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
배달 온 수박 한 통을 받아 들고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요즘은 손가락을 몇 번만 움직이면 무거운 수박도 집 앞까지 배달된다. 하지만 내가 어리던 70년대에, 엄마는 집 앞 가게는 비싸다며 늘 시장까지 가셨다.
장을 다 보고 나면 수건을 둥글게 말아 똬리를 만들어 머리에 얹고, 장 본 물건을 싼 커다란 보따리를 그 위에 올려 시장에서 집까지 그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걸어오셨다. 엄마는 그 무거운 것을 두 손으로 붙잡지도 않았는데 짐은 한 번도 쏟아지지 않았다. 나는 그게 늘 신기했다. 그 보따리 안에는 수박 한 통도 들어 있었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보따리를 내려놓고 수박부터 잘랐다. 커다란 쟁반에 빨간 수박이 수북이 담기면 우리 네 자매는 달려들어 먹었다.
그때의 나는 수박만 보였다.
배달 온 수박을 현관에서 부엌으로 옮기며 이제야 생각했다. 엄마는 이 무거운 것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서 집까지 어떻게 걸어오셨을까? 두 팔로 안아도 수박 한 통은 묵직했다. 현관에서 부엌까지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팔에 힘이 들어갔다.
엄마가 걸어오던 시장에서 집까지의 길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린 내게 그 길은 엄마가 장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나는 엄마가 언제 집을 나섰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시장을 돌았는지, 돌아오는 길에 몇 번이나 걸음을 멈췄는지도 모른다. 집에서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수박에 칼을 넣었다. 서걱대는 소리와 함께 초록 껍질이 갈라지고 붉은 속이 드러났다. 수박을 잘라 접시에 담아 내놓으니 가족들이 한 조각씩 가져가고 접시에는 붉은 물이 고였다. 잘 익은 수박은 차갑고 달았다. 한 조각을 다 먹고 또 한 조각을 집었다. 어릴 때 우리 네 자매도 그랬다.
붉은 속을 다 먹고 나니 희고 두꺼운 껍질만 남았다. 어릴 때 우리에게 수박은 거기서 끝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일은 다시 시작되었다. 엄마는 수박을 먹고 남은 흰 부분도 버리지 않으셨고 초록 겉껍질을 벗겨 흰 부분을 다듬으셨다. 어떻게 절이고 어떤 양념을 넣으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새콤하게 무쳐진 수박 흰 부분의 아삭한 맛은 아직도 남아 있다.
무처럼 단단하지도 않고 오이처럼 물이 많지도 않았다. 그 사이 어디쯤의 아삭함이었다.
네 자매가 둘러앉은 여름 밥상은 늘 시끌벅적했다. 어린 나는 그것이 수박 껍질로 만든 반찬이라는 사실을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여름이면 밥상에 한두 번 올라오는 새콤하고 아삭한 반찬이라고만 여겼다.
이렇게 수박 한 통의 붉은 속은 네 딸의 간식이 되었고, 남은 흰 부분은 반찬이 되어 다시 밥상에 올랐다.
엄마에게는 특별한 요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매일 되풀이하던 살림이었을 테니까. 아침을 차리고 돌아서면 점심이고, 설거지를 끝내면 다시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그 사이 엄마는 시장을 오갔고, 보따리를 내려놓았고, 우리가 먹고 남긴 것까지 다시 다듬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시간을 보지 못했다.
그 시절 엄마의 나이를 나는 이미 지나왔다. 이제 나도 오랫동안 가족의 밥을 지어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무거운 수박을 머리에 이고 와 네 딸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은, 붉은 속만 먹이고 끝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남은 흰 부분까지 다시 다듬어 상에 올리는 것. 그것도 엄마가 가족을 돌보던 방식이었다.
엄마가 해 주던 그 반찬을 나는 오랫동안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싱크대 옆에 남은 수박 껍질을 한 데 모아 초록 겉껍질을 얇게 벗기고 흰 부분을 썰었다. 너무 가늘면 아삭함이 사라질 것 같아 조금 도톰하게 썰었다. 엄마는 어느 정도의 두께로 썰었을까? 기억나지 않아, 손끝에 남은 맛으로 두께를 가늠했다.
소금을 뿌려 잠시 두니 맑은 물이 배어 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재료가 저절로 부드러워지는 시간. 한 조각을 집어 구부려 보았다. 부드럽게 휘면서도 가운데에 아삭함이 남아 있었다. 두 손으로 물기를 꼭 짜는 순간 엄마의 손이 떠올랐다. 엄마의 손은 늘 붉게 트고 부어 있었다.
고춧가루와 식초, 설탕을 넣고, 참기름은 넣지 않았다. 마지막에 깨소금을 넉넉히 뿌렸다. 그래야 수박 흰 부분의 시원하고 산뜻한 맛이 그대로 남는다. 빨갛게 무친 수박 껍질을 접시에 담았다. 조금 전까지 먹고 남은 것이었다고는 보이지 않았고, 새콤하고 아삭했다. 더운 날 밥 한 술에 올려 먹기 좋고 기름진 음식 곁에 두어도 잘 어울렸다.
딸이 물었다. “이게 정말 수박 껍질이야?”
나는 “초록 껍질만 벗기면 이것도 다 먹는 거야.”라고 했다.
딸은 처음엔 미심쩍은 얼굴로 한 점을 집었지만, 두 번째 젓가락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오래 전 네 자매가 둘러앉았던 여름 밥상이 잠시 겹쳐 보였다.
엄마가 해 주던 음식과 지금 내가 만드는 음식은 똑같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양념을 얼마나 넣었는지, 얼마 동안 절였는지 모르고, 그때는 만드는 법을 물어둘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늘 곁에 있던 음식은 언제든 다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늘 곁에 있던 사람에게는 다음에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는 그 음식 만드는 법을 묻고 싶어도 물을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스물다섯이 되던 해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수박 한 통을 배달받은 오늘, 나는 붉은 속을 먹고 남은 흰 부분으로 반찬 한 접시를 만들었다. 껍질을 벗기고 소금에 절여 물기를 짜다 보니, 오래전 엄마가 하던 일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었다.
반찬 하나에도 손이 이렇게 많이 간다. 내가 수박만 보던 여름마다 엄마의 하루에는 내가 보지 못한 시간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엄마의 음식은 그렇게 내 손을 거쳐 다시 우리 집 밥상에 놓였다.
여름이 오고 수박을 먹을 때마다 나는 또 이 반찬을 만들 것 같다. 엄마의 맛과 같지 않아도 괜찮다.
그때는 수박만 보였다.
이제야 엄마가 보인다. 손으로 붙잡지 않아도 쏟아지지 않던 그 짐을 머리에 이고 오던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