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침해함 앞으론 무조건 법적 대응 갑니다. 1회분 대본 곧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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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바쁘다. 바쁘게 살아도 살아 남는 것조차 버거운 시대다.
내 몸 하나, 내 인생 하나 온전히 버티고, 이끌고 가느라 하루하루가 정신이 없다. 더구나 취직도 연애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일끼? 유난히 돌싱도 많고, 나이 마흔이나 오십 넘도록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싱글족도 꽤 많다.
인생을 즐기고 사는 걸까? 아니면 사랑이나 연애 세포가 무뎌지고, 사그라들어 혼자라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걸까?
그것도 아니면, 살다 보니 어찌어찌 그렇게 살고 있게 된 걸까?
이 드라마는 나이 마흔이 되도록 결혼도 안 하고 싱글 대디인 오빠의 쌍둥이 자녀들이자 조카를 키워준다.32살 때부터 조카들이 고모이자 동시에 엄마가 돼 준다.
그렇게 어찌어찌 살아왔는데, 이제 나이 마흔의 결혼까지 생각했던, 자신을 버리고 일을 택해 트롯 가수와 방송인으로 유명해진 옛 남자를 만난다.
그 동갑내기와 얽히고 섥히며 바라지 않았던 일상이 다시 재밌어진다.
저출산과 싱글로 혼자 살아가는 혼족이 많은 21세기다. 2026년에서 2027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결혼이나 가족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들여다보려 한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됐고, 이젠 외로움이 뭔지도 그리움이 뭔지도 모르고 산다.”
내 나이 내년이면 마흔이다. 남편 없고, 자식 없는 싱글이다. 결혼하려고 했던 사람은 있었지만, 결혼한 적은 없다.
하지만 친자식처럼 돌보고 엄마와 같이 육아를 맡아 주고 있는 쌍둥이 조카들은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고, 어찌어찌 그렇게 예전 말로 골드 미스가 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간간이 알바를 했고, 인 서울 미대에 입학해 정말 즐겁게 놀고,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열심히 공부했다. 같은 반 남자애들과 술 내기에서도 진 적 없다. 내가 다 보내 버렸다.
날씬하고 청순하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거침이 없다. 거침 없는 만큼, 실속도 꽤 있는 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돈 모아서 미술 학원을 차렸고, 나는 학군지에 있는 학원가에서 작은 미술 학원을 운영하며 웹툰 작가가 됐다.
길게, 많이 생각하는 거 안 한 지 오래다. 그냥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열심히 살면 그만인 거 같다.
나이 39세에 엄마와 공동명의로 된 아파트를 자가로 갖고 있다. 내 돈으로 구입한, 내가 아끼는 차도 있다. 온라인 게임도 있다. 여유돈도 없지는 있다. 사지 멀쩡하다. 그러면 됐다 싶다.
“아이 둘 키우며 살아가느라 바쁘다. 새벽부터 밤까지 나는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나는 영화 감독이 꿈이었고,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나는 연극 무대와 영화판 스텝을 오가며 20대를 보냈다.
영화판에서 만난 그녀는 내 첫사랑이었다. 그녀는 예뻤고, 화려했고, 자신이 갖고 싶은 게 뭔지 항상 뚜렷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원하는 원대한 욕망이나 욕심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 몰래 낳은 나의 쌍둥이 아이들을 조용히 나에게 안기고 떠나 버렸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아파할 시간이 없었다. 쌍둥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돈을 벌어야 했고, 아이들과 살아 나가야 했다.
아버지를 따라 시내버스 기사가 됐고, 격일제로 근무했다. 버스 기사를 안 하는 격일제에는 학원 버스 기사를 했다.
가끔 그녀가 생각나기는 하지만 본 적은 없다. 지금도 만나는 연극판, 영화판 친구들에게서 어느 재벌 회장과 결혼해 자신을 숨기고 산다는 얘기만 얼핏 들었다.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나는 누리가 좋으면서도 얼굴도 모르는 엄마 닮아서 얄밉다.”
”나 엄마 닮아서 외모가 예쁘단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인기 많은 차도녀다.“
“무정하게 가버린 남편, 이제 남은 인생 또 다른 뒷바라지로 슬퍼할 수만은 없다.”
묵묵하게 무심한 듯 가정적으로 옆을 지켜 온 남편이 방금 하늘로 떠났다. 남편이 좋아서, 남편만 믿고 여태 가족만 알고 살았다. 그게 나에겐 온전한 행복이었다.
그저 가족과 함께 다 같이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가족이 나에겐 힘이었고, 위안이었고, 살아가는 행복이었다. 그 가족의 중심에 나를 은근히 웃으며 덤덤히 살게 하는 남편이 있었다.
자식 둘 키워 놨더니, 자식 둘 다 남들처럼 온전한 가정을 꾸리고 살지를 못한다. 뭐 그래도 괜찮다. 지들 앞가림을 어떻게든 하고 사는 애들이다. 다만 나처럼 부부의 연을 맺지 못하고 사는 그것들이 가슴 한구석에 걱정이긴 하나 굳이 잔소리하거나 티를 내려 하진 않는다. 그것도 다 지 팔자려니, 세상만사 억지로 되는 게 없는 걸 뭐라 해 봤자 소용은 없는 것이니까.
그래도 쌍둥이 손주 손녀가 있어서 또 그것들 육아해 주고, 그것들 커 가는 거 보는 재미에 산다.
솔직히 늦게라도 좋으니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 거 부부의 연은 맺는 거 보고 죽었으면 좋겠긴 하다. 살다 보면 이러나저러나, 매치나 저치나 소소하게 일도 많은 인생에 그래도 옆을 지켜 주는 짝들은 있었으면 싶은 게 솔직한 소원이다.
“내 인생에 가족이 전부고, 내가 살아있든 죽었든 내 가족만 행복함 되는 거다.”
이제 막 고인이 됐다.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아온 속정 많고 묵묵하게 살았다.
많은 말을 하고, 많이 표현해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잔잔히 챙기며 열심히 뒷바라지하고 살았다. 사랑했다. 후회는 없다. 나도 행복했으니까.
“난 어렸다. 화려하게 명품으로 휘감으며 VIP로 살고 싶었을 뿐이다.”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청춘에 사랑에 눈멀어 내 인생 골로 가긴 싫었다. 나는 고급스럽게, 화려하게 살고 싶었다.
찌질하고 궁상맞았던 부모의 인생이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떠났다. 그래서 버렸다. 남자도, 남들 눈 피해 몰래 내 배속에서 출산한 쌍둥이 애들도.
그래서 얻었다. 고급스러움도 화려함도, 남들에게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 그 인생을 얻었다. 하지만 조용히 살아야 했다. 나를 내 보이지말고 집안에서, 사모님 소리 들으며,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나는 나이 많은 그 남자의 자식들 눈총 속에서 조용히 숨어 살았다.
그렇다고 내가 다 뺏기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주는 것만 받아먹으며 쪼그리고 사는 년은 아니다.
나도 뒤에서 나름 준비를 했다. 내 앞날을 위해, 그 남자를 잘 구워삶으며, 그 남자의 자식들에게 눈 총에 지지 않으며, 내가 그 집안에서 내 몫을 챙겨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서른셋이 되어서 과부가 됐다. 몇 달 전에 스무 살이나 많은 그 남자가 사고로 죽었고, 나는 그 남자의 자식들을 내 무릎 아래 두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버린 남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몰래 내가 버린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 조의금을 넣고 나왔다. 8년 전 내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데 그 남자, 참 아직도 괜찮네. 애들도 잘 큰 거 같다. 쌍둥이 딸은 날 닮았네.
“태이가 참 부러웠는데, 이젠 부럽지 않다. 차라리 평범하게 사는 내가 낫다 싶다.”
태이의 모든 것은 아는 유일한 친구다. 태이가 참 예뻐서, 태이가 멋있어 보여서 따라 다녔다. 그런 태이가 유일하게 믿고, 태이의 비밀을 다 알면서도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사는 태이의 유일한 친구가 나다.
연극판에서 같이 꿈을 키우던 남편을 만나 그냥 남들처럼 애 낳고, 집값 대출금 걱정하며 산다.
애를 낳고 나니 결혼 생활이 꿈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현실을 살기 위한 인생이 돼 버렸다. 돈을 벌고 살기 위해 남편과 장사를 시작해 동네에서 베이커리 카페를 하며 그래도 굶지 않고, 내 집 하나 장만해 평범하게 살아간다.
태이와는 자주 연락하고 만난다.
“와이프 잘 들어야 산다. 친구도 좋지만 야무진 와이프 말이 더 정답이다."
야무지고 착하고 살림 잘 하는 와이프 말이 최고다. 예쁜 내 새끼도 엄마 말 잘 들어야 잘 산단다.
무성이와는 대학 때부터 영화판, 연극판 같이 전전하며 제일 친한 친구지만 와이프가 절대 비밀로 하래서 기태이 얘기는 되도록 전하지 않는다. 모르게 약이다 싶다.
그래서 무성이만큼 내가 좋아하는 친구는 없다. 두리와 누리는 제 친조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산다.
"나는 TV에 나오는 유명 파테쉐가 되는 게 꿈이다. 빵이 좋다."
엄마는 자기 때문에 내가 빵을 좋아하냐고 웃는다. 나는 그냥 빵이 좋다. 예쁘고 맛있는 케이크와 빵을 만들어
TV에도 나오는 유명한 파티쉐가 되고 싶다. 화려하고 싶어지고 싶어서는 아니다. 태이 이모를 보니 화려하게
산다고 그닥 행복한 것도 아닌 거 같다.
나는 평범하고 무난하게 행복한 우리 부모님과 집도 좋다.
“노래 때문에 사랑마저도 아프게 저버려야 했다. 그런데 평생 못 잊고 있다.”
무능력한 아버지 덕에 세탁소를 하며 고생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욕심으로 나는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섰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트로트를 듣고 따라 부르며 어느새 그 트로트 노래에 흥을 실어 담기 시작한 어린 나다.
어머니는 그런 내가 트로트 노래 부르는 데 재능이 있다며 열성으로 데리고 다녔다.
나 또한 왠지 노래를 부르는 무대가 싫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박수를 쳐 주면 왠지 모르는 즐거움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TV 쇼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대학 축제에 노래 부르러 갔다가 그녀도 만났다.
청순한 외모에 첫눈에 반했다. 외모와 다르게 밝고, 씩씩하고 거침없고 당찬 그녀의 모습에 두 번 반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제 커 가는 연예계의 새싹이 연애는 무슨 연애냐며 싫어하셨다.
나는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그녀와 억지로 헤어졌다. 그리고나서 진지한 연애는 해 본 적이 없다. 밤과 낮이 없고, 바쁜 연예계 생활이 시작되며 스트레스에 엄마 몰래 여자를 몇 번 만나긴 했지만 오래 가지를 못했다. 다 별로였다.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아니, 자주 생각한다. 그녀가 TV에서 나를 보고 있겠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결혼은 했을까, 등등 궁금하기도 하다.
그냥 스쳐 지나도 좋으니 한 번만, 얼굴이라도 보고 싶긴 하다.
“철 없을때 결혼했고, 철 들까말까 할때 이혼해 어느새 15살 짜리 아들의 싱글대디다."
강서열과는 초등학교 때부터 쭉 동창이며, 같은 동네에서 단짝으로 같이 다니며 자란 찐친이다.
서열이 덕에 매니저 노릇하며 그래도 아들 하나 데리고 먹고 산다. 아들이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 지 엄마 닮았나 보다.
철없는 시절에 날 이끌어 주는 그녀를 임신 시켜서 급히 결혼했고, 뭔가 좀 알아 갈까 싶을 때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를 버리고 떠났다. 부모님 따라 해외로 이민 간다며 아들도 나한테 맡기고 떠났다.
" 인기 많은 관심이 싫은 건 아니지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나는 공부하고 연구하는 게 좋다."
안다. 나 잘생겼다. 연예인 급이다. 운동도 잘하고공부도 잘한다. 단 아직도 철이 좀 없는 아빠 데리고 사느라
조금 피곤하긴 하다. 그래도 아빠가 착해서 다행이다.
아빠랑 다르게 잘난 거 알지만 잘난 척 안한다. 티 안낸다. 여자애들이 갖다 주는 선물과 편지, 고맙지만
받고 고마워하는 걸로 끝이다. 연애나 여자애들한테 그닥 관심 없다.
사람은 허상이나 허영 보다는 실속이고, 조용하게 잘나면 그만이다. 내세울 필요 없다.
나는 공부가 좋다. 정말 똑똑하고 결과 잘 내는 로봇 공학자가 되고 싶다. 내 목표는 카이스트 대학이다.
“하나뿐인, 잘난 아들을 유명하게 만들기 위해 내 인생을 갈아 넣었다.”
인생 뭐 있나, 한 방이면 된다. 어느 순간 아들이 트로트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나는 알았다. 이놈은 될 놈이다.
무능한 남편보다는 잘 키운 아들 하나가 나의 인생을 바꿔 줄 거란 생각으로 아들 인생에 내 열정을 갈아 넣었다.
다방 DJ를 하는 그놈의 겉멋 든 남편 놈한테 두 눈이 잘못 돌아가지고서는 참 내 인생 초라하고 궁상맞았다. 노래 잘 부르고, 인생 낭만이나 찾으며 현실 경제력 무능한 남편 놈이 점점 지겨워지던 차였다. 작은 동네 세탁소에서 죽어라 일하며 살아도 나아지는 거 없는 형편에 지치던 차였다.
아고, 그런데 요놈 봐라. 하나 있는 아들놈이 나에게 다시 희망을 주니 내가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때부터 아들을 빛나는 스타로 만들기 위해, 그래도 말은 잘 듣는 남편을 그 로드매니저인가 뭔가 하는 운전기사 직에 앉혔다. 아들을 데리고 지방 무대에도 가고, 방송국도 발바닥에 땀 나게 데리고 다녔다.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내 예감과 예상은 적중했다.
나이 들어가며 하나뿐인 아들 덕에 인생 폈다. 뿌듯하다.
결혼은 무슨, 아들의 인기로 쌓은 재산을 노리는 젊은 여자들의 여시 짓 다 부질 앖다. 스타로 빛나며 그냥 멋지게 살았음 좋겠다.
“인생 뭐 없다. 그저 낭만 따라, 사는 대로 사는 거다.”
심각할 거 있나, 인생이야 어차피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낭만 따라, 음악하며 가수가 되고픈 꿈이 있었으나 허영만 가득 찼었던 건지 결국 이루지 못했다. 그냥 저냥, 악착같은 와이프 말은 그래도 잘 들으며 눈치 보면서도 스트레스 크게 안 받고 산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 결국 하나뿐인 아들놈이 해냈다. 지 엄마의 극성과 열성으로.
“잘생긴 남자들 좋아하다 호되게 디였다. 확 차버리고 돌싱이 됐다.”
외롭다. 그런데 남자한테 한 번 디이고 나니 참, 남자들이 우습다.
디이긴 했지만, 내 성격에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확실한 증거 다 모아서 위자료는 그래도 확실히 챙기고 나왔다.
온라인 게임도 있다. 웹툰 작가들 소속사의 팀장이다. 외로워도 아무나 만나긴 싫다. 또 디이긴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