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우산이 기억하는 것

종로 3가 편의점 우산 · 비 오는 저녁

by소하

기억은 팔리면서 시작된다.


팔리기 전에 이 우산에게 기억이 없었다. 셀로판 포장 안에 있었다. 편의점 입구 옆 우산 꽂이에 꽂혀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저녁 일곱 시가 지나서 한 사람이 이 우산을 집어 들었다. 기억이 거기서 시작됐다. 셀로판을 뜯는 소리. 바삭거리는 소리였다. 공기가 처음으로 들어왔다. 편의점 안 공기였다. 냉방이 돌아가는 공기였다. 미세한 세제 냄새가 있었다.


손잡이에 손이 왔다. 차가운 손이었다. 비를 맞은 손의 온도였다. 빗물이 증발하면서 온도를 낮춘 것이었다. 그 차가움이 이 우산 손잡이의 플라스틱 표면으로 들어왔다. 우산이 펼쳐졌다. 처음으로 펼쳐지는 것이었다. 살이 펴지는 소리가 났다. 방수 천이 팽팽해졌다. 천의 표면이 처음으로 공기 저항을 받았다.


문이 열렸다. 비 냄새가 들어왔다. 젖은 아스팔트 냄새였다. 편의점 안보다 습도가 높았다. 그 공기가 이 우산 천 표면에 닿았다. 첫 번째 빗방울이 천에 닿았다. 가는 소리가 났다. 비가 가늘었다. 그다음 빗방울들이 이어서 왔다. 소리들이 달랐다. 천 중앙에 닿은 것은 낮은 소리였다. 가장자리에 닿은 것은 높은 소리였다. 살에 닿은 것은 금속 소리였다. 그것들이 섞였다.


걸으면서 우산이 앞뒤로 흔들렸다. 빗방울이 천에 닿는 각도가 달라졌다. 정면에서 올 때와 뒤에서 올 때 소리가 달랐다. 바람이 있었다. 바람이 오는 방향으로 천이 당겨졌다. 손잡이를 잡은 손이 그것을 버텼다.

빗물이 천 위에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방수 천이 빗방울을 튕겨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빗물이 천 위에 잠깐 머물다가 흘렀다. 살을 타고 흘러내렸다. 살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무게가 달라졌다. 처음보다 무거워졌다.


손의 온도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차가웠다. 걷는 동안 조금씩 올라왔다. 운동이 손을 데웠다. 손잡이를 잡는 힘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세게 잡았다. 걸으면서 조금씩 풀렸다. 빗소리에 리듬이 생겼다. 걸음 리듬과 빗소리 리듬이 섞인 것이었다. 발이 닿는 주기와 빗방울이 오는 주기가 가끔 같아졌다가 달라졌다가 했다. 두 리듬이 겹칠 때 소리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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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데이』작가에서 예술심리치료 전문가로, 감정을 굽고, 마음을 다루는 작가: 소하(素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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