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소년에 관하여
(1) 빈자리
내 체육복이 먼저 사라졌다.
체육 시간 십 분 전이었다. 분명 아침에 의자 밑에 넣어뒀는데 보이지 않았다. 사물함을 열었다 닫고, 바카라상 밑을 들여다보고, 교실 뒤에 쌓인 가방까지 뒤졌지만 없었다.
“야, 내 체육복 본 사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옆 반에서 하나를 빌렸다. 바지는 조금 짧았고, 허리 안쪽에는 ‘김상철’이라는 이름이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나는 김상철이 된 채 운동장을 두 바퀴 돌았다.
성훈이는 그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성훈이는 가끔 늦잠을 잤고, 한 번씩 학교를 빼먹기도 했다. 하루쯤 자리가 비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다음 날 내 체육복은 3반 사물함에서 나왔다. 누군가 자기 것인 줄 알고 가져갔다가 이름을 보고 다시 갖다 놓은 모양이었다.
성훈이 자리는 그대로 비어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담임이 우리 몇 명을 불렀다.
“성훈이한테 연락 온 사람 있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 집에도 안 들어왔다니까 연락 오면 바로 선생님한테 말해.”
교실로 돌아와 성훈이 자리를 봤다. 가방은 없었고, 바카라상 서랍 안에는 낡은 문제집 한 권만 남아 있었다.
그날 오후 삐삐를 확인하다 숫자 하나를 발견했다.
1740/6
처음 보는 숫자였다.
성훈이가 사라지기 전날 우리는 삐삐를 몇 번 주고받았다. 그 뒤에 남은 숫자라 당연히 성훈이가 보낸 거라고 생각했다.
공바카라 맨 뒤에 옮겨 적었다.
1740/6
전화번호치고는 짧았다. 날짜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한참 들여다보다 가운데를 띄워봤다.
1740 6.
그래도 모르겠다.
계산기를 두드려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성훈이가 수학 문제를 내고 사라졌을 리는 없었다.
바카라상 한쪽에는 빈 카세트 케이스가 있었다.
N.EX.T.
테이프는 성훈이가 가져갔다.
며칠 전 운동장 스탠드에서 우리는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끼고 그 테이프를 들었다. 오래 들어서인지 어느 부분만 나오면 테이프가 축 늘어졌다. 멀쩡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느려지고 낮아졌다.
성훈이가 피식 웃었다.
‘즐망의 꺼업즐을 깨고 워어어(절망의 껍질을 깨고)’
노래가 흘러 나왔다.
“즐망 나왔다.”
“이거 진짜 버려야겠다.”
“안 돼.”
“왜?”
“돈이읍다.”
성훈이가 REW를 눌렀다.
위이잉.
조금 뒤 같은 부분이 또 늘어졌다.
둘이 다시 웃었다.
집에 갈 때 성훈이가 테이프를 빌려달라고 했다.
“하루만 듣고 줄게.”
“더 늘어지는게 없도록 하자 .”
“그랴.”
그게 마지막이었다.
테이프 케이스를 열었다. 속지에는 노래 제목 옆에 동그라미도 있었고, 알아볼 수 없는 낙서도 있었다.
구석에 성훈이 글씨가 하나 보였다.
껍데기가 모래가 되는 건가?
언제 쓴 건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공바카라을 펼쳤다.
1740/6.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숫자였다.
(2) 가까운 바다
성훈이는 얼마 전 바다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바다 보고 싶다.”
“갑자기?”
“그냥.”
그게 전부였다.
또 한 번은 물이 빠지면 바다 한가운데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생각났다.
도서관에서 여행바카라을 뒤졌다. 충청도 해수욕장 몇 곳을 넘기다가 사진 한 장에서 손이 멈췄다.
무창포.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고, 그 사이를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사진을 한참 바라봤다.
여기였다.
무슨 근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확신했다.
다음 날 학교가 끝나자 서부터미널로 갔다. 집에는 말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모아둔 돈을 챙기고, 가방에는 AIWA와 이어폰을 넣었다. 성훈이가 가져간 테이프의 빈 케이스도 넣었다.
매표소 앞에 섰다.
“무창포 가려고 하는데요.”
직원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웅천 가서 갈아타.”
오후 4시 15분 차 표를 끊었다.
출발까지 시간이 남았다. 대합실 의자에 앉았다. 사람들이 가방을 들고 오갔고, 매점 쪽에서는 삶은 달걀 냄새가 났다. 벽에 걸린 시계를 몇 번이나 봤다. 할 일이 없었다.
옆자리에는 관광 안내바카라자가 몇 권 놓여 있었다. 한 권을 집어 아무 생각 없이 넘겼다.
무창포, 대천, 춘장대.
사진 한 장을 넘기려다 손이 멈췄다.
대천해수욕장.
사진 아래 짧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백사장은 잘게 부서진 조개껍데기가 섞인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눈이 한 문장에 붙었다.
잘게 부서진 조개껍데기.
다시 읽었다.
잘게 부서진 조개껍데기.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등이 저절로 떨어졌다.
가방을 열었다. 테이프 케이스를 꺼내 속지를 펼쳤다.
구석에 적힌 성훈이 글씨.
껍데기가 모래가 되는 건가?
손끝이 멈췄다.
바카라자를 다시 봤다.
대천해수욕장.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때 웅천행 버스의 승차 안내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천.
그 두 글자만 계속 눈에
들어왔다.
대합실 한쪽에 붙어 있는 시간표로 갔다. 대천행은 하루에 여덟 번쯤 있었다. 위에서부터 시간을 훑었다. 아침과 점심 시간을 지나 손가락이 한 줄씩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다 멈췄다.
17:40.
왜 멈췄는지 바로 알지 못했다.
그 숫자를 한 번 더 봤다.
17:40.
이상하게 익숙했다.
그리고 옆 칸을 봤다.
6번 홈.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17:40.
어디선가 이미 본 숫자였다.
한동안 시간표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가방을 열었다.
공바카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바카라을 꺼내고, 카세트 케이스를 밀어내고, 맨 뒤에 끼워둔 공바카라을 찾아냈다.
페이지를 넘겼다.
맨 뒤.
거기 있었다.
1740/6.
고개를 들었다.
17:40, 6번 홈.
다시 공바카라을 봤다.
1740/6.
손바닥에 땀이 났다.
마침내 숫자가 말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등 뒤에서 안내방송이 다시 흘러나왔다.
“오후 네 시 십오 분 출발…….”
내가 타려고 했던 차였다.
주머니에서 표를 꺼냈다.
4시 15분. 웅천.
이미 표까지 끊어놓은 목적지였다.
사람들이 승차장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표와 시간표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매표소로 갔다.
표를 창구 아래로 밀었다.
“저기요.”
직원이 올려다봤다.
“이거 대천으로 바꿀 수 있어요?”
17시 40분.
6번 홈.
버스에 올라 창가에 앉았다. 차가 움직이고도 한동안 공바카라을 무릎 위에 펼쳐두었다.
1740/6.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 뜻도 없던 숫자였다.
이제는 답처럼 보였다.
그때는 그랬다.
대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웠다.
버스 문이 열리자 찬 바람이 들어왔다. 밖으로 내려서자 짠 냄새가 났다.
해수욕장 쪽으로 걸었다.
여름이 끝난 바닷가는 생각보다 훨씬 조용했다. 문을 닫은 횟집들이 이어졌고, 가게 앞에 쳐놓은 비닐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멀리 있는 바다는 잘 보이지 않았다.
소리만 들렸다.
철썩.
얼마쯤 걷다가 앞에서 혼자 걷는 학생을 발견했다.
안경.
짙은색 점퍼.
키도 비슷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야!”
학생은 돌아보지 않았다.
뛰어가 어깨를 잡았다.
“성훈아.”
학생이 돌아봤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뭐야?”
손을 놓았다.
“죄송합니다.”
학생은 나를 한 번 더 쳐다보고 가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철썩.
갑자기 추웠다.
(3) 늘어진 테이프
불이 켜진 분식집이 하나 있었다.
남은 돈을 세어보고 어묵 하나를 샀다. 국물을 마시다가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저기요.”
“응?”
“혹시 저 같은 학생 한 명 못 보셨어요? 안경 쓰고요.”
아주머니가 잠깐 생각했다.
“학생?”
“네. 혼자요.”
“글쎄.”
어묵을 한입 베어 물었다.
역시 아니었나 싶었다.
“아까 학생 하나가 싼 방 어디 있냐고 묻긴 했는데.”
고개를 들었다.
“어디로 갔어요?”
“저 안쪽으로 가보라고 했지.”
아주머니가 골목을 가리켰다.
“근데 걔가 네가 찾는 앤지는 모르겠다.”
어묵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학생.”
돌아봤다.
“돈 냈어?”
“아.”
아주머니가 웃었다.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니.”
“그러게요.”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낮은 민박집들이 붙어 있었다. 간판 불이 꺼진 곳도 많았다. 어느 집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났고, 어느 집에서는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음악이 들렸다.
N.EX.T였다.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잠깐 귀를 기울이다 다시 걸었다.
성훈이만 N.EX.T를 듣는 건 아니었다.
몇 걸음 더 갔을 때였다.
뒤에서 목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즈을망의 꺼업즐을 깨고.
발이 멈췄다.
즐망.
천천히 돌아봤다.
노래를 알아들은 게 아니었다.
그 테이프를 알아들었다.
음악이 들리는 쪽으로 뛰었다.
문 앞에 서서 두드렸다.
쾅쾅쾅.
잠시 뒤 음악 소리가 작아졌다. 안에서 발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
성훈이가 서 있었다.
둘 다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말했다.
“뭐하냐 이 미친 새끼야.”
성훈이가 눈을 크게 떴다.
“너 어떻게 왔냐?”
“일단 들어와라.”
“아니, 네가 왜 여기 있어?”
“춥다, 이 새끼야.”
성훈이가 옆으로 비켜섰다.
방바닥에는 과자 봉지 하나와 우유가 놓여 있었다.
구석에는 성훈이 가방이 있었고, 카세트에서는 익숙한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공바카라을 꺼냈다.
1740/6.
“이거.”
성훈이가 숫자를 내려다봤다.
표정이 이상해졌다.
“이게 너한테 갔어?”
“뭐?”
“이거.”
“네가 보낸 거잖아.”
“아닌데.”
“뭐가 아니야.”
성훈이가 공바카라을 다시 봤다.
“이거 영훈이한테 보낸 건데.”
잠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네 동생?”
“어.”
“왜?”
“걔는 알아야지.”
“뭘.”
“내가 어디 있는지.”
성훈이가 벽에 기대앉았다.
“갑자기 없어지면 걔도 걱정할 거고. 내가 없으면 집에서 내가 하던 것도 걔가 좀 챙겨야 하잖아.”
“영훈이는 네가 나온 거 알고 있었어?”
“아침에 얘기했어. 표 끊으면 시간 보내준다고.”
나는 공바카라을 내려다봤다.
“그럼 1740은?”
“버스 시간.”
“6은?”
“타는 데. 승차홈이라고 해야하나.”
“대천?”
“어.”
공바카라을 천천히 접었다.
“근데 왜 나한테 왔어?”
성훈이가 잠깐 생각했다.
“그날 너랑도 삐삐 했잖아.”
“어.”
“영훈이 번호를 누른다는 게 네 번호를 또 눌렀나 보지. 우리가 다소 꼬여부렀네”
“…….”
성훈이가 나를 쳐다봤다.
“너 설마 이거 보고 온 거야?”
“어.”
“여기까지?”
“어.”
성훈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친놈이네.”
“웃지 마라.”
“진짜 이거 하나 보고?”
나는 가방에서 테이프 케이스를 꺼냈다.
“이것도.”
속지를 펼쳤다.
껍데기가 모래가 되는 건가?
성훈이가 내려다봤다.
“그게 왜?”
“네가 썼잖아.”
“아.”
“대천 모래가 조개껍데기 어쩌고 하길래.”
성훈이가 내 얼굴을 봤다.
“그건 그냥 낙서한 건데.”
“알아.”
“언제 쓴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몰라.”
“근데 그걸 보고 대천까지 왔다고?”
“처음엔 무창포였어, 인마”
“뭐?”
“무창포 가려고 표까지 끊었어.”
성훈이가 웃기 시작했다.
“존나 웃기네”
“웃지 마라. 짜증 난다.”
한참 웃던 성훈이가 물었다.
“근데 진짜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나도 몰라.”
성훈이가 잠깐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나는 카세트를 가리켰다.
“그거나 돌려줘.”
“뭐?”
“하루만 듣는다며.”
성훈이가 웃었다.
“하루가 좀 길어졌네.”
(4) 너는?
그날 밤 우리는 민박방에 나란히 누웠다.
방은 추웠고 이불에서는 낯선 냄새가 났다. 성훈이는 벽 쪽을 보고 있었고 나는 천장을 봤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왜 왔냐.”
내가 물었다.
“바다 보려고.”
“그거 말고.”
성훈이가 몸을 돌렸다.
“진학희망서 냈잖아.”
“어.”
“우리 아버지가 학교 이름을 써줬어.”
“네 거를?”
“어.”
성훈이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글씨를 쓰는 시늉을 했다.
“여기 쓰라고.”
“가기 싫어?”
한참 뒤 성훈이가 말했다.
“모르겠어.”
“뭐가.”
“싫은지도 모르겠고, 가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밖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근데 자꾸 묻잖아.”
“뭘?”
“어디 갈 거냐고. 뭐 할 거냐고. 뭐가 될 거냐고.”
나는 천장을 봤다.
“모른다고 하면?”
성훈이가 말했다.
“그건 대답이 아니래.”
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한참 뒤 성훈이가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렸다.
“그냥 아무도 안 물어보는 데 가고 싶었어.”
그날은 더 묻지 않았다.
아침에 바다로 나갔다.
밤에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바다가 회색으로 펼쳐져 있었다.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신발 안으로 모래가 들어왔다.
“집에는 갈 거야?”
“응.”
“학교도?”
“가야지.”
“그다음은?”
성훈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다.”
“너 진짜 아는 게 없네.”
성훈이가 걸음을 멈췄다.
나를 봤다.
“너는?”
입을 열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철썩.
“몰라.”
성훈이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도 따라갔다.
민박으로 돌아가기 전 성훈이가 공중전화 앞에 멈췄다. \
“영훈이한테 전화하고 올게.”
“어.”
성훈이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고 성훈이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바닷가 쪽으로 다시 걸었다.
신발 안에 모래가 들어 있었다.
몇 걸음 가다가 멈췄다.
털어낼까 했다.
그냥 걸었다.
철썩.
가방에서 AIWA를 꺼냈다.
성훈이가 돌려준 테이프를 넣었다.
찰칵.
PLAY를 눌렀다.
딸깍.
이어폰을 꼈다.
〈The Dreamer〉가 시작됐다.
나는 다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