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xteen summer

Chapter 1. 소년에 관하여

by파키야옹

고등학교 첫날, 정국이는 또 내 위에 있었다.

정확히는 게시판에서였다.

입학식 날 반 배정표 앞은 학생들로 빼곡했다. 누군가는 친구 이름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는 앞을 막고 선 녀석의 등을 밀었다.

“야, 좀 비켜봐.”

아이들 어깨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준경.

내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 바로 위에 익숙한 이름이 있었다.

이정국.

“와우. 같은 반이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정국이가 서 있었다. 자기 이름은 이미 확인했는지 게시판에는 별 관심도 없는 얼굴이었다.

“어? 그러네.”

“잘 지내보자.”

“그래.”

정국이는 내 어깨를 툭 치더니 지나가던 녀석에게 손을 들었다.

“야, 너도 여기냐?”

둘은 금세 웃으며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게시판을 한 번 더 봤다.

이정국.

이준경.


●

교실에서도 비슷했다.

정국이는 굳이 누구를 불러 모으지 않았는데도 주변에 사람이 생겼다.

“매점 갈 사람?”

두세 명이 일어났다.

“축구할 사람?”

이번에는 더 많이 일어났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자 정국이는 운동장 한가운데 공 하나를 내려놓고 축구팀부터 만들었다.

“성빈이 오른쪽.”

“준호는 뒤에.”

“너는 가운데.”

아이들이 별말 없이 움직였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운동화 끝으로 흙을 긁었다. 흰 앞코가 금세 누렇게 변했다.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도 정국이가 축구팀을 만들었다. 나는 당연히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축구를 못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어느 날 신발끈을 묶다가 정국이와 다른 녀석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준경이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정국이가 말했다.

“글쎄. 너무 혼자 해.”

“혼자?”

“골만 넣으려고 하잖아. 일단 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신발끈은 이미 묶여 있었다.

한 번 풀었다.

다시 묶었다.

둘은 어느새 다른 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왜 나를 뺐냐고 묻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 다시 운동장에 서 있었다.

정국이가 아이들 자리를 정하다 나를 봤다.


“너.”

고개를 들었다.

“왜?”

정국이가 골대 쪽으로 턱짓했다

“너 공격.”

“나?”

“어. 앞에 있어.”

잠깐 녀석을 봤다.

“오케이.”

아무렇지 않은 척 앞으로 걸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입꼬리가 올라왔다.

괜히 운동화로 공을 한 번 굴렸다.


그래.

이제 좀 알아보는구먼.






●

그해 여름 우리는 많이 뛰었다.

점심시간이면 밥을 대충 밀어 넣고 운동장으로 나갔고, 수업이 끝나면 가방보다 축구공을 먼저 챙겼다.

한낮의 운동장은 눈이 부셨다. 햇볕에 바짝 마른 흙은 공이 튈 때마다 뿌옇게 일어났고, 몇 번 뛰고 나면 운동화 안으로 모래가 들어왔다. 교복 셔츠는 등에 축축하게 붙었다.

누군가는 수돗가 수도꼭지에 머리를 들이밀었고, 누군가는 교복 상의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한 판 더?”

“콜.”

그 한마디면 다시 나갔다.

우리 반은 제법 잘했다.

특히 정국이가 공을 잡으면 아이들이 움직였다.

“뒤!”

공이 뒤로 갔다.

“왼쪽!”

반대편으로 빠졌다.

“야, 뛰어!”

누군가 앞으로 달리면 공도 그쪽으로 갔다.

나는 앞에서 뛰었다. 처음에는 공을 달라고 소리를 많이 질렀다.

“여기!”

“야!”

“정국아!”

어떤 날은 정국이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야, 못 들었냐?”

“들었어.”

“근데 왜 안 줘?”

“네 앞에 둘 있잖아.”

“뚫으면 되지.”

정국이가 나를 봤다.

“그러니까 네가 혼자 한다는 거야.”

손에 들고 있던 공을 바라봤다.

“뭐?”

“아무것도 아니다.”

정국이는 공을 운동장에 던졌다.

탕.

“시작해.”


●

여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상대는 3학년이었다.

운동장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것부터 우리와 달랐다. 어깨도 넓었고 다리도 굵었다.

한 선배가 우리를 훑어보더니 웃었다.

“야, 1학년. 살살해. 다친다.”

누군가 우리 쪽에서 피식 웃었다.

나는 정국이를 봤다.

정국이는 아무 말 없이 발밑의 공을 운동장 가운데로 굴렸다.

“하면 되지.”

경기가 시작됐다.

예상대로 거칠었다. 어깨가 부딪힐 때마다 몸이 밀렸고, 공을 잡으면 바로 발이 들어왔다.

한 번은 수비수와 부딪혀 그대로 넘어졌다. 손바닥이 흙바닥을 쓸었다.

“야, 괜찮아?”

“어.”

일어나 무릎의 흙을 털었다. 살갗 한쪽이 벌겋게 벗겨져 있었다.

정국이가 나를 봤다.

“계속 뛰어.”

“알아.”

괜히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앞으로 갔다.

얼마 뒤 공이 정국이에게 갔다.

나는 오른쪽에 있었다. 수비수 한 명이 앞을 막고 있었다.

입이 먼저 열릴 뻔했다.

여기.

말하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수비수가 따라왔다.

멈췄다.

녀석도 멈췄다.

정국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었다.

나는 수비수 뒤로 뛰었다.

공이 왔다.

두 사람 사이를 그대로 갈랐다.

한 번.

두 번.

공이 내 앞에서 튀었다.

골키퍼가 뛰어나왔다.

오른발을 갖다 댔다.

툭.

공이 골키퍼 옆을 지나갔다.

골망이 흔들렸다.

순간 운동장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뒤에서 소리가 터졌다.

“야아아!”

성빈이가 달려와 내 등을 후려쳤다.

“미친 새끼!”


누군가 뒤에서 내 목을 끌어안았다. 땀 냄새가 확 올라왔다.

웃으면서도 사람들 어깨 너머를 봤다.

정국이가 멀리 서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정국이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게 전부였다.



●

우리는 그날 3학년 우승팀을 이겼다.

교실로 바로 올라간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야, 매점!”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방향을 틀었다.

매점 앞은 우리처럼 땀에 절은 아이들로 가득했다. 냉장고 문이 열릴 때마다 찬 공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가장 차가워 보이는 음료수 하나를 집었다. 병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손바닥을 타고 흘렀다.

뚜껑을 열어 단숨에 몇 모금 마셨다.

“아, 살겠다.”

그때 매점 안쪽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귀에 익었다.

나도 모르게 병을 든 손으로 박자를 탔다.

정국이가 봤다.

“뭐 하냐?”



“노래 좋잖아.”

“이거 알아?”

“어.”

성빈이가 잠깐 귀를 기울였다.

“난 모르겠는데.”

“너 음악 좀 들어라.”

“축구나 잘해.”

“아까 골 못 봤냐?”

“패스가 다 했지.”

옆에서 정국이가 말했다.

“그건 맞아.”

“지랄하네.”

아이들이 웃었다.

무한궤도의 〈여름이야기〉였다.

누군가는 얼음과자를 베어 물었고, 누군가는 차가운 병을 이마에 댔다. 어떤 녀석은 냉장고 문을 괜히 오래 열었다가 매점 아주머니에게 혼났다.

“문 닫아! 전기세 네가 낼 거야?”

“죄송합니다.”

정국이가 빈 병을 흔들었다.

“가자.”


●

교실은 매점보다 더 더웠다.

창문을 전부 열어놨는데도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벽 위의 커다란 선풍기 하나만 느릿느릿 목을 좌우로 돌렸다.

위이이잉.

정국이가 교복 상의를 벗어 바카라상 위에 던졌다. 흰 러닝셔츠 차림으로 선풍기 앞에 섰다.

나도 상의를 벗고 옆으로 갔다.

정국이가 쳐다봤다.

“따라 하냐?”

“뭘 따라 해.”

“내가 벗으니까 바로 벗잖아.”

“선풍기 바람이 이리로 오는데 어떡하냐.”

둘이 웃었다.

선풍기가 우리 쪽으로 돌아왔다. 뜨거워진 얼굴 위로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아아, 살겠다.”

둘이 동시에 얼굴을 내밀었다.

몇 초 뒤 선풍기는 아무 미련 없이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야, 이거 이쪽으로 고정 안 되냐?”

“고장 났어.”

“아 씨.”

잠시 기다렸다.

위이이잉.

멀리 갔던 바람이 천천히 돌아왔다.

정국이가 말했다.

“야.”

“왜?”

“아까 골은 좀 괜찮더라.”

눈을 떴다.

정국이는 나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선풍기 쪽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좀?”

“어. 좀.”

“패스나 똑바로 해.”

정국이가 눈을 떴다.

“미친놈.”

나도 웃었다.

선풍기가 다시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내가 정국이를 봤다.

“야.”

“왜?”

“누가 그러더라.”

“뭐?”

“너 우리 학교 짱이라고.”

정국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럼 아니냐?”

“증거가 없잖아.”

“뭔 증거?”

“네가 누구랑 싸우는 걸 본 적이 없거든.”

정국이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한마디 더 했다.

“무엇보다 나하고 붙어본 적도 없잖아?”

정국이가 몇 초 동안 나를 봤다.

그러다 빵 터졌다.

“미친 새끼.”

나도 웃었다.

위이이잉.

선풍기가 다시 우리 쪽으로 돌아왔다.

둘 다 입을 다물었다.

바람을 맞았다.


●

다음 날 점심시간이었다.

누군가 교실 문 앞에서 축구공을 튀겼다.

탕.

“나갈 사람?”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났다.

정국이가 먼저 나갔다.

나도 따라나갔다.

운동장은 어제와 다를 게 없었다. 햇볕은 뜨거웠고 흙은 말라 있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정국이가 공을 잡았다.

나는 앞에 있었다.

수비수 하나가 붙었다.

손을 들려다가 내렸다.

그냥 뛰었다.

정국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잠시 뒤,

공이 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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