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오늘도 여기 있다. 말하지 않고, 기억하면서.
프롤로그. 서울이 기억하는 방식
서울은 말하지 않는다.
매일 수백만 명이 이 도시를 지나간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병원 의자에 앉고, 빨래방 세탁기 앞에서 기다리고, 한강 벤치에 앉았다가 일어난다. 어떤 사람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어떤 사람은 서울을 떠났다. 어떤 사람은 오늘 처음 서울에 왔다. 그것들이 이 도시 안에서 일어나지만 서울은 직접 말한 적이 없다.
대신 기억하는 방법이 있다.
서울의 몸 곳곳에 사물들이 있다. 지하철 손잡이, 병원 대기실 의자, 편의점 우산, 새벽 빨래방 세탁기, 꽃집 포장 테이블, 한강 벤치, 터미널 보관함, 골목 공중전화, 헌바카라방 의자, 환승통로 거울. 요양원 엘리베이터 버튼, 노약자석, 편의점 야간 카운터, 구청 번호표 발급기, 등산로 계단, 자전거 도로 속도계, 대교 난간, 에스컬레이터, 봉제공장 재봉틀, 고시원 냉장고, 청계천 계단, 공원 벤치, 복사집 기계, 형무소 돌담, 우편함, 도서관 칸막이, 옥상 빨랫줄, 상담실 거울, 버스터미널 출구, 철교 아래.
이것들이 서울의 기억기관이다.
손잡이는 서울의 손이다. 벤치는 서울의 무릎이다. 거울은 서울의 눈이다. 공중전화는 서울의 귀다. 난간은 서울이 기대는 곳이다. 사물들은 판단하지 않는다. 좋고 나쁨을 모른다. 온도를 기억하고, 무게를 기억하고, 압력을 기억하고, 마찰을 기억하고, 냄새를 기억하고,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어떻게 왔다가 어떻게 떠났는지를 기억한다.
감정은 독자의 몫이다.
이 바카라은 서울이 오늘 기억한 것들이다. 오늘 이 도시를 지나간 사람들이 남긴 온도들이다.
이름이 없는 사람들의 무게들이다. 사물들이 받아낸 것들이다.
당신도 오늘 서울을 지나갔다. 어딘가의 손잡이를 잡았을 것이다. 어딘가의 의자에 앉았을 것이다.
어딘가의 거울 앞을 지나갔을 것이다. 그 사물들이 오늘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
서울은 오늘도 여기 있다. 말하지 않고, 기억하면서.
지하철 2호선 손잡이 · 을지로입구역 · 오전 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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