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초등학생들의 생일파티란

by온유
그 시절에도 생일파티는 화려했다. 아트박스에서 선물을 포장하고,
하교 후에 친구들끼리 모여서 주인공 집에 따라가던
그 길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생일파티는 세대를 불문하고 꾸준하게 이어져 온 행사일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생일파티 이야기가 이슈로 가끔 뉴스에 나올 때도 있는데 그 시절에도 생일파티는 꾸준히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공식적인 행사였다.


그때의 엄마들은 직접 만든 음식들로 생일상을 정성스럽게 차려줬다. 지금은 사라져서 아쉬운 크라운베이커리 케이크는 그 시절 인기가 많았던 케이크다.

얇게 커팅된 초콜릿가루가 뿌려진 크라운베이커리 케이크를 기본으로 김밥, 돈가스, 과자, 과일 등 각종 음식들로 한 상을 가득하게 차려놓고 엄마는 우리를 기다렸다.

그럼 학교가 끝나자마자 반 친구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서 생일파티를 하고 함께 뛰어놀았다. 가끔 엄마들끼리도 아는 경우 동생을 데리고 오는 친구도 있었다.

생일파티는 반 친구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경우 4월생이었기에 친구들을 생일파티에 초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처도 주고받으며 친해질 수 있었다.

또 하나 아이들이 기대하는 건 선물이었다.

지금이야 장난감이 넘치는 시대이기에 생일에는 오히려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고민이라면 그때는 생일이 1년 중에 가장 많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기억에 남는 생일이 있다면 초등학교 4학년 때 반장이었던 친구의 생일파티였다.

그때는 엄마들도 함께 갔던 기억이 난다.

반 친구들을 여러 명 초대했었는데 마당이 있었던 집이었고 말 그대로 진짜 파티 같았다. 맛있는 음식들이 정말 많았고 한편으로는 친구의 집 규모에 놀라기도 한 날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집의 크기보다 음식을 다 먹고 집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신나게 뛰어노는 게 더 중요했다.

또 생각나는 건 아버지가 군인이었던 친구였다. 관사에 살고 있었는데 걸어갈 수 없는 거리였기에 차로 마중 나와 주셨고, 부대 안에서 장갑차를 태워주셔서 기억에 남는다.

이때도 우리는 처음 가본 부대와 장갑차가 신기했고 그곳에서 뛰어놀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생일파티로 어느 집에 가든 주인공의 엄마는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주셨고,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엄마의 정성이 듬뿍 담긴 생일상의 음식들이 좋았고 가득 쌓여있는 선물을 풀어보는 시간은 너무나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일파티이기도 하지만 집에 친구들을 처음 초대하는 거라서 각자의 사정에 따라서 부끄럽게 생각할 만도 한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나도 친구들을 자주 초대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이 좋았고, 엄마는 항상 친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가 얼마나 신경 써서 파티를 준비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감사하다. 내 딸이 친구들과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 잘 사는 집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을 초대하면 엄마는 늘 넘치게 먹거리들을 챙겨주셨고 친구들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여러 가지 추억들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생일파티로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선물가게에서 선물을 사면 따로 돈을 추가하지 않아도 예쁘게 포장을 해주셨다.

문구류부터 인형이나 장식품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쌓여있던 그곳에서 친구에게 줄 선물을 고르면서 내가 더 설레었다.

그때 주고받았던 선물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선물포장을 뜯어보던 순간의 분위기와 장면들은 어렴풋이 남아있다.

엄마가 정성껏 차려주셨던 생일상과 아이들의 웃는 얼굴과 왁자지껄했던 분위기와 함께 따뜻하게 남아있는 기억들.

초등학교 시절 생일파티는 나에게 소중하고 따뜻한 기억이다.

우리 아이들도 여러 번 친구들을 초대해서 정성껏 음식을 차려주는 생일파티를 해주었다.

그 시절에도 지금도 아이들에게 생일파티란 설레고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다.

내 생일파티의 추억이 이제는 아이들의 추억으로 옮겨가고, 나는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로 보답을 받는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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