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나의 삼시세끼는 가성비가 높았다. 집밥보다 훌륭한 학교급식과 회사식당이 있고,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려가면 손 많이 가는 김밥을 2분 안에 사올 수도 있었다. 그러다 뉴질랜드에서 맞는 첫 아침에 아이가 물었다. “엄마, 오늘 아침엔 뭘 먹어?” ‘내가 차려야 하는 거구나!’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리 장을 많이 봐도 이상하게 당장 먹을 건 없었다. 급한 대로 냉동식품을 데워 샐러드 채소 위에 올려냈다. 샐러드드레싱이 필요하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 아이는 유독 돌아서면 허기져했다. 부실한 엄마표 밥상이 아니더라도 그럴 만했다. 7월의 한겨울, 갈 곳도 놀 사람도 없으니 먹는 것 말고는 달리 즐거움이 없던 때다. 불행히도 엄마가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곤 카레라이스와 토마토파스타 정도였다. 과자나 빵이라도 다양하게 살 수 있다면 좀 나을 텐데 이곳의 디저트는 달지 않으면 퍽퍽했다. 한동안은 데우기만 하면 되는 반조리 연어를 사다가 냉장고에 쟁였다.
연어가 물릴 때쯤 저렴한 현지 생선으로 대체하는 요령이 생겼다. 소고기의 나라에서 처음으로 안심 스테이크를 굽고는 아이에게 얼마나 생색을 냈던지! 냉동 바지락살 넣고 시금치 된장국 흉내를 내거나 가끔은 큰 맘 먹고 김치찌개도 끓였다. 아이는 국물인지 찌개인지 모를 그 음식에 코를 박고 먹었다. 생크림이나 전분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알게 됐다. 간단한 버전의 탕수육을 만들어 짜장라면을 곁들이고, 아이를 시켜 건너편 삼촌댁에도 배달을 했다. ‘NZ반점’의 탄생이었다.
닭고기 한 팩으로 2가지 요리를 하겠다고 부산을 떨던 어느 오후였다. 딸아이와 애증의 산수 문제집을 두고 신경전이 펼쳐졌다. 약속한 분량을 안 하겠다고 버티는 아이에게 화가 나 저녁밥을 차려주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화를 삭인 뒤 나가 식은 밥을 한술 뜨는데 이럴 수가, 닭고기가 덜 익어 있는 게 아닌가. “엄마가 화난 것 같아서 그냥 먹었어.” 아이의 말에 스스로 너무 한심해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지만, 방금 전 신경전 여파로 제대로 사과도 못한 채 밤새 자바카라만 했다.
하루세끼를 내 손으로 차려내는 일은 생각보다 무겁다. 방금 먹은 저녁을 치우면서 내일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기 막힌 상황이라 온종일 부엌에 매여 있다. 더구나 요리 센스가 없는 나에게는 솔직히 말하면 괴로운 일에 가깝다.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니 ‘근사한 한상’에 대한 부담도 내려놓게 됐다. “또?” 하는 아이 앞에 당당히 카레라이스를 내밀고 가끔은 라면도 끓여먹는다. 고맙게도 밥 한 그릇 뚝딱 비운 후 레몬차와 비스킷을 먹던 아이가 문득 묻는다. “엄마, 여기서 마지막 날 우린 뭘 먹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