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님. 외계인이라니요?"
프링글스 뚜껑 열었더니 피에로 장난감이 튀어나온 기분이다.
영화 [곡성]이 토속신과 일본요괴의 대결인 줄 알고 봤지만, 일본 외지인이 사실 악마였던 당혹감. 공략법에 실패한 탓에 '애초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다는 텁텁한 깨달음을 느끼며 느릿하게 올라가는 엔딩크레디트를 무력하게 봤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그나마 영화 끝에 뒤통수를 맞은 것은 납득이 가는 배신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무려 예고편이 뺨을 한 대 치고 시작한다. 나무보다도 키가 큰 외계인 여자라니. 심지어 한국말로 대사도 할 것 같은 표정도 보였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여기 오기 전에 한국말 배워 왔어요."
라고 싹싹하게 말을 걸어온다 해도, 덜덜 떨며 겨눈 총은 차마 내려놓지 못할 위압적인 비주얼에 불편감이 든다.
정체를 모르는 '저것'을 무섭게 생각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생존 본능이니까. 그래서 인간은 E.T. 에게도 총을 쏘았다. E.T. 야. 미안.
친한 E.T.翁(옹)까지 불러오는 망상 덕에 경계심이 조금 풀리고 나니 느닷없는 외계인 등장으로 받은 당혹감이 한결 옅어진다. 그리고 오히려 나의 짧은 식견에 딱 맞는 예고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까이 오기 전에 얼른 방아쇠 당겨야 할 것 같은 '저것'에 대한 나의 상식에 어울리게도, 예고편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외계인을 향해 각종 집중포화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포장지부터 블록버스터 영화 냄새가 폴폴 나는, 대 놓고 킬링타임 영화로운 예고편은 아직 석연찮다.
'내가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너무 쉬운 길에는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 나홍진인데 긴장 풀면 안 되지.
너 혹시 키가 좀 큰 악마니?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모르는 것'이다.
'알면 과학, 모르면 신화.'
그래서 사람에게 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뭔지 모르는 '저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인데, 눈앞에서 뻔히 일어나고 있는 현상. 내가 인지할 수 없는 영역은 그냥 신기하다를 넘어서 패닉을 불러올 만큼 무서운 것.
쉽게 말해, 몰라서 무서운 것. 그래서 과학의 랜턴으로 밝혀 준 인지 너머의 어두운 곳을 신화나 전설이라 이름을 붙여 이해한다.
그리고 신화도 전설도 못 붙일만한 것에게는, 지난 "[군체] 안 본 이야기"에서처럼, 실체 없는 AI의 무서운 특성에 친근한 좀비의 얼굴을 씌우는 응용도 한다.
이런 강박적인 이름과 얼굴 만들어 씌우기를 보면, 모르는 것을 무심하게 남겨둔 조상들은 생존에 실패했고, 의심 많은 생존자들의 자손이 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굳이 외계인 얼굴로 등장한 빌런을 악마가 아닐까? 하는 억지 의심은 이렇게 꽤 그럴듯한 설명이 된다. 데이터 없는 외계인보다는 악마 쪽의 공략법이 풍부하다는 점.
악마는 성경에도 많이 등장하는 '아는 도둑'이지만, 외계인은 상상력을 빼면 어디에도 실마리가 없는 '모르는 도둑'이니까.
이쯤 생각해 보니 영화 [호프 (HOPE)]는 프링글스 통에서 튀어나온 피에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극단적이고 낯선 궁지에 몰린 인간이 어떤 짓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시리즈. [추격자]-[황해]-[곡성]. 그리고 [호프 (HOPE)].
'한 줄로 꿰어지는 꼬챙이를 찾은 것 같은데?'
[곡성]과 너무 달라 보이는 [호프 (HOPE)]에서 [곡성] 때 같은 혼란의 냄새가 난다.
아직 개봉 전이니 확인은 안 되지만, 외계인을 섭외한 이유가 있기는 하겠다. 이제는 키 큰 외계인 여자가 악마가 아닌 외계인이라고 해도, 아까보다는 덜 불편하다.
다만, 예고편도 결국 나홍진 영화다.
"현혹되지 마소."
'그것'과 마주한 내가 '그것'일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