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야구가 보고 싶어

by온가

나는 열여덟부터 야구팬이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계절에 시작해 한 해의 절반을 바카라임져주는 이 스포츠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시즌이 마무리되면 갑자기 날씨도 추워지고 왠지 마음도 섭섭하고 쓸쓸해진다.

봄이 와서 야구가 하는 것인지 야구가 하니까 봄인 것인지.

가장 뜨거운 계절에, 나를 가장 활기차게 해주는 계절에 매일 저녁 중계 소리를 듣는 게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이다. 그런데 남편이 티브이를 못 보게 한다.


75인치 벽걸이 티브이는 어린이가 사는 집에 애물단지가 되었다.

미디어 노출을 줄여야 한다는 완강한 뜻의 남편 덕에 주말이면 아이랑 나는 새카만 네모 상자를 힐끗

바라보며 입맛만 다신다. 아니 눈 맛만 다신다.

신혼 가전을 사는 친구들에게는 벽걸이는 무조건 피하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조언할 수밖에 없다.


무조건 보지 못하게 으름장을 놓는 것이 통할 나이가 지난 것 같다고, 이제는 조절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의견을 내봤다. 자꾸 못하게 하면 집착하게 된다고 설득을 해봤다.

남편은 듣는 척만 할 뿐 그의 독재는 여전하다.

아직 머리가 덜 굵어진 꼬마는 이런저런 이유를 붙인 부모의 말에 도리없이 수긍하며 큰 고집을 피우지는 않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만화 주인공들의 안부를 살피고 싶어 몸을 근질거린다.


그러다 가끔 내가 남편의 눈치를 살피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야구를 틀어두면

아이는 이닝 사이의 광고만 쳐다봤다. 룰은 잘 모르겠고 그냥 이기는 팀이 내 팀이라 했다.

어린이 야구팬 영입에 과연 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이가 이만큼 자라면서 이것저것 같이하고 싶은 기대가, 욕심이 자꾸 자라는 것 같다.


나는 아이를 여러 면에서 가르쳐주는 입장이지만 아이가 즐거우면 나도 덩달아 즐겁다.

아이가 시큰둥하면 나는 몇 배로 아쉽다.

어릴 적에 친해지고 싶은 친구와 가까워지는 중에 느끼던 그런 감정과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종종 나에게 로봇 이름들을 나열하며 그중에 뭐가 제일 멋있는 것 같은지 고르라고 한다.

나는 아이가 원하는 답을 2초 정도 고민해 보다가 퀴즈 맞추듯 정답을 외쳐준다.

자기 마음과 꼭 맞는 대답이 나오면 아이는 슬며시 웃으면서 나랑 똑같네-라며 좋아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내가 아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 수 있을까. 우리 같은 마음이라며 언제고 들뜰 수 있을까. 네가 언제고 지금처럼 물어주면 좋겠다. 엄마 생각은 어때? 나랑 똑같지?


이기는 팀이 내 팀이라는 아이를 위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기를, 시즌 내내 응원했다.

같이 재밌고, 같이 분통 터져보고 싶다.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싶다.

휴대폰으로 몰래 켜놓고 소리도 줄인 무음의 야구였지만 꼬마팬 영입에 대한 희망의 끈을 이어갔다.

이 깊은 뜻을 남편이 알아주면 좋겠다-하면서 다시 돌아올 시즌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