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에게는 아직, 부모님이라는 이름의 기댈 언덕이 있다.
아직 건실히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하시고, 아직 건강하신, 언젠간 낮아질 것 같아 두려운 우리의 언덕.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부모님들과 같이 아이들과의 가장 행복한 나날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 시절이 인생의 가장 빛나는 때에 있는 것 같다. 이 시간은 우리에게 얼마나 더 허락될까 생각해 보았다.
굴곡진 인생의 선 위에 있다면 지금이 내리막이 아니길 바랐다.
내가 엄마를 마냥 웃게 해 드렸던 때는 얼마나 됐을까, 처음 7-8년 정도였다면,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줄어들었던 것 같다. 그 무해한 시간은 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한 번도 당연했던 적이 없었다.
결혼은 지금 남편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고 둘째 역시 원래는 계획에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당연하지 않게 만들어온 이 시간이 어쩌면 가장 큰 효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명절에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은 가장 어린 나의 둘째로 향했고
이 작은 아이 때문에 모두가 모여 웃었다. 나도 이런 사랑 안에서 자랐던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든든해졌다.
어린아이가 있으면 집 안에 웃음꽃이 핀다고 삼촌은 늘 말씀하신다.
우리 어른들 언덕에 아이들이 꽃을 뿌려놓았다.
그런데 이렇게 모여 웃을 때면 한편으로 나는 행복한 것이 무섭다. 허상처럼 사라질까 두렵다.
영원한 것은 무엇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마냥 언제까지 기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언젠간 부모님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의지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부모님들은 얼마나 외면하고 싶을까.
하지만 일단 우리는 지금만 봐야 한다. 일단은 그래야 한다.
어릴 때 할머니 댁에 가면 철마다 이것저것을 챙겨주셨다. 엄마와 우리 남매는 어둑 해질 때쯤
집에 돌아가면서 그것들을 한 짐 가득 옮겼다. 대부분 과일, 쌀, 야채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이제 그때의 엄마 나이쯤이 되어 이것저것, 철마다 챙겨주시는 것들을 받아먹는다.
왜 부모님들은 다 자란 자녀들의 냉장고를 이렇게 앞다투어 채워주시는 걸까,
냉장고가 터질 것 같으면 왠지 답답하고, 빨리 먹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들 때도 있지만
이 익숙하고 여전한 음식들로 우리가 함께 살던 그 시절을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예능 프로에서 출연자들은 마지막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때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사랑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그 말이 종종 와닿는다. 평온한 지금 같은 날들이 우리 가족에게 오래도록 내려앉아있으면 좋겠다.
그 프로그램의 말처럼, 엄마가 주는 여전한 음식들처럼 우리들의 사랑이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