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났더니, 회사 주식이 30배로 불어났다

코인이 아니라 금융 인프라로 보는 블록체인

by박밤

2018년 4월 6일 아침, 삼성증권 직원들은 출근해서 계좌를 열어 보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하룻밤 사이 수천, 수만 주의 자사 주식이 들어와 있었거든요. 라이브 「카피바라가 토큰을 깨문 이유」, 오늘도 바로 시작합니다!


2018년 4월 6일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회사 주식이 30배로 불어나있었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회사 주식이 30배로 불어났다


웹소설 제목이냐고요? 아닙니다. 실화입니다. 삼성증권 직원 2,018명에게 우리사주 배당금을 주당 1,000원씩 넣어 줘야 했는데, 담당 직원이 이를 주당 1,000주로 잘못 입력한 겁니다. 그 결과 실제로는 발행되지도 않은 삼성증권 주식 28억 1,295만 주가 직원들 계좌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시가로 약 112조원 어치였죠.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숫자였는지 볼까요? 당시 삼성증권이 발행한 주식은 전부 합쳐 8,930만 주, 발행할 수 있는 한도도 1억 2,000만 주였습니다. 회사 전체 주식의 30배가 넘는 주식이 하룻밤 사이에 장부 위에 생겨난 겁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이 이어졌습니다. 직원 16명이 오전 9시 35분부터 10시 5분 사이에 잘못 들어온 주식 중 501만 주를 실제 주식시장에 팔았고, 삼성증권 주가는 한때 전날보다 약 12% 급락했습니다. 이 사건의 법적 공방은 무려 8년이 지난 올해 8월에야 대법원 판결로 마무리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핵심은 장부입니다. 내 주식 1주는 증권사의 장부, 예탁결제원의 장부, 발행회사의 주주명부에 나뉘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부들은 실시간으로 하나가 아니라, 각자 따로 기록하고 나중에 서로 맞춰 보는 구조입니다.

여기 쉽게 타임라인을 그려봤습니다.

블록체인 장부를 쓰지 않는 요즘 흔한 카피바라


① 증권사는 고객 주식을 자기 장부에 따로 적습니다.
내 계좌에 주식이 몇 주 있는지는 1차로 증권사의 장부가 관리해요. 예탁결제원은 "이 증권사 고객들이 전체로 몇 주를 갖고 있는지"를 따로 관리하고요.


② 그날 증권사 장부에 숫자가 먼저 들어갔습니다.
금감원은 이 사고를 전체 배당시스템이 아닌 삼성증권 내부의 우리사주 배당시스템 문제로 결론 냈습니다. 증권사 안의 시스템이 "배당금 1,000원"을 “1,000주”로 처리했고, 그 시스템에는 이 숫자가 회사가 실제로 발행한 주식 수를 넘는지 확인하는 장치가 없었던 거예요.


③ 주문은 증권사 장부만 보고 받아 줬습니다.
직원이 매도 주문을 내면, 증권사 시스템은 "이 계좌에 주식이 있나?"를 자기 장부로만 확인해요. 장부엔 주식이 있었으니 주문이 나갔고, 거래소에서 실제로 체결됐습니다.


④ 진짜 확인은 이틀 뒤 결제 때 이뤄질 예정이었어요.
체결된 주식은 결제일에 예탁결제원을 통해 실제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때 가면 "존재하지 않는 주식"이라 넘길 수가 없죠. 그래서 삼성증권은 직원들이 판 주식의 결제를 위해 회사가 직접 주식을 사들이고 240만 주를 빌려야 했습니다.


즉 장부들은 나중에 서로 맞춰 보게 되어 있었고, 실제로 결제 단계에서 문제가 드러났어요. 하지만 입력부터 매도 체결까지 걸린 30분 동안은 증권사 장부 하나만 보고 모든 게 진행됐습니다. 확인이 나중에 오는 구조의 위험이라고 할 수 있죠.



블록체인은 "함께 쓰는 하나의 장부"입니다

이제 블록체인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엑셀에 쉽게 비유해볼게요.

회사에서 이런 경험 있으시죠? 각자 엑셀 파일을 갖고 있다가 이메일로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최종", "최종_수정", "진짜최종_v3" 파일이 쌓입니다. 누구 파일이 진짜 최최최최종인지 확인하기 위해 회의할 때도 있습니다. 이게 지금의 금융입니다. 기관마다 자기 장부를 갖고, 매일 서로 맞춥니다.

블록체인은 모두가 같은 파일 하나를 함께 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럼 노션이나 피그마를 연상하는 카피바라도 있을텐데요, 그 파일들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세 가지 있습니다.


블록체인 장부를 쓰는 TO-BE 카피바라


① 아무도 혼자 몰래 고칠 수 없습니다.
노션이나 피그마는 관리자가 마음대로 고칠 수 있고 버전 기록도 지울 수 있습니다. 반면 블록체인은 새로운 기록이 들어올 때 참여자들이 함께 확인하고, 한 번 적힌 기록은 그 누구도 지우거나 덮어쓸 수 없습니다. 틀렸다면 지우는 게 아니라, 바로잡는 기록을 새로 추가합니다. 그래서 모든 변경의 역사가 남습니다.


② 없는 것을 보낼 수 없습니다.
블록체인에서는 내 장부에 있는 만큼만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토큰이 새로 만들어지는 순간도, 정해진 규칙에 따라 모두가 보는 장부 위에 기록됩니다. 전체 발행량이 얼마인지 누구나 확인할 수 있죠. 삼성증권 사건처럼 한쪽 장부에서만 주식이 갑자기 생겨나고, 다른 장부는 그걸 모르는 일이 구조적으로 어려워집니다.


③ 맞춰 볼 장부 자체가 줄어듭니다.
모두가 같은 장부를 보니, "네 장부랑 내 장부가 맞나?"를 확인할 일이 줄어듭니다. 기관들이 매일 장부를 맞추느라 쓰던 시간과 비용이 줄어드는 거죠.


블록체인은 돈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장부를 함께 쓰는 방법입니다.



블록체인이 해 주지 않는 것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블록체인이 모든 걸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7화,「아이템을 샀는데, 게임이 사라졌다」에서 우리는 이미 배웠습니다.


장부 밖의 진실은 모릅니다. 장부에 "금 1kg"이라고 적혀 있어도, 금고에 진짜 금이 있는지는 블록체인이 확인하지 못합니다.

권한 있는 사람의 실수까지 막지는 못합니다. 토큰을 만들 권한을 가진 쪽이 잘못된 숫자를 넣으면, 그 기록도 정확하게 남습니다. 다만 모두가 보는 장부라서 훨씬 빨리 드러날 뿐이죠.

공짜가 아닙니다. 여러 참여자가 함께 확인하는 만큼, 혼자 쓰는 장부보다 느리거나 비쌀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융은 무엇을 블록체인에 올리고 무엇을 남길지 신중하게 고릅니다.


블록체인은 장부를 하나로 만들어 줍니다.
그 장부에 무엇을 적을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오늘 라이브는 여기까지! 혹시 스마트계약에 대해 아는 카피바라 있을까요? 여기저기서 손을 들어주네요! 스마트계약 이야기, 다음 라이브에서 깨물어 보겠습니다.





< 읽고싶은 카피바라만 읽는 추가 상식 >

블록체인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공개형 블록체인: 비트코인처럼 누구나 참여해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 참여하는지 몰라도 작동하도록 설계됐죠.

허가형 블록체인: 미리 허가받은 참여자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은행, 증권사, 예탁결제원처럼 누가 장부를 함께 쓰는지 정해져 있습니다.


금융은 주로 허가형을 먼저 씁니다. 금융 거래에는 누가 거래하는지 알아야 하고, 고객 정보는 아무에게나 보여 줄 수 없고, 문제가 생기면 바카라임질 주체가 있어야 하니까요. 최근에는 공개형 블록체인을 쓰되, 그 위의 토큰에 허가 장치를 거는 방식도 늘고 있습니다. 장부는 누구나 볼 수 있지만, 토큰을 갖고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신원 확인을 마친 사람뿐인 거죠. 어느 쪽이든 금융의 블록체인은 누가 참여하는지 아는 장부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런 장부가 법적으로도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분산원장의 개념을 정의하고, 분산원장을 증권의 계좌부로 쓸 수 있도록 명시했습니다. 이 법은 2027년 2월 4일부터 시행됩니다. 그 장부에는 특별한 참여자가 하나 더 앉게 됩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9월 발표한 정바카라 방향에 따르면, 한국예탁결제원이 모든 토큰증권 분산원장에 '총량관리노드'로 직접 참여해 발행과 유통의 총량을 관리합니다. 2018년 그날 아침처럼 한쪽 장부에서만 주식이 갑자기 30배로 불어나는 일이 없도록, 전체 수량을 지키는 문지기가 장부 안에 함께 앉는 거죠.



참고 자료

스마트투데이, 「'유령주식 사고' 삼성증권, 국민연금에 18억원 배상 확정」(2026.8.12) https://www.smarttoday.co.kr/ko-kr/articles/110383

서울신문, 「배당입력 오류 하루동안 발견 안돼…위기대응도 37분 걸려」(2018.4.9) https://m.seoul.co.kr/news/2018/04/09/20180409800011

토요경제, 「금융당국, 증권회사 '유령주식' 점검 나선다」(2018.4.8) https://www.sateconomy.co.kr/news/view/179587940893492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토큰증권 도입 및 투자계약증권 유통을 위한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https://fsc.go.kr/po010106/86064

경북매일, 「주식·채권·펀드까지 '토큰'으로…2027년 2월 디지털 자본시장 열린다」(2026.9.6): https://kbmaeil.com/article/20260906500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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