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오지 마시오!

[인시디어스 : 그들이 넘어왔다.]

by오래된 도서관

세상은 넓고 바다는 깊다.

우물 안에 앉은 개구리는 세 번쯤 다시 태어나 봐야 알 수 있을 호러의 바다.

오늘 처음 들어 본 낯선 제목의 영화인데, 벌써 6번째 영화가 개봉하는 시리즈란다. 호러 장르라고 하면 생각만으로 간 쪼글 해지는 겁쟁이라 못 본 영화는 워낙 많지만, 그래도 이름 정도는 들어 본 영화들이 많은데 이건 무슨 일이지?

하긴 대왕 쫄보가 호러 장르의 흐름과 동떨어져 사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파라노말 액티비티]나 [쏘우], [컨저링], [더 넌] 등의 호러 영화들은 본 적은 없어도 제목은 알고 있다. 이렇게 아는 호러 영화 제목을 떠올려보니, 올해 6번째 개봉하는 시리즈의 이름이 생소한 것이 한결 더 당황스럽다. OTT시청용으로만 TV를 이용하는 습성 때문인가?

며칠 전 친정 엄마와 '날씨 너무 덥다.'와 '키우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내용의 스몰토크 사이에 뜬금없이


"거 인터넷 들어가서 파크골프공 좀 주문해서 보내라. 원래 쓰던 놈 하나가 깨졌네."


하는 지령을 듣고 통화 중 검색을 하니 '그냥 골프공' 말고 '파크 골프공'이 따로 있다는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며 내 무지의 영역에 형광등 하나가 켜 진 경험을 했었다.

낯설지만 오랜 이웃이었다는 [인시디어스] 예고편은 형광 빨간색의 큼직한 '파크 골프공' 같은 쨍한 이질감으로 눈앞으로 툭 굴러와 멈춘다.

서양 호러 무비는 악령의 집에 갇히거나 미친 살인마가 등장하는 슬래셔 아니면, 신부님들이 성수 뿌리며 퇴마 하는 것 아니었나?

망자가 산 사람을 문처럼 이용해 이승으로 넘어오는 것은 한국의 무당 패턴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새 세계화가 된 것인가?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근본 없이 마구 잘라 붙이는 데에 죄바카라감도 없다.

내가 영화 속 그녀의 입장이라면, 저승 시민권자가 내 허락도 없이 나를 문으로 이용해서 밟고 넘어오는데, 난 그 문을 닫을 방법도 모른다는 점에서 말초적인 공포심이 치솟는 한편, 약이 바짝 오를 것 같다.


"누가 맘대로 밟고 지나가래!"


[호컴]에서는 굳이 일 생기게 생긴 외딴 숲에 있는 호텔에 체크인하는 주인공에게 답답함을 느꼈고, 이내 포기하고 남 일처럼 관전할 여유가 생겼다.

'어휴. 난 모르겠다. 저 고생은 그의 것이지 내것은 아니니, ' 하는 선긋기를 하고 난 후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안전한 영화 밖에서 불 구경 하는 안심이랄까.

그런데 이번 주인공에게는 어떻게 해야 남 일처럼 한켠 접어놓고 강 건너 불구경을 해야 하는 것일까? 꼼짝없이 나를 밟고 줄줄이 지나가는 저승 시민들을 향해 같이 놀라고 분노해 주어야 하는 건가?

잠이 든 사이 몸을 빠져나온 유체가 '저 먼 곳'으로 떠나는데 그렇게 마실 다녀오는 사이 내 몸에 누가 들어앉을 수 있다는 설정과 저승객 랜덤 뽑기에서 센 놈한테 잘못 걸리면 되려 내가 내 몸 밖에서 대기해야 한다는 설정이란다. 더 운이 나쁘면 몸을 영영 빼앗길 수도 있을 테고.

오랜 경력의 잠탱이로서 갈수록 더 불쾌해진다.


"수면 중 유체이탈을 하면 몸은 피로 회복이 되긴 하나?"


성실한 하드웨어는 제 기능을 해서 회복을 할 것 같다. 하지만 저승객이 들어와 점거하고 몸에 전원을 넣고 돌아다니기까지 하면 내 하드웨어는 언제 쉬나?

무엇보다, 충전기는 뽑혀 있을 것 같은데?


"...... 너 이리 와봐 저승객놈아."


겁 좀 주는 것과 가뜩이나 회복 안 되는 갱년기에게 충전선 뽑아놓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선이야. 이 양반아.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저승객은 맘대로 내 몸을 문처럼 쓰면서 빠져나가지만 내 쪽에서 저쪽 저승객에게 물리적 타격을 줄 능력이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초자연적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멀어지고 싶은 공포를 주는 아우라가 있지만 만약 맞서 싸울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붙잡아 쥐어박을 수 없으면 답이 없다. 예고편을 보니 주인공은 잠든 틈에 몸을 차지하는 악령을 때려줄 수도 없고, 애초에 자기 영혼이 '저 먼 곳'으로 떠나는 것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뒷짐 지고 맞는 영화였어?

구마 사제를 찾자니, 예고편에서 보이는 악령들은 악마보다는 급이 떨어져 보인다. 진짜 악마가 확인되어도 결재라인 복잡한 가톨릭 업무 패턴상 신부님들 출장은 못 오실 것 같다.

단테의 지옥 9층을 출장 등급표로 쓴다면,


"출장은 힘들구요. 관할 성당으로 찾아오세요."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저기, 악마급 아니라고 안 무서운 게 아닌데요?"


영화 [호컴]의 예고편은 보는 내내 습기처럼 찐득하게 달라붙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따라다니던 기분이었다면, [인시디어스: 그들이 넘어왔다]는 가장 편하게 늘어져 쉴 수 있는 침대에서 뒷덜미 붙들려 벌떡 일으켜지는 기분이다. [호컴] 때와는 달리 스크린 밖에서 팔짱 끼고 구경할 자리를 내주지 않는 영화다.

저 언니 한국으로 오라고 할까 봐. 우린 무당이라는 시스템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