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남았는데 이름이 사라졌다

토종씨앗, 문명을 묻다 25

by호시우행

씨앗을 찾아낸 뒤에도, 그 씨앗을 길러 온 사람에게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토종씨앗을 조사하는 사람들은 농촌 마을을 찾아가 오래 길러 온 씨앗이 있는지 묻는다. 농민이 보관하고 있던 씨앗을 내놓으면 어디에서 얻었는지, 얼마나 오래 심었는지, 어떤 밭에서 길렀는지 확인한다. 수집한 씨앗에는 번호를 매기고 사진을 찍으며, 농민에게 들은 내용을 조사 자료로 남긴다. 사단법인 토종씨드림이 전국의 농촌에서 진행해 온 조사 방식이다. 씨앗을 봉지에 담아 가져오는 일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그 씨앗이 어떤 농사를 거쳐 오늘까지 남았는지 알아내려면 여러 질문이 필요하다. 씨앗은 눈앞에 있어도 그 씨앗을 길러 온 사람의 경험은 따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토종씨드림은 2008년부터 여러 지역의 토종씨앗을 조사해 왔다. 2011년 전남 곡성에서는 37작물 348점,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순천에서는 53작물 406점을 수집했다. 2021년 1월을 기준으로 공개한 누적 실적은 28개 지역, 180작물, 7,831점에 이른다. 이후에도 조사는 계속되어 2025년 기준으로 42개 지역에서 180작물 10,727점을 수집한 것으로 연혁에 기록되어 있다. 이 숫자는 여러 지역에서 오랫동안 길러 온 씨앗이 얼마나 다양하게 남아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수집한 씨앗의 수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각각의 씨앗에 관한 지식까지 충분히 확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같은 콩이라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아 심은 것인지, 이웃에게 얻은 것인지,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것인지에 따라 그 씨앗이 지나온 길은 달라진다. 오래전부터 길렀다는 말만으로 그 씨앗이 언제부터 그 마을에 있었는지 확정할 수는 없다. 농민이 직접 경험한 시간과 앞선 세대에게 들은 이야기를 구별해야 한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씨앗을 얻었는지 확인할수록 그 씨앗의 내력도 조금씩 드러난다. 그러나 씨앗의 출처를 알아냈다고 해서 그 씨앗으로 농사짓는 방법까지 모두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농민에게는 해마다 같은 밭에서 되풀이해 온 일이지만, 처음 그 씨앗을 심는 사람에게는 알아야 할 것이 많다. 언제 파종하고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수확했는지, 비가 많은 해에는 무엇이 달랐는지, 씨앗을 받을 때 어떤 포기를 남겼는지 물어야 한다. 같은 작물이라도 품종에 따라 생육 기간과 환경에 대한 반응이 다를 수 있다. 농민이 오랫동안 경험한 판단은 그 씨앗을 다시 재배할 때 무엇을 살펴야 할지 알려 주는 단서가 된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은 씨앗의 모양이나 크기만으로 알아낼 수 없다.


콩을 예로 들어 보자. 콩은 품종에 따라 낮의 길이와 온도에 반응하는 정도가 달라 꽃이 피는 시기와 성숙 시기에 차이가 생긴다.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콩을 같은 날짜에 심더라도 원래 재배하던 곳과 똑같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씨앗의 특성을 확인하려면 시험 재배가 필요하고, 파종 시기와 생육 상태를 여러 조건에서 비교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콩을 오래 길러 온 농민에게 물을 수 있다면 조사할 때 참고할 정보가 더 많아진다. 농민의 경험이 과학적 조사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조사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자료가 될 수 있다.


농민이 씨앗을 받아 온 방법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수확한 작물 가운데 다음해에 심을 종자를 따로 남기는 과정에서 어떤 포기를 골랐는지, 어느 정도 익었을 때 수확했는지에 따라 다음 세대에 이어지는 특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종자를 충분히 말리고 습기를 피해서 보관하는 방법 역시 다음해 발아에 중요하다. 이러한 방법은 지역의 기후와 농가의 저장 시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씨앗을 수집한 사람이 그 과정을 묻지 않았다면, 나중에 종자를 분석하더라도 농민이 어떤 판단으로 그 씨앗을 이어 왔는지는 알아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오래된 농법이 언제나 옳거나 다른 지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지역에서 효과가 있었던 방법이 다른 기후와 토양에서도 적합하다는 보장은 없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병해의 원인을 오늘날에는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종자의 저장 조건도 더 정밀하게 관리할 수 있다. 농민이 전해 준 방법을 기록하는 일은 그 방법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조건에서 사용한 방법인지 밝혀 두면 실제 효과를 검토할 수 있고, 새로운 기술과 비교할 수도 있다. 과거의 농사를 이해하려면 오래된 방법을 칭송하기보다 그 방법이 사용된 사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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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과 농업, 지역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익숙한 먹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문명과 감정, 공동체의 역사가 보인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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