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보이지 않는 나무를 그리는 사람
병원 주방에서는 준비한 식판이 모두 올라가고 나면 작업대가 빈다. 잠깐 전까지 놓여 있던 밥과 국과 반찬은 보이지 않는다. 도구를 씻고 자리를 정리하면 다시 다음 끼니를 기다리는 공간이 된다.
새벽 두 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뜬다. 창밖은 아직 밤이다. 멀리 북항의 불빛이 보이고 바람 소리가 옥상 난간을 스친다. 커피를 내려 바카라상 앞에 앉는다. 펼쳐 둔 바카라과 노트북, 어제 쓰다 멈춘 문장이 기다리고 있다.
문장 하나를 읽고 고친다. 고친 문장이 전보다 나은지 확신하지 못해 다시 읽는다. 출근하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쓰고 싶지만, 몇 줄을 붙들고 시간이 지나갈 때도 있다.
요즘은 그런 새벽마다 J. R. R. 톨킨의 「니글의 잎새」가 생각난다.
니글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잎새 하나를 세심하게 그리다가 그의 그림은 커다란 나무와 그 너머의 풍경으로 뻗어 간다. 마음속 그림은 커지는데 완성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해야 할 일과 이웃의 부탁이 그를 그림 밖으로 불러낸다.
처음 읽을 때는 답답했다. 저토록 그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다른 일을 조금 미루고 그림 앞에 더 오래 앉아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시 읽으니 니글의 사정이 조금 가까워졌다. 나에게도 오래 붙들고 싶은 일이 있다. 바카라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이다. 하루 종일 문장을 고치다가 저녁이 되는 날을 상상하기도 한다.
실제 하루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출근할 시간이 되면 노트북을 닫아야 한다. 병원에서 돌아오면 쉬어야 하고, 학생과의 수업도 준비해야 한다. 도서관에 들렀다가 집에 오면 벌써 하루가 많이 지나 있다. 밤에 다시 노트북을 열어도 눈꺼풀이 먼저 영업 종료를 선언하는 날이 있다.
쓰고 싶은 것과 쓸 수 있는 시간 사이에서 자주 조급해졌다. 일을 덜 하고 시간이 많아지면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적는 몇 줄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의 메모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그 메모에 주방이 들어 있었다. 국솥 앞에서 들은 말과 배식하며 본 얼굴, 이름표를 읽다가 떠오른 생각이 적혀 있었다. 수업 중 학생이 던진 질문도 있었고, 도서관에서 밑줄 친 문장도 있었다.
글을 쓰는 시간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글 안에 들어와 있었다.
몸이 무거운 날에는 바카라 한 쪽도 읽기 어렵고,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고 잠드는 저녁은 여전히 아쉽다.
다만 쓰기 좋은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지금의 시간을 통째로 괄호 안에 넣어 둘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미 그 시간을 살고 있었고, 그 안에서 적을 것을 만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화이트보드를 지운다. 학생과 함께 썼던 숫자와 선이 사라진다. “아, 알겠다”라는 말을 들은 날에도 보드는 똑같이 하얗게 돌아간다. 남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도서관에서 읽은 바카라도 그렇다. 밑줄을 긋고 노트에 옮겨 적었는데 며칠 지나면 어디에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바카라을 덮으며 분명히 알았다고 생각한 내용도 막상 설명하려 하면 흐릿하다.
한때는 그런 일들이 허무했다. 만들었는데 사라지고, 설명했는데 지워지고, 읽었는데 잊어버렸다. 눈에 보이게 쌓이는 것이 있어야 하루를 잘 썼다고 느꼈다.
글은 조금 달랐다. 서툰 문장이라도 화면에 남았다. 하지만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만족하기는 어려웠다. 더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내 문장이 작아 보였다. 이 나이에 시작해서 얼마나 쓸 수 있을지, 한 권으로 묶을 만큼의 이야기가 있는지 헤아렸다.
니글의 나무를 읽으며 멈춘 것은 그 대목이었다. 나는 잎새를 그리고 있으면서 자꾸 나무의 크기를 확인하려 했다. 아직 없는 가지와 열매까지 바라보며 지금 그리는 한 장을 초라하게 여겼다.
톨킨의 이야기에서 니글은 긴 여행 끝에 자신이 그리려 했던 나무를 마주한다. 끝내 그림으로 완성하지 못했던 나무가 그 앞에 서 있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읽었다.
내게도 그런 나무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지금 쓰는 글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오래 남을 문장이 있을지, 언젠가 다시 읽으며 지우고 싶은 글이 더 많을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무 전체를 먼저 확인해야만 잎새 하나를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것은 어제 멈춘 문장을 다시 읽는 일이다. 마음에 걸리는 말을 고치고, 오래 남은 장면을 조금 더 또렷하게 적는다. 몇 줄을 지우고 나면 쓴 분량이 줄어들기도 한다. 그날의 일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니글의 이야기를 덮고 화면을 본다. 아직 고쳐야 할 문장이 남아 있다. 출근할 시간까지 끝내지 못하면 그대로 두고 가야 할 것이다. 저녁에 피곤하면 다음 새벽에 다시 읽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그런 중단을 제대로 쓰지 못한 증거로 여겼다. 이제는 다시 돌아올 문장이 있다는 쪽으로 생각해 보려 한다. 오늘 끝내지 못한 곳이 다음 새벽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창밖의 북항 불빛은 여전히 멀리 있다. 문장 뒤에 몇 글자를 보태고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거대한 나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오늘의 잎새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