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은행은 정말 사라질까?

토큰화 시대, 사라지는 것은 기관일까 역할일까

by박밤

라이브 「카피바라가 토큰을 깨문 이유」, 오늘도 바로 시작합니다!


"블록체인 상에서 스마트계약 코드를 잘 짜면,
사실상 이제 은행도 코드로 대체되겠네요?"


image.png은행이 폐업하고, 은행원 카피바라가 울고 있어요


채팅창에 "은행원 카피바라는 울고 있다"가 올라오네요. 오늘은 이 질문을 제대로 깨물어 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 17년 전에 이미 누군가 던진 적이 있습니다.



은행이 필요없는 돈의 탄생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인물이 공개한 비트코인 백서의 첫 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A purely peer-to-peer version of electronic cash…without going through a financial institution."
순수한 개인 간(P2P) 방식의 전자화폐가 있다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돈을 직접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비트코인 백서의 첫 문장은 이 기술의 꿈을 분명히 말합니다.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직접,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돈을 보내겠다는 것. 은행을 믿지 않아도 되는 돈을 만들겠다는 선언이었죠.


그리고 두 달 뒤,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의 첫 번째 블록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블록 안에는 그 날 아침의 영국 신문 더 타임스 1면 제목이 새겨져 있었죠.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재무장관, 은행 2차 구제금융 초읽기 (더 타임스, 2009년 1월 3일)


정부가 은행들을 위해 두 번째 구제금융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였죠. 금융위기로 은행들이 무너지고, 그 은행들을 세금으로 살리던 때였습니다. 비트코인이 태어난 날, 은행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왜 사토시가 이 날의 신문 제목을 비트코인 첫번 째 블록에 넣었을까요? 그날 신문이 나오기 전에는 이 블록이 존재할 수 없으니, 누구도 사토시가 세상에 공개하기 전에 몰래 블록을 만들어 비트코인을 미리 쌓아 두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었을 겁니다. 모두가 같은 날,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다는 거죠. 이게 또 하나의 재미있는 아이러니라 생각되지 않나요? 믿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만들면서, 그 시작을 증명하는 데는 신문이라는 믿을 만한 기관을 빌려 왔다는 거예요. 은행을 믿지 않겠다는 돈도, 출발점만큼은 세상이 믿는 무언가에 기대야 했던 거죠. 역설적이지만, 은행을 믿지 않아도 되는 돈의 출발점을 증명해 준 건 신문이라는 또 다른 믿을 만한 기관이었고, 첫 블록에 새긴 신문 제목은 이 기술의 출생 신고서였습니다.

image.png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이 태어난 날, 금융위기에 봉착한 은행



17년 뒤, 은행은 어디에 있을까?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모두다 아시다시피... 은행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트코인은 그 어느 때보다 전통 금융기관의 손에 들어가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토큰화에 가장 진지하게 돈과 시간을 쓰는 곳도 은행과 증권사, 자산운용사입니다. 은행을 필요 없게 만들려고 태어난 기술이, 17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은행들이 가장 앞장서는 기술이 됐다니. 참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릅니다. 은행을 필요 없게 만들려던 기술을, 은행이 가장 앞장서서 쓰고 있다니요?

답을 찾으려면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은행이 사라질까?"가 아니라, "은행이 하던 일 중 무엇이 사라질까?" 입니다.



은행이 하는 여섯 가지 일

우리가 "은행"이라고 부르는 건 사실 여러 가지 일의 묶음입니다.


① 장부 적기 → 줄어듭니다 X
누구에게 얼마가 있는지 적는 일. 모두가 함께 쓰는 장부가 생기면, 기관마다 따로 장부를 적을 필요가 줄어듭니다.

② 장부 맞추기 → 줄어듭니다 X
은행끼리 서로 장부가 맞는지 확인하고 차액을 정산하는 일. 장부가 하나로 줄면, 맞출 일도 줄어듭니다.

③ 맡아 주기 → 모습이 바뀝니다 △
지금 은행은 내 돈을 맡아 줍니다. 토큰의 세상에서는 돈 대신 열쇠를 맡아야 합니다. 토큰을 움직이려면 나만 가진 비밀번호 같은 열쇠가 필요한데, 이걸 잃어버리면 토큰도 영영 잃어버립니다. "비밀번호 찾기" 버튼이 없거든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여전히 누군가 열쇠를 안전하게 맡아 주길 원할 겁니다.

④ 약속 보증하기 → 남습니다 O
토큰 뒤에 진짜 자산이 있는지, 발행한 회사가 망해도 내 몫이 지켜지는지. 블록체인은 이걸 보증해 주지 못합니다. 장부 밖의 약속을 지키고, 문제가 생기면 바카라임질 누군가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⑤ 실수 되돌리기 → 남습니다 O
송금할 때 계좌번호를 잘못 눌러 본 적 있으신가요? 지금은 은행에 연락해 돌려받을 방법이라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위의 기록은 한 번 실행되면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실수와 분쟁을 다뤄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⑥ 문 지키기 → 오히려 커집니다 ◎
이 거래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이 돈이 범죄와 관련된 건 아닌지 확인하는 일. 신원 확인과 자금세탁방지 같은 일입니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장부일수록, 누가 들어와도 되는지 판단하는 문지기는 더 중요해집니다.저 역시도 보험사 앱의 자금세탁방지(AML) 인증 과정과 같은 프로세스를 설계하며, 고객 입장에서는 번거롭지만 금융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문 지키기"를 고민했던 날들이 부지기수입니다.


image.png은행원 카피바라가 "장부 기록", "정산" 모자는 내려놓고, "열쇠 보관", "문지기" 모자를 새로 쓰고 있네요!



은행은 사라지지 않고 하는 일이 달라진다

토큰화를 하면 은행은 장부를 적고 맞추는 일은 줄어듭니다. 하지만 맡아 주고, 보증하고, 되돌리고, 문을 지키는 일은 남거나 오히려 커집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토큰증권 제도도 이 방향을 따릅니다.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법은 분산원장을 증권의 장부로 쓸 수 있게 하면서도, 투자계약증권의 유통은 증권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장부는 새로워지지만, 문 앞에는 여전히 금융기관이 서 있는 거죠. 그러니 은행이 사라지는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은행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은행이 하던 일 중 일부가 사라지고,
남은 일의 무게가 달라질 뿐입니다.
장부를 적던 은행은, 문을 지키는 은행이 됩니다.



그런데, 문지기는 언제 "안 됩니다"라고 말할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짚고 가겠습니다. 문지기의 일이 커진다고 했죠. 그런데 문지기는 정확히 언제 "안됩니다"라고 말할까요? 지금의 금융에서 문지기는 대부분 문을 통과한 뒤에 확인합니다. 거래가 일어나고, 기록이 쌓이고, 이상한 점이 보이면 그때 멈춥니다. 그런데 돈과 자산이 한순간에 맞바꿔지고, 한 번 실행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세상이라면 어떨까요? 문지기는 문 앞에서 판단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제 생각은 다음 라이브에서 본격적으로 꺼내 보겠습니다.

오늘 라이브는 여기까지! 은행원 카피바라는 울지 말고 새 모자를 써 보시길 바라며, 다음 라이브에서 깨물어 보겠습니다. 제가 왜 여러분에게 행운의 편지를 썼는지, 이제 슬슬 비밀이 드러날 때가 왔네요...




참고 자료

PYMNTS, 「A Bitcoin Declaration of Financial Independence」(2022) https://www.pymnts.com/blockchain/bitcoin/2022/a-bitcoin-declaration-of-financial-independence/

Unchained, 「The Bitcoin Genesis Block Was Mined 15 Years Ago」 https://unchainedcrypto.com/the-bitcoin-genesis-block-was-mined-15-years-ago-what-is-it-and-why-is-it-significant/

BTC-ECHO, 「Bitcoin wird 12 Jahre alt」https://www.btc-echo.de/news/bitcoin-btc-wird-12-jahre-alt-und-feiert-mit-kursfeuerwerk-107757/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https://fsc.go.kr/po010106/86064

비트코인 백서 원문 https://bitcoin.org/bitcoi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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