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의 노예

혹은 성실함이라는 무거운 훈장

by최미혜

매일 아침 9시 전, 그리고 저녁 6시 후. 나의 하루는 작은 빨간 레이저 불빛 위에 손가락 끝을 얹는 엄숙한 일의식(日儀式)으로 시작해 끝이 난다. 붉은빛이 피어오르고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는 기계음이 들려야 비로소 나의 존재는 오늘 하루 이 도서관에 무사히 출품되고, 또 무사히 퇴장 처리된다.


회사인의 삶은 지문으로 시작해 지문으로 끝나는 곳이다. 때론 사원카드가 대체되기도 하겠지만!

단 1초, 1분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는 칼 같은 세상. 혹여나 퇴근길의 몽롱함 속에 지문 찍는 것을 까먹기라도 하는 날엔, 그날의 온몸을 던진 노동은 기어이 ‘연차’라는 형벌로 돌아온다.


물론 세상 어디나 그렇듯, 이 가혹한 룰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기묘한 재주꾼들은 존재한다. 갖은 병가, 말도 안 되는 출장, 교육등 핑계의 기술을 총동원해 지문 인식기 근처에는 손가락 하나 얹지 않으면서도, 치사할 만큼 야무지게 일을 동료에게 얹어두고 뻔뻔하게 미소 짓는 이들.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 군상은 어느 일터에나 서식하는 법이다. 이들은 어쩌다 한 번씩인 일이 아니라 일주일 혹은 한 달 아니 1년을 넘게 습관처럼 장난스럽게 회사를 다닌다. 가끔은 그들의 뻔뻔함과 능청스러움에 속이 쓰릴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라 하면 도저히 못하겠다. 뻔히 보이는 속임수와 얍삽함을 절대 따라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이왕 하는 일이라면 출근하면서 퇴근하려는 마음보다는 공간에 녹아들어 내가 맡은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도서관의 진짜 주인들은 따로 있다. 9시 전 출근 지문과 6시 이후 퇴근 지문을 출퇴근 현황판에 빼곡히 적립하며, 묵묵히 서가를 지키는 나와 대부분의 성실한 동료들이다.


문득 10여 년 전, ‘지문 시스템’이 처음 들어왔던 라테 시절이 떠오른다. 온몸이 부서져라 바카라을 정리하고, 끊이지 않는 민원을 받아내고,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바카라두레 상자를 나르며 영혼까지 털린 저녁.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무심코 지문 인식기를 지나쳐 버렸던 수많은 퇴근길들. 뒤늦게 집 안방이나 버스 안에서 벼락 맞은 듯 깨닫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아차, 내 지문!" 하고 속을 태우던 그 아찔한 시절.

“찰나의 순간, 나는 왜 그토록 바보 같았을까?” 스스로를 자바카라해 보지만 지나간 타임머신은 없다.


더 무서운 건 그 후유증이다. 그 후로 가끔 악몽을 꾼다. 꿈속의 나는 지문도 찍지 않은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룰루랄라 도서관 문을 나선다. 꿈속의 제삼자인 또 다른 내가 뒤에서 목이 쉬라 소리친다.

“지문 찍어야지, 이 바보야! 퇴근하는데 지문을 왜 안 찍어?!”

아무리 목청껏 소리쳐도 꿈속의 나는 천천히, 유유히 도서관을 벗어난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순간, 나는 안도와 함께 헛웃음을 짓는다. 귀신 나오는 악몽보다, 지문 안 찍고 퇴근하는 꿈이 더 무서운 어른이 되어버렸다니.


생각해 보면 참 씁쓸하면서도 애틋한 풍경이다. 붉은 불빛에 손가락 하나 찍는 행위가 뭐라고, 우리는 이토록 마음을 졸이고 길들여졌을까.


사실은 꿈속에서조차 지문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그 소심함의 본질은, 실은 내가 오늘 하루 내게 맡겨진 서가와 바카라과 사람들에게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증명하는 거룩한 흔적이라는 것을. 얍삽하게 요리조리 빠져나가지 못해 지문 하나에 쩔쩔매는 이 바보 같은 성실함이야말로, 오늘 하루도 도서관을 단단하게 받쳐준 진짜 힘이었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오늘 저녁도 나는 어김없이 지문 인식기 앞에 선다. 삐- “안녕히 가십시오.”

오늘 하루도 참 고생 많았다, 지문의 노예이자 서가의 성실한 파수꾼인 나 자신.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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