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모으기

가을의 길가에 서서

by최미혜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가을’이라고 답하겠다.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지닌 사계절 중에서 유독 가을만은 여름과 겨울의 눈치를 보듯 그 사이에 조심스레 끼어 있다가 어느새 지나가 버린다.

꼭 손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인생'같은 계절이다.

계절의 경계마저 희미해 여름인지 가을인지 헷갈리는 사이, 어느 날 문득 하얀 눈송이가 하늘에서 내려오면 그제야 깨닫는다.

‘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구나.’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아무런 작별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린 가을의 행방을 찾곤 한다.


‘아, 이제 가을이구나.’ 하고 느낄 새도 없이 ‘벌써 겨울이 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계절. 내일이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짧고 아쉬운 계절이기에, 나는 그 소중한 가을의 향기와 바람을 모으는 일에 더욱 진심이 된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바라보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알맞은 온도의 바람을 느끼며 거리를 나선다.

옷장 속에 걸려 있다가 해마다 몇 번 입지도 못하고 계절을 보내는 바바리코트를 멋스럽게 툭 걸치고, 밤색 가죽 가방을 손에 든다. 모델 버금가는 런웨이를 하며 가을을 걷는다.

갈색과 붉은빛으로 곱게 물든 나무들을 지그시 바라보며, 혹여 놓칠세라 서둘러 가을을 모은다.

발끝에 스치는 낙엽 한 장,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한 줌,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한 자락까지.

그렇게 가을의 조각들을 하나둘 마음속에 담아 둔다.


가을밤의 정취는 또 어떠한가.

살랑이는 밤바람에 묻어오는 가을 특유의 냄새, 어쩐지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거리, 낮의 분주함이 가라앉은 골목의 고요함까지.

쓸쓸하면서도 따뜻하고, 외로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가을밤의 오묘한 매력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렇듯 빠르게 지나가는 계절 속에서 나는 오늘도 가을 모으기에 한창이다.

이제 내일이면, 아니 모레면 어쩌면 지금 당장 겨울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차가운 바람을 피해 목도리를 꽁꽁 두르고 두꺼운 외투에 몸을 숨긴 채, 생각하겠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봄과 여름을 지나면, 가을은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그때 또 한 번, 가을이 건네는 모든 순간을 마음껏 모아 둘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가득 모은 가을들을 가지고 더 많은 가을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짧아서 더 애틋하고, 오래 머물지 않아 더욱 그리운 계절.

오늘도 나는 가을의 길가에 서서, 사라지기 전에 이 계절을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담아 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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