서는 아내가 가장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선택을 유지하기 위해 아내가 얼마만큼의 몫을 감당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그렇게 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을 무렵, 아내가 말했다.
“10년 동안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했으니, 앞으로 10년은 가족을 위해 사는 건 어때.”
나무라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동안 잘못 살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내게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것처럼 아내에게도 자신의 삶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고 생활에는 매달 돈이 필요했다. 내가 꿈꾸는 슬롯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우리 가족의 현재는 계속되고 있었다.
시민단체를 떠나 수학학원 강사가 되었다. 가족을 위해 선택한 일이었지만 가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잘 맞았다. 학생들이 늘었고, 오랫동안 강사 생활을 하다가 독립해 학원을 열었다. 사업은 기대 이상으로 성장했다. 여러 학원을 운영하면서 다시 미래를 설계했다. 가족의 생활을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내 능력을 증명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실패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만은 아니었다. 믿었던 지인의 사기가 결정적인 타격이었지만, 사업이 커지는 속도를 내 능력으로 착각했던 자만도 있었다. 충분히 살피지 못한 일들이 뒤늦게 드러났다. 학원을 하나씩 정리했으나 빚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급기야 가족이 살던 집까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놓였다.
그 무렵에는 아침이 두려웠다. 아내가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집에 혼자 남았다. 아침 아홉 시가 가까워지면 카드회사와 금융기관의 추심 전화가 걸려 왔다. 하나를 끊으면 다른 전화가 울렸다. 받지 않는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연락이 되지 않으면 늦은 밤 집이나 학원으로 불쑥 찾아왔다.
학부모와 상담하는 중에 추심 직원이 찾아와 진땀을 흘린 적이 있었다. 현관 밖에서 독촉하는 말을 귀가하던 아이들이 듣게 된 적도 있었다.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던 사정을 아이들이 마주하는 순간에는 억장이 무너졌다. 수업을 할 때도, 집에 있을 때도 마음 한쪽에서는 다음 전화와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휴대전화 벨이 울리면 화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가슴부터 쿵쾅거렸다. 맥박이 거칠어지고 몸이 긴장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때 쓰던 벨소리를 우연히 들으면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한다. 머리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아는데 몸은 아직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수업을 마친 늦은 밤에는 혼자 술을 마셨다. 취기가 올라 생각이 흐려지는 시간이 그나마 견딜 만했다. 학생들에게 내일을 준비하라고 말하던 사람이 정작 자신의 내일은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 머물기 어려운 날에는 운동화를 신고 산으로 향했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몰라도 걸을 수는 있었다. 건강해지려는 운동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날을 넘기려고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미룰 수 없는 결정이 남아 있었다. 집을 처분해야 했다.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내린 결론이었지만 아내에게 그 말을 꺼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내 실패의 결과를 가족에게 함께 감당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저녁,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을 처분하자.”
아내가 원망해도 할 말이 없었다. 잠시 뒤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잘 생각했다. 다시 시작해서 새로 집을 장만하면 되지. 내 차도 처분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집을 잃는다는 생각에 붙들려 있었는데 아내는 집을 처분한 뒤에도 계속될 생활을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타던 차까지 내놓겠다고 했다. 그 말에 담긴 두려움과 결심을 당시의 나는 다 헤아리지 못했다.
더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늦은 밤 다시 걸었다. 낮에는 버티기 위해 걸었고, 그날 밤에는 아내 앞에서 흘리지 못한 눈물을 감추려고 걸었다. 어둠이 내 눈물을 감춰 줘 고마웠다. 가늘게 내리는 비까지 얼굴을 적셨다. 그날 밤에는 빗물과 눈물을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었다.
집과 차를 처분하면서 빚의 상당 부분을 해결했지만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남은 빚은 과외를 하며 조금씩 갚아 나갔다. 학생이 늘면 숨을 돌렸고 줄어들면 다음 달을 걱정했다. 한때 여러 학원을 운영했던 사람이 이제는 학생 한두 명의 변화에 생활이 흔들렸다.
사업을 정리하는 일보다 그때의 나를 정리하는 일이 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생활은 달라졌는데 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직함을 붙들고 있었다.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묻는 자리에서는 예전에 무엇을 했는지부터 떠올렸다.
그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아내가 또 말을 꺼냈다.
“내가 일하는 병원 주방에 사람이 필요한데, 거기서 알바라도 해 보는 건 어떻노.”
순간 마음 한쪽이 불편해졌다. 신문사 기자였고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수학학원을 운영했던 사람이다. 지금도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이력이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줄을 섰다. 마치 나를 변호하려는 사람들처럼.
‘내가 이제 병원 주방에서까지 일해야 하나.’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곧이어 다른 질문이 따라왔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얼마나 벌고 있는가. 아직 갚아야 할 빚이 있는데 언제까지 들쭉날쭉한 수입에 기대어 살 것인가. 과거의 직함은 길게 늘어놓을 수 있었지만, 그중 어느 것도 다음 달 생활비를 보내 주지는 않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학생들에게 말해 온 사람도 나였다. 남의 직업을 이야기할 때는 망설임 없이 나오던 말이 내 직업을 바꾸는 문제 앞에서는 입안에 걸렸다. 아내의 제안보다 내가 품은 생각이 더 불편했다.
속에서는 여러 문장이 오갔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짧았다.
“생각해 볼게.”
그렇게 말해 놓고도 실제로 주방에서 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잠깐 알아보는 정도라고 여겼다. 생활이 나아지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일은 내 마음이 준비되는 속도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지 보름 만인 2022년 12월 19일, 나는 요양병원 주방에 들어섰다.
잠시 해 보려던 일이 어느덧 네 번째 해에 접어들었다.
돌아보면 아내의 말은 언제나 내가 외면하고 있던 생활을 향해 있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가족을 떠받치는 자신의 시간을, 집을 처분하던 날에는 함께 내놓아야 할 것을, 주방 일을 권하던 날에는 당장 이어 가야 할 생계를 말하고 있었다. 내가 내 실패와 상처에 몰두하는 동안 아내도 같은 집에서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아내도 그 뒤의 생활을 미리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음 날을 살아가기 위해 결정을 꺼냈고, 자신의 몫도 함께 내놓았다.
나는 그때마다 망설였고 속으로 반발하기도 했다. 선택은 내가 했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가족이 함께 감당했다. 잘못된 판단도 있었고 다시 돌아간다면 다르게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지금의 생활에 적응했다는 이유로 그때의 고통까지 필요한 일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잘못된 선택이 있었다고 해서 앞으로의 삶까지 잘못된 것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스승의 날인 오늘도 배식 시간이 가까워지면 주방은 분주해진다. 상담실에 쌓이던 선물 대신 눈앞에는 채워야 할 식판이 놓여 있다. 지금도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지만, 새벽에는 이곳으로 출근한다. 잠시 머물다 떠날 생각으로 들어온 곳에서 몇 해째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국솥에서 김이 오른다. 식이표를 살핀 뒤 국자를 든다. 아내가 주방 일을 권했을 때는 내가 지켜 온 무언가를 내려놓으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뒤에야 알게 된 것은 매달 이어지는 생활과 새로 배워야 할 일들이었다. 서툴러도 다음 날 다시 출근할 곳이 생겼다.
한때는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의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