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반짝이던 자리, 내 꿈의 도서관

byPearl K


진아가 꿈꾸던 도서관으로의 첫 출근일. 전날 밤은 설레는 마음에 잠이 잘 안 오고 계속 선잠을 잤다. 내가 출근하게 된 학교도서관은 인문계 고등학교 전 학년 45 학급에 전교생 수는 무려 1,750명이나 되는 커다란 규모의 학교였다. 이 학교에는 기존에 도서관이 없었고, 신관 건물을 지으면서 2, 3층은 특별선발된 우수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독서실로, 1층은 도서관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학생 수가 많고 건물의 한 층을 다 쓰다 보니 도서관 안에 별도의 교실도 3칸이나 있고 남녀화장실까지 포함되어 있는 등 총면적이 교실 6칸 크기의 커다란 도서관이었다. 그러나 도서관 크기에 비해 도서관 장서(바카라) 수는 매우 빈약했다. 기억에 남는 건 전체 도서 수는 고작 5,800권이었고 그마저도 70년대의 세로 쓰기 바카라들이 가득했다.


도서관이 개관했다는 사실조차 학생들이 잘 몰랐기 때문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날도 많았는데, 첫 주에는 일주일 내내 기다려도 찾아오는 학생은 1~2명에 불과했다. 그 해의 도서 구입 예산은 1,800만 원이었고, 나는 최대한 학생들의 요청에 맞는 바카라을 구입하기 위해 온갖 자료를 찾고, 시간 날 때마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 방문하여 직접 바카라을 고르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다양한 행사들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조금씩 아이들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바카라도 새롭게 많이 구입해 주고 행사 기획도 하고 열심히 운영하다 보니 입소문이 나면서 그로부터 6개월 후, 하루 평균 3~400명의 학생이 도서관에 매일 찾아오기 시작했다. 많은 아이들이 오는 만큼 즐거운 일도 많았고, 여러 가지 원치 않는 학생들끼리의 충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무엇보다 보람되었던 건, 아이들에게 좋은 바카라을 소개하고 그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일이었다. 함께 웃고 울며 나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학교에 있으면서 교사자격증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두 번째 해부터는 교육대학원 입시를 준비했었다. 처음에 지원한 대학원에서는 면접 때마다 여러 어려움을 겪었기에, 세 번째 지원할 때는 지원하는 대학원을 옮겨 사서 교육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대학원을 가도 되냐는 질문에 되기만 하면 1시간 일찍 보내주겠다고 약속하며 한 번 해보라고 하더니, 막상 합격하여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자 태도를 싹 바꿨다.


덕분에 나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무한 후에, 퇴근하자마자 지하철역까지 10분을 뛰어가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1시간 반을 이동했다. 한 학기 내내 매일 지각하면서 대학원을 다녀야만 했지만 학교도서관에서 일하려면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했기에 교육대학원을 다니는 것은 오히려 설레고 즐거웠다.


그렇게 첫 고등학교에서 최선을 다해 도서관을 운영하였는데, 학교의 사정으로 인한 도서관 축소로 3년간 운영해 주당 이용자가 1,500명에 이르던 도서관을 떠나야 했다. 도서부 아이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나오는데 눈물이 났다. 도서부 아이들과 배지도 만들고, 같이 축제 때 도서 나눔 행사와 북카페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자주 오는 코스프레 하는 학생들, 만화부 아이들, 소풍까지 같이 갔던 1학년 친구들을 졸업시키고 나서 떠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행히 근처 다른 고등학교에 기존 사서 선생님이 관두시는 자리에 지원하여 치열한 경쟁률 11대 1을 뚫고 면접에 합격해 두 번째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학교도서관 사서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학교에서는 근무하면서 동시에 교생 실습까지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사서교사로서 담임 기회는 흔치 않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일한 우리 반이라는 생각에 더욱 정성을 다했다.


매일 야자 시간까지 남아 1학년 7반 학생들 한 명 한 명 진로상담을 해 주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한 달간의 교생실습 기간 동안 매일 조례와 종례를 맡아 진행했다. 교생실습이 끝난 후에도 체험학습도 함께 가고, 체육대회에서도 같이 응원하는 등 교생 담임반 아이들과 수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남겼다.


두 번째 학교를 떠나는 날, 등교하는 날이 아니었는데도 반장이 비바람을 뚫고 케이크를 가져다주었다. 태풍 속에서 들고 오다가 떨어뜨려서 온통 찌그러진 케이크였지만, 내가 먹어본 어떤 케이크보다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반장은 지금 두 아이의 엄마이고, 뱃속에 한 아이가 더 태어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에도 열 군데의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며 참 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외롭고 소외된 아이들과 갈 곳 없는 아이들, 여러 가지 고민과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쉼터와 피난처가 되어주는 학교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많이 애써왔다.


지난 시간 동안 학교도서관에서 만났던 학생들과 언제나 든든한 도움이 되어주었던 동료 선생님들 덕분에 나는 포기하지 않고 내가 꿈꾸던 자리, 학교도서관에서 일하며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을 자라나고 성장하게 하며 결국 자신의 반짝임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조금이나마 해왔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처음 시작했던 그 순간이 기억나시는지 궁금하다. 바로 진아의 아빠, 경수의 입사 20주년 기념식이었다. 이제 그때의 아빠만큼 나이가 든 진아는 그렇게 꿈꾸고 바랬던 대로 도서관다운 도서관에서 일해올 수 있었다.


학교도서관 근무 23년 차를 앞둔 지금, 진아는 아이들에게 독서 습관과 문해력을 가르치며 바카라을 평생의 친구로 삼도록 돕는 사서교사로 서 있다. 일반 회사와는 달리 20년이 넘었어도 따로 기념식 같은 것은 없지만, 매년 만나는 아이들이 자신답게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진아에게는 어떤 트로피나 기념패와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이 되어주고 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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