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남섬에서 겨울 신고식을 마칠 즈음 봄과 함께 반가운 첫 손님이 찾아왔다. 한국에서 후배 Y가 딸을 데리고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엄마 친구와 자신의 친구가 함께 방문하는 귀하디귀한 이벤트에 아이는 공항 입국장을 서성대며 “진짜 오는 게 맞을까” 연신 물었다. 아이의 질문이 “안 왔나 봐!”로 바뀔 즈음 기다리던 얼굴들이 나타났다. Y 모녀는 환하게 웃으며 커다란 가방 2개를 힘든 기색도 없이 밀고 나왔다. 그 큰 짐의 절반쯤은 나에게 줄 식량을 잔뜩 실은 채로.
몇 주 전, Y에게서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연락을 받고 나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활반경 2㎞를 좀처럼 넘지 않는 나에게 친구의 방문은 482㎞ 떨어진 관광지 퀸스타운을 여행할 절호의 기회였다. 모녀 단 둘이 미국 로드트립을 감행한 ‘용감한 여행자’ Y는 고맙게도 정 반대인 내 스타일을 존중해주었다. 비용이 좀 들더라도 가이드 투어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10월 초,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는 눈부셨다. 운전 스트레스 없는 오붓한 두 모녀의 여행길은 특히 나의 행복을 2배, 아니 4배쯤은 더 올려주었다.
그렇게 가벼이 떠나 맞이한 첫 기착지, 데카포 호수에서 받은 감동은 잊을 수 없다. 만년설 내려앉은 거대한 돌산이 에메랄드빛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싼 풍경 앞에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이걸 보려고 그동안 고생을 한 건 가 봐.”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장관은 가는 길 내내 이어졌다. 행동파 Y 모녀 덕분에 아이는 겁 많은 엄마 없이도 퀸스타운 호수에서 제트보트를 타며 평생 못 잊을 풍경을 눈에 담아 왔다. 나는 나대로 호숫가 펍에 앉아 ‘이게 무슨 호사인가’ 싶은 시간을 보냈으니 우리 넷은 제법 괜찮은 여행메이트였던 것 같다.
2박3일 로드트립의 피날레는 쏟아져 내릴 듯한 밤하늘의 별 보기였다. Y에게 남은 이틀은 우리 집에 머물며 쉬엄쉬엄 보내기로 했다. 그새 베스트프렌드가 된 동갑내기 아이들은 매일 꼭 붙어 자며 알아서 잘 놀았다. 덕분에 엄마들은 마당에 앉아 ‘풀멍’ 하는 시간도 누렸다. Y는 잔디밭에 앉아보더니 아예 자리를 잡고 누웠다. 누구든 눕지 않고는 못 배기는 폭신함이기는 하다. 어느새 Y는 짧은 낮잠에 접어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계속 그렇게 쉬게 하고픈 마음이었다. 이상하게도 이 장면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좋은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Y 모녀를 공항에서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미역국부터 한 솥 끓이기 시작했다. Y가 한국에서 공수해 레시피를 전수해준 미역이었다. 곰탕같이 푹 끓인 소고기 미역국에 밥을 말아 김치만 놓고 나도 딸도 정신없이 흡입했다. 여독이 풀리는 맛이었다. 3개월 지낸 이곳이 처음으로 ‘내 집’처럼 느껴지는 맛이기도 했다. 나의 뉴질랜드 1년 살이도 끝내고 보면 그런 것이 될까. ‘여기가 집이었지!’ 하는 동시에 아련하게 그리운 곳이 생기는 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