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은 빠르면 사춘기가 오기도 하는 또 한 번의 성장 전환점이다. 그 시기의 아이를 데리고 해외에 나가본 지인들은 그래서 친구 사귀기가 애매하더라고 얘기했다. 딸아이가 합류하게 된 뉴질랜드 6학년 교실을 둘러보며 나도 걱정이 됐다. 벌써 2차 성징이 시작된 길쭉한 친구들 사이에서 딸아이는 꼬마 같았다. 고맙게도 제일 키 큰 그룹의 친구들이 아이를 선선히 받아줬다. 특히 친구 A와는 체조학원에 함께 다니게 되면서 ‘BFF[Best Friends Forever]’ 팔찌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다만, 그 키 큰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도 시크하게 앉아서 바카라만 읽는 통에 아이는 함께 뛰어놀 친구를 다시 발굴해야 했다. 한동안 고독하게 몽키바에 매달려 타깃을 찾고 있던 아이의 눈에 한 친구가 포착됐다. 작년에 피지에서 전학을 온 옆 반 친구 K였다. 뭐든 하자는 대로 선선히 따라주는 K 덕분에 아이는 좋아하는 바깥놀이를 실컷 하게 됐다. 하교 종이 울리면 엄마에게로 달려오던 아이는 이제 ‘노룩패스’로 가방만 던져주고 K와 함께 놀이터로 달려간다.
두 달쯤 지나니 아이는 학교 밖에서도 친구와 놀고 싶어 했다. 이곳에서도 플레이데이트를 잡으려면 먼저 엄마들끼리 약속을 정하는 게 수순인 듯했다. 연락을 받는 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어쩌겠는가,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 고민 끝에 한국에서 가져온 기념품에 메모를 붙여 먼저 같은 반 친구 A에게 건넸다. 며칠 후, A의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런데 어째 좀 뜨뜻미지근했다. 언제 주말에 가능하냐고 물었는데 구체적인 날짜 언급 없이 알겠다고만 한다. 다시 한 번 물었지만 금요일까지 답이 없었다.
급히 친구 K에게 같은 내용의 쪽지를 들려줬다. 곧 답변이 왔다. ‘미안하지만 놀이 끝나고 K를 집에 데려다 줄 수 있느냐’는 요청에 내심 엄마들끼리 어색한 스몰토크는 안해도 되겠구나 싶어 좋았다. 약속 당일, 공원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노라니 내 행복도 최대치로 올라갔다. 그렇게 30분쯤 흘렀을 때 예상 못한 전개가 펼쳐졌다. 친구 A가 할머니와 함께 나타난 것이다. 반갑다고 소리치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조금 어정쩡하게 인사를 건넸다. A 엄마의 무응답이 무언의 긍정이었던 걸까, 잠시 헷갈렸다.
세 아이가 노는 모습도 신경이 쓰였다. 딸아이가 A와 신나게 짚라인을 타는 동안 조용한 K는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남한에서 왔냐, 북한에서 왔냐”고 묻는 A의 할머니에게 ‘북한이라고 대답할까’ 생각하는 순간에도 나는 K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달려오더니 날이 추워서 K와 우리집에 가서 놀겠단다. 급하게 A와 헤어진 후 집으로 향하는데 아이가 속삭인다. “사실 A가 있으면 K가 자꾸 기다리게 돼서….” 그렇게 돌아서서 친구에게로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어느새 한뼘쯤 더 자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