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5년 1월, 새해를 맞아 단단한 다짐을 했다.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누군가에게 쉽게 흔들리지 않겠다고. 더 이상 큰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때의 나는 사랑이 아름답다는 사실보다도, 사랑이 남기고 간 상처를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후의 삶은 잔잔하게 흘러갔다.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틈틈이 공부를 했다.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며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그 평범한 일상이 좋았다.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계절은 천천히 지나갔고, 나는 어느새 스물네 살의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외로움을 느꼈을 법한 순간에도 괜찮았다.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아도 하루는 충분히 채워졌고, 나 자신과 보내는 시간도 제법 즐거웠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사랑은 점점 멀어진 것이 아니라, 굳이 의식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익숙한 감정이 찾아왔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느꼈던 그 감정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예전에는 설렘이 찾아오면 그만큼의 불안도 함께 따라왔다. 행복한 순간에도 언젠가 끝이 올까 두려웠고, 마음이 커질수록 잃게 될 것이 무서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 그를 떠올리면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고, 함께하는 순간에는 마음이 안온해졌다. 불안함보다 고마움이 먼저 찾아왔고, 조급함보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감사했다. 다시 이런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한때는 영영 닫혀버린 줄 알았던 마음이 여전히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다는 것이. 누군가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사실들이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영원을 약속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오늘의 행복을 오늘답게 느끼고 싶었다. 그와 함께 걷는 순간을, 함께 웃는 순간을, 문득 떠오르는 설렘을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담아두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사랑은 늘 그런 것 같다. 애써 찾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도,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문득 곁에 와 앉는다. 소란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봄바람처럼, 햇살처럼, 어느새 스며들어 있다. 사랑은 거창한 시작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사랑은 가장 평온한 날,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에 조용히 스며드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나조차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결국 사랑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